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42) 어벤져스 시리즈(上)
“우주는 유한해. 자원도 그렇지. 이대로 가면 아무도 못 살아남아.”시네마노믹스
(42) 어벤져스 시리즈(上)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 타노스(조쉬 브롤린 분). 이 악당의 목표는 여느 악당과는 다르다. 인간을 비롯한 우주 생명체의 행복을 꿈꾼다. 그런데 우주의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이란 게 전형적인 악당의 그것이다. 타노스는 생명체의 절반이 죽어야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자원은 부족하다는 걸 이유로 내세운다.
여러 행성을 다니며 직접 생명체의 절반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단 한 번에 절반을 죽일 방법을 찾는다. 우주에 흩어진 여섯 개의 스톤을 모두 모아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는 것이 바로 타노스의 구상이다. 여섯 개의 스톤을 확보한 순간, 손끝을 튕기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우주 생명의 절반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전 우주의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타노스에 맞서는 게 어벤져스 시리즈의 핵심 줄거리다. 타노스와 맬서스의 인구론 타노스의 철학은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주장과 맞닿아있다. 맬서스는 1798년 내놓은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인구가 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프1>은 이런 맬서스의 이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맬서스는 인구가 대략 25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기 때문에 200년 뒤에는 인구와 식량의 비율이 256 대 9, 300년 뒤에는 4096 대 13까지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업혁명에 성공해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던 18세기 영국에서 나온 ‘음울한 이론’이었다.
맬서스가 말한 인구를 줄이는 방법은 타노스만큼이나 잔인했다. 가난한 자는 자연스럽게 도태돼야 한다는 게 맬서스의 대안이었다. 그는 부양 자녀 수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당시 영국 정부 정책에 반대했다.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불어나는 인구를 늘리는 데 보탬이 되는 정책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주장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윌리엄 피트는 빈민구제법을 시행한 지 4년 만에 철폐하기도 했다.
타노스의 인구론은 맹목적이다. 생명체의 절반을 죽이는 일은 “구원을 위한 작은 희생”으로 치부한다. 자신의 ‘대의’를 위해 스스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딸의 생명을 내놓고 자신의 건강까지 희생한다. 가난한 자를 도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맬서스와 달리 타노스는 자신이 부자든 빈자든 가리지 않고 절반을 죽인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가혹한 인구론은 비극을 부르고인류의 행복을 내걸었지만 맬서스와 타노스의 인구론은 현실에선 받아들여지기 힘든 주장이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식량 생산 속도는 일정하다 △인간의 성욕 때문에 인구는 무한히 늘어난다는 두 가지 전제가 달라지면서 오래전에 논박됐다. 비료 등 경작기술 혁신으로 식량 생산량이 크게 개선됐고 과학적인 피임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 동안 맬서스의 예상과 달리 세계 인구는 약 여섯 배로 늘었지만 식량 생산량은 이보다 훨씬 빠르게 불었다.
타노스의 이론도 영화 속에서 실패를 맞기는 마찬가지다. 어벤져스 시리즈 4편인 ‘엔드게임’은 타노스의 목표가 달성된 상태의 지구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노스는 인구를 절반으로 줄였지만 결과는 파국이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이들의 상실감 때문에 집단 우울감에 빠진 사회엔 타노스가 바랐던 행복도, 희망도 없다.
맬서스와 타노스의 논리에 따르자면 인류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는 점도 둘이 가진 생각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맬서스는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삶의 질은 최저 수준에서 머무를 것이라고 봤다. 기술이 발달해 생활 여건이 좋아지면 인구가 늘고, 인구가 늘면 다시 자원 부족이나 질병 등으로 생활 여건이 나빠져 인구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결국 인류는 진보하지 못하고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멜서스 함정’이다. 하지만 맬서스 함정은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의 경제 구조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술 발달로 인당 생산성과 소득이 크게 늘어난 현재를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래프2>
타노스도 다르지 않다. 당장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도 그 상태는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 타노스의 ‘과업’은 한 번 이루면 끝나는 완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돼야 할 희생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게 된 타노스가 선택한 인류 행복의 답이 고작 생명체의 절반을 죽이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 힘든 이유다.
나수지 한국경제신문 기자 suji@hankyung.com NIE 포인트① 인구폭발에 따른 ‘맬서스 함정’이나 인구급감에 따른 ‘인구절벽’을 감안할 때 인류의 적정 인구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② 자원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을 꾸준히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혁신은 앞으로도 계속될까.
③ 대의나 전체의 구원을 위해 작은 희생은 용인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