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21) 우리도 사랑일까(下)
새 애인에도 적용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경제학을 거부하는 '중독된 사랑'은 없을까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프리랜서 작가인 마고(미셸 윌리엄스 분)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5년차 남편 루(세스 로건 분)와 최근 여행길에서 만난 묘한 매력의 앞집 남자 대니얼(루크 커비 분) 사이에서 고민한다. 당장 루를 떠난다면 그녀는 매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당연하게 여기던 루의 장난스러운 아침 인사도, 그녀를 위해 정성스레 준비하는 루의 저녁식사도 더 이상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당장 무언가 새롭게 얻는 효용이 없다 해도 떠나면서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의 이면인 ‘위험회피성향’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의 이면 ‘위험회피성향’
새 애인에도 적용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경제학을 거부하는 '중독된 사랑'은 없을까
<그래프>를 보면 B점에서 1단위를 늘려서 C점으로 가면 효용이 3 증가하지만 1단위를 줄여서 A점으로 가면 효용이 5 감소한다. 즉 사람은 얻는 것에 대한 기대효용보다 잃는 것에 대한 기대손실이 더 크다. 루와 함께 있어 얻는 기대효용보다 루를 떠나 잃을 기대손실이 더 클 것이기에 마고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고는 루를 떠난다. 루를 잃는 손실이 크더라도 대니얼과 함께 있어 얻는 기대효용이 더 컸기에 마고는 루를 떠났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당장 마고는 대니얼과의 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용의 크기는 루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루와의 사랑이 그랬듯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한계효용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영화 초반 오븐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마고 뒤에 서 있는 남자는 루가 아니라 대니얼이었다. 선별적 복지의 이론적 실마리 제공마고의 사랑은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루와 애틋한 5년을 보냈지만 그 시간만큼 루에 대한 사랑도 식었다. 대니얼과 새로 시작했지만 그와의 사랑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농도는 조금씩 옅어져 간다. 한 재화를 반복해서 소비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재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일 경제학자 헤르만 하인리히 고센은 한 재화의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그 재화에 대한 한계효용이 계속 감소하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이론화했다. 한계효용의 개념은 인간의 욕망과 합리적 소비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리고 이 개념은 확장되며 미시, 거시를 막론하고 경제학 전반에 기초가 되는 논리를 제공했다.

그중 하나가 사회복지 분야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소득 재분배의 기초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막대한 자산을 가진 부자와 적은 자산을 가진 서민이 있다면 돈에 대한 한계효용은 서민이 훨씬 높을 것이다. 똑같이 100만원을 받더라도 부자에게는 별 게 아닐 수 있지만 서민에게는 큰돈이 된다.

이 논리는 ‘선별적 복지’라는 주제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복지 분야에선 재산에 따라 차등적으로 복지 혜택을 줄 것이냐,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로 복지 혜택을 줄 것이냐 하는 논란이 지속돼 왔다. 선별적·보편적 복지 논쟁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복지를 시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차등적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론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전체 효용을 늘리기 위해선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효용성이 부족한 부자에게 가는 복지 혜택을 줄여 가난한 사람을 더 돕거나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더 우월한 전략이라는 판단이다.

올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하위 70%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할 것이냐,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적으로 나눠줄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예외 ‘중독’…사랑도 중독될 수 있을까?지금까지의 이야기 전개에서 우리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사랑의 감정을 단순히 숫자놀이처럼 냉혹하게 딱 잘라 말하는 부분이다. ‘공리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돈, 무게, 길이 등과 같이 정량화된 수치들뿐만 아니라 감정, 매력 등 정성적 가치도 숫자로 논하는 것이 공리주의적 사고다. 타당한 반박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제학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경제학은 공리주의적 사고를 대전제로 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적으로 접근한다 하더라도 해소되지 않는 질문은 있다. 효용이란 소비할수록 꼭 줄어드는 것일까? 경제학에서도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중독성이 강한 제품은 소비할수록 효용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 담배, 알코올, 도박 등은 이 재화를 처음 이용했을 때보다도 익숙해지면 더 큰 효용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이란 감정도 이와 같을 수 있다. 연애 초반 불꽃 튀는 호르몬 분비는 아니라도 사랑의 시계가 흘러갈수록 더 깊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다. 추억이 겹겹이 쌓이면서 그 사람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애틋함이 생긴다. 사랑의 효용곡선은 점점 평탄해지기보다는 점점 가팔라질 수 있다. 사랑과 시간의 알고리즘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구민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kook@hankyung.com NIE 포인트①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개인의 효용에 대한 이론인데 이를 사회 전체로 확대해 ‘사회적 총효용을 극대화하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

② 알코올 등 중독성이 강한 제품에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③ 체감이 아니라 ‘한계효용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랑을 현실세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