슬기로운 국어 학습

(17) 실존주의에서의 자아와 세계
나는 집에 도착한 그 첫 순간에 베일에 가린 듯이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단된 나 자신을 느꼈다. 집에서 맞는 첫날 아침을 나는 이상한 비현실감 속에서 맞았다. “이런 전선에서 두부 장수 종소리,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수돗물이 넘치는 소리가 웬일일까?”라고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던 것이다. ‘이런 전선에서’란 느낌은 어떤 긴박한 위기에 대처한 생생한 의지였다. 그것은 아직도 내 몸에 밴 전쟁 냄새였다. 그런데 두부 장수 종소리, 유행가 소리 따위를 의식했을 때 나는 뭔가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나의 안에 있는 긴박감에 비해서 밖은 너무도 무의미하고 태평스럽고 어쩌면 패덕스럽기까지 했다. 나미도, 학교 공부도, 또 나로부터 그토록 수많은 밤을 앗아 갔던 아틀리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들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하등의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나날이 권태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이따금 나는 내 안의 긴장에 대해서, 적어도 숨김없는 그 진실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려 애써 보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운데 부분 줄거리] ‘나’는 자신의 경험에 공감하지 못하는 애인 나미와도 거리감을 느끼고 이 세계가 극도로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무력감 속에서 공터를 내려보던 중, 뽑기 과자를 팔고 무엇을 찾는 일에 열중하는 노인을 보게 된다.

개는 하루 사이 아주 눈에 띄게 쇠약한 모습이고, 노인도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긴 하나 끈질긴 어떤 힘이 그의 전신에서 면면히 솟아 나오고 있는 듯하다. 나는 완전히 안정을 잃고 방 안을 오락가락했다. 믿어지지 않는다. 거짓말이다. 무엇이 노인에게 저토록 소중하게 여겨진단 말인가. 아니, 노인은 무슨 실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방에서 뛰쳐나왔다.

- 서영은, 사막을 건너는 법 -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단된 나 … 나의 안에 있는 긴박감에 비해서 밖은 … 무의미하고 태평스럽고 … 패덕스럽기까지 했다. …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다시 자아와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자아는 인식·행위의 주체로서, 사고·의욕을 갖고서 작용·반응·체험을 한다. 자아 이외의 대상이나 현상은 세계이다. 자아의 생각과 감정이 세계와 일치할 때 자아는 세계와 화해하고 불일치할 때 갈등한다.

이 작품에서 ‘나’라는 자아가,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이라는 세계와 ‘차단’되어 있다. ‘나의 안’ 즉, 자아는 ‘긴박감’ 속에 있는데, ‘밖’ 즉, 세계는 ‘무의미하고 태평스럽고 … 패덕스럽’다.(‘패덕스럽다’와 같이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굳이 외워 둘 필요는 없다. 문맥상 ‘긴박감’과는 대립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읽는 것도 효율적인 독해법이다.) ‘나’라는 자아를 ‘이해’하는 ‘사람’, 즉 세계도 없다.(자아 이외의 것은 모두 세계이므로 또 다른 자아도 세계에 속한다.) 이것들은 모두 자아와 세계가 불일치함을 보여주므로, 우리는 그 둘이 갈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소설을 읽을 때는 자아와 세계의 관계가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런 전선에서’란 느낌은 … 긴박한 위기에 대처한 생생한 의지… 전쟁 냄새… 두부 장수 종소리, 유행가 소리 따위… 맥이 탁 풀리는이 작품에서 ‘나’는 두 개의 세계를 접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전선(전쟁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이나 그런 지역을 가상적으로 연결한 선)’이라는 세계와 ‘두부 장수 종소리, 유행가 소리 따위’가 들려오는 ‘집’이라는 세계이다. ‘이런 전선’이라는 말로 보아 ‘나’는 전쟁터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것은 ‘전쟁 냄새’라는 말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그 세계에서 ‘나’는 ‘어떤 긴박한 위기에 대처한 생생한 의지’를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집’이라는 세계에서 ‘나’는 다른 마음을 갖는다.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그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두 세계에서 상반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자아가 처한 세계는 다양하고, 어떤 세계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자아의 생각이나 감정은 다르다. 따라서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세계인지, 그 세계에 대해 자아가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갖는지 생각해 보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세계에 대해 무미함, 권태, 허무를 느꼈니? 그럼 부조리한 거야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 권태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했다. … 이 세계가 …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 무력감 속에서 … 무엇을 찾는 일에 열중하는 노인… 어떤 힘이 그의 전신에서 … 솟아 나오고똑같은 세계인데 자아마다 다른 생각이나 감정을 갖는다. 이 작품에서 ‘나’ 이외에도 ‘노인’이라는 자아가 등장한다. 두 자아가 처한 세계는 같다. 그런데 ‘나’는 ‘흥미도 관심도 없’고, ‘권태’와 ‘짜증’을 느끼며, ‘이 세계가 …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노인’은 ‘무엇을 찾는 일에 열중’한다. ‘노인’에게는 ‘소중하게 여겨’지는 ‘무엇’이 있다. 그 결과는 정반대이다. 즉 ‘나’는 ‘무력감 속’에 사는데, ‘노인’은 ‘어떤 힘’을 갖고 사는 것이다.

‘나’가 ‘노인’을 목격했을 때 보인 반응은 ‘안정을 잃고 방 안을 오락가락’하며, ‘거짓말’이라고 ‘노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노인’이 ‘무슨 실없는 망상을 하고 있’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자아가 또 다른 자아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이를 자아의 ‘내적 갈등’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나는 방에서 뛰쳐나’오기까지 한다.

이처럼 세계에 대해 자아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그 자아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소설 읽기에서 중요하므로 이에 대한 훈련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실존주의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부조리’를 이용하면 도움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부조리는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 ‘부정행위’라는 뜻으로 쓰이나,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이른다. 특히 프랑스 작가 카뮈의 부조리 철학으로 널리 알려진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 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를 고려하면 이 작품에서의 ‘나’는 부조리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즉 무미함, 무관심, 권태, 짜증, 허무를 느끼는 ‘나’는 전쟁에서 돌아와 접한 생활에서 부조리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무엇을 찾는 일에 열중하’고, ‘끈질긴 어떤 힘이 그의 전신에서 면면히 솟아 나오고 있’으며,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여’기는 ‘노인’은 부조리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겠다.

부조리 철학은 여러 문학 작품에서 다루어 왔다. 따라서 이에 대해 알고 있으면 문학 감상에 도움이 되므로 알아 두도록 하자. ☞ 포인트
신철수 성보고 교사
신철수 성보고 교사
① 자아는 인식·행위의 주체로서, 사고·의욕을 갖고서 작용·반응·체험을 하는 존재이며, 세계는 자아 이외의 대상이나 현상임을 알아 두자.

② 자아와 세계의 관계 양상이 갈등인지 화해인지 파악하며 읽도록 하자.

③ 자아가 처한 세계는 다양하고, 어떤 세계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자아의 생각이나 감정은 다름을 염두에 두자.

④ 세계에 대해 자아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그 자아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파악하는 훈련을 하자.

⑤ 실존주의에서 부조리는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