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은 현실이 될거야…'노동유연화'가 상상처럼 되면

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3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下)
사진 현상하는 월터가 해고될 수밖에 없는 디지털 시대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사진 현상가 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잡지가 폐간되고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월터는 마지막호의 표지사진을 구하기 위해 온갖 모험을 무릅쓴다. 하지만 월터에게 날아온 것은 결국 해고통지서였다. 디지털로 바뀌는 흐름 속에서 아날로그 인력은 구조적 실업에 내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구조적 실업 극복한 독일의 ‘하르츠 개혁’
사진 현상하는 월터가 해고될 수밖에 없는 디지털 시대
구조적 실업을 노동유연화로 잘 대처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다. 동독 지역은 1990년대 말로 들어서면서 20%를 넘나드는 극심한 실업률에 시달렸다. 독일 통일 초기 인프라 투자로 호황이었던 건설업이 점차 자리를 잃게 되자 건설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독일 정부는 2003년 하르츠 개혁을 시행한다. 하르츠 개혁의 요지는 시간제 근로자 확대다.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다. 좀 더 유연화된 미니잡(mini job)인 시간제 일자리를 필두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동독지역 실업률은 2011년 말 10.4%까지 하락하게 된다.

즉, 잘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직장에 오래 버틸 수 있게 고용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일어서는 산업에서 그가 쉽게 채용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해결책이다. 월터를 자른 매니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월터가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단 얘기다. 새로운 도전이 실업을 이겨내는 길물론 그들을 쉽게 자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추지 못한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이에 ‘노동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을 결합한 용어로, 쉽게 말해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실업자가 돼도 안심할 수 있는 구조를 세운 뒤 그 위에서 노동유연화를 추구하는 전략이다. 노동유연화가 안 된 한국을 겨냥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단골로 던지는 정책 제언이기도 하다.

월터는 해고된 뒤 실업수당을 받기로 하고 회사 문을 조용히 걸어나온다. 그러다 직장 동료 셰릴(크리스틴 위그 분)과 마주친다. 그와 함께 자신이 사진을 찾기 위해 했던 여행 이야기를 해준다. 사진을 찾기 위해 아이슬란드에서 스케이드보드를 탔던 이야기, 그린란드에서 술에 취한 조종사의 헬기에 탄 이야기 등을 되짚었다. 돌이켜보면 순간순간 월터는 도전했다. 물론 그는 도전을 통해 기존 직장을 지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도전을 통해 얻은 용기로 그는 새로운 직장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실업의 좌절에 빠진 이에게 가장 큰 치료제는 또 다른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한국사회…구조적 실업 대책 서둘러야디지털 시대에 그에 알맞은 기술을 갖추지 못한 월터는 라이프 잡지의 폐간과 함께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온라인 라이프’에서 월터의 자리를 새롭게 대체할 것이다.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한국 사회도 이런 변화의 물결 앞에 직면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산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의 흐름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비대면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그 결과 쇠퇴하는 산업에선 다수의 실직자가 나오고 있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발표한 ‘상위 500대 기업 고용현황’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2~3월 고용 감소가 가장 뚜렷한 업종은 주로 대면 서비스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유통업에선 1만5604명, 서비스업에선 4851명, 식음료업에선 473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산업 밑단에 있는 중소기업들을 감안하면 더 큰 규모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일자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여러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막대한 재정을 일자리 지키기와 기업 안정, 경기진작에 퍼부었다. 정부 대책은 경기적 실업에 대응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의 일자리 감소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산업 전반의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다. 코로나19에 의한 일자리 감소는 단기적으론 경기불황에 따른 충격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론 산업 전반의 구조 변화에 따라 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구조적 실업의 대응책인 노동유연화를 동시에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독일도 1990년대 동독의 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재정정책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1996년엔 재정적자 비율이 유럽연합(EU)의 재정안정 기준인 3%(GDP 대비)를 넘은 3.5%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럼에도 실업률은 단기적으로만 감소했을 뿐 장기적으로는 계속 올라갔다. 경기를 잠깐 끌어올려도 노동경직성에 의해 분야별 인력 이동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위에 언급한 노동유연화 대책인 ‘하르츠 개혁’을 시행하고서야 만성적인 실업률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

구민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kook@hankyung.com NIE 포인트①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이라는 상충되는 가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② 독일의 하르츠 개혁처럼 노동유연성을 높이면 한국의 높은 청년실업률을 낮출 수 있을까.

③ 아날로그 기술을 갖춘 근로자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전환하려면 어떤 대책을 추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