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복지제도가 여러 영역에서 강화되고 있다. 선거 한번 치를 때마다 지원 확대 공약이 경쟁적으로 제시돼온 결과다. 복지 확충은 진보좌파 보수우파 구별도 없다. 현대국가의 보편적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확대 속도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쟁점은 당장 몇 년 정도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러자면 돈 문제, 즉 재원(財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포퓰리즘 경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치권은 재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정책으로 적용해 집행하는 정부도 크게 봐서 비슷한 분위기다. 정부도 이따금 재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만 국회의 다수를 차지한 거대 여당의 거침없는 행보에 밀려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각론에서 복지프로그램 보완은 필요하다고 해도, 선심성 현금 살포까지 포함된 복지는 오래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증세(增稅)를 하자는 얘기는 여야 정치권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보편적 증세는 정공법이지만 인기가 없는 제안인 탓이다. 그래서 나오는 게 설탕세 청년세 시멘트세 고향세 같은 ‘특별세’의 신설이다. 증세 논쟁은 피하면서 가능한 재원을 짜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일종의 재정 틈새 공략이다. 보편증세가 아닌 특정집단을 겨냥한 이런 세금의 신설은 효과가 있을까. 적극 도입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시사이슈 찬반토론] 급증하는 복지비용…설탕세·청년세·시멘트세 대안이 될까
[찬성] 재원확보 다각화 노력 필요 '틈새 과세' 시도해 볼 상황국민 생활 다방면에 걸쳐 복지가 확충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근대 이후 부각된 복지국가 차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의당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그럼으로써 경제적 격차 해소, 사회적 양극화 완화도 이뤄내야 한다. 복지 강화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이 먼저 길을 튼 현대국가의 소명이기도 하다.

재원 문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든 피할 수 없는 게 복지 강화다. 복지가 제대로 돼야 국가의 생산성도 올라가고 경제도 탄탄하게 발전할 수 있다. 복지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공적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유가 생산된다든가 쌓아둔 국부(國富)펀드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국민이 세금을 더 부담하거나 나랏빚을 더 내는 길뿐이다. 국가채무 확대는 대외신인도 문제가 걸려 단기에 추가로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세금 확대로 가도 소득세 법인세(기업세) 부가가치세(소비세) 등에서 증세를 하면 좋겠지만, 경제에 주는 부담도 봐야 하고 국민의 조세저항 문제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대안이 새로운 세원(稅源)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나온 설탕세가 그런 사례다. 당(糖)이 포함된 가당음료를 제조·가공·수입·유통·판매하는 사업자에게 세금을 새로 부과하는 것이다. 일종의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이다. 당류가 들어 있는 음료에 대해 100L당 1000~2만8000원가량의 세금(부담금)을 부과하는 식이다. 역시 여당에서 나온 청년세는 법인(기업)에 과세표준금액의 일정 비율로 세금을 따로 걷어 청년 일자리 창출과 그를 위한 사회 여건 개선에 쓰자는 것이다. 시멘트법은 기존의 지역자원시설세 대상에 시멘트를 추가하자는 것이어서 집행에 크게 어려울 게 없다. 행정안전부도 이미 그런 방향으로 정책 추진 의지를 밝힌 적 있다. 다수 국민에 대한 세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대] '보편증세' 정공법 피하는 꼼수 복지 구조조정 먼저해야보편복지로 나아가려면 보편증세가 필요하다. 이게 당당한 정책이자 정공법이다. 세금을 더 걷지 않겠다며, 증세는 없다고 외치며 특별한 영역에서 세금을 신설하는 것은 꼼수다. 복지 확충에 대한 국민의 책임의식을 허물어뜨리는 나쁜 정책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취약 계층, 장애인, 결손 가정 등 사회 경제적으로 특별한 약자들을 집중 지원하는 ‘선별복지’라면 ‘선별증세’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의료·일자리 등에 걸친 최근 한국의 복지는 국민 다수를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에서 그랬듯이 부자든 가난한 이든 구별 없이 국민 모두에게 현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런 지원은 한 번에 수십조원씩 든다.

더 시급한 것은 복지 구조조정이다. 지원 효과가 없거나 지원의 타당성이 부족한 것, 장기적으로 계속될 수 없는 복지프로그램은 과감히 통폐합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지원받는 쪽에 실질적 도움이 되게 하고, 조기에 홀로 일어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지원이어야 한다. 복지의 전달 체계에 이상이 없는지 살피고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에서든 중간에 지원금이 새는 복지 누수현상을 막아야 한다. 서유럽 등지에서도 지원 전달체계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게 국가적으로 큰 고민이었다. 적격자를 가려내는 것부터 시작해 중간에서 ‘빼먹기’ 없이 제대로 전달하려면 행정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간다. 때로는 몸통보다 꼬리가 커질 수 있다.

재원 마련에서 국민 모두가 부담을 두루 나눠 가질 필요가 있다. 장기발전을 위한 생산적 복지가 되기 위해서다. 그러자면 세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을 중심으로 증세 논의를 시작하는 게 당당한 접근이다. 소득세는 아직도 전체 근로자의 40%가량이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법인세도 내는 기업이 편중돼 있다. 부가가치세는 국민 모두가 대상인 까닭에 정치권이 회피하고 있다. 이들 세금의 조정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 대책이다. √ 생각하기 - 소비자에 전가 지속가능성도 의문…'재원 문제'에 솔직할 때
[시사이슈 찬반토론] 급증하는 복지비용…설탕세·청년세·시멘트세 대안이 될까
복지프로그램이 급팽창하면서 재원 문제는 이제 현실적 고민이 됐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솔직할 때가 됐다. 좋은 제도는 다 도입하자고 외치면서 돈 문제는 외면한다면 당당하지 못하다. 생색내는 제도는 저마다 주장하면서 “계산서는 저쪽(계층)에서 받아내라”고 한다면 사회적 갈등이나 키울 수 있다. 그런 제도는 유지될 수도 없다. 사회 갈등의 경제적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라는 게 여러 전문가의 경고다. 확장재정으로 나랏빚을 키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제 국가채무는 레드 존(위험지대)에 접근했다. 보편복지로 간다면 보편증세 논의는 피하기 어렵다. 꼼수 같은 선별증세로 실제 확보할 수 있는 나랏돈은 뻔하다. 겉만 요란하고 논란만 일으킬 뿐 실리가 없다는 얘기다.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복지비용을 냉정하게 본다면 보편증세라야 우선 필요한 만큼의 재원이라도 확보 가능해진다. 미래 세대 부담도 봐야 하고, 재정은 장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상품에 붙는 세금이면 결국 소비자 부담이 될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