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누가 돼도 보호무역…글로벌 분업 재편 가속화된다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주 던모어의 한 금속공장에서 발표한 7000억달러(약 840조원) 규모의 ‘바이 아메리칸’ 공약이 그것이다. 대통령 임기 4년간 미국산 제품 구매에 4000억달러, 핵심 기술 연구개발에 3000억달러의 연방정부 예산을 추가 투입해 일자리 50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주목할 것은 ‘바이 아메리칸법’의 예외조항을 축소해 미국산 제품 구매를 늘리고, 의료장비 등은 미국산 구매를 의무화하겠다는 대목이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짜겠다는 얘기다. 핵심 기술 예산 3000억달러의 상당 부분을 에너지 기술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했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옹호해온 바이든의 노선 변경을 두고 경합 주 표 잡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미·중 충돌 국면을 고려하면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돼도 더 강한 자국 산업 보호가 불가피한 마당이다.

보호무역이 강화되면 글로벌 분업망 재편이 가속화할 것이다. 바이든의 경제공약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천명한 탈(脫)중국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는 물론이고 화웨이 등 중국 기업 배제가 계속될 것이란 신호로 읽힌다. …(중략)….

국내 주요 기업들은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미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어떻게 대응할지 전략 짜기에 부심하고 있다. 새로운 무역질서에 따른 생존의 문제를 기업에만 떠넘겨선 안 된다. 정부는 미·중 충돌을 바라보는 입장과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분리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통상정책을 그 어느 때보다 적극 펼쳐야 한다. 동시에 국가 간 핵심 기술 경쟁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높이도록 주력 산업을 고도화하고, 신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는 등 산업정책의 대대적 재편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7월 13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인류에 풍요 안겨준 개방과 자유무역 위협받아
시진핑 패권 행보에 美 대선 누가 되든 '자국우선'
코로나 쇼크까지 겹쳐…한국, 생존전략 고민해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흔들리는 WTO체제…美中갈등·보호무역 대응전략 시급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개방과 자유무역은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에 경제·산업적 발달과 풍요를 가져다줬다. 격차 심화라는 부작용도 없지는 않았지만 절대빈곤 급감, 문명 이기의 급속 보급, 보편의료 확대와 기아 탈출, 전반적 수명 연장 등을 보면 자유로운 교역·통상, 제한 없는 투자 확대의 이점은 엄청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절대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국제 기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이 수출에 기댄 경제성장과 적극적 외자유치 전략을 짤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해서 정치적 민주화까지 단기간에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WTO체제에 적극 부응하고 그 성과를 누렸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농수산물에서 섬유·완구류를 거쳐 자동차와 화학제품, 반도체와 고급 휴대폰까지 한국의 상품을 장벽 없이 구입해주는 국제시장이 있었기에 한국인의 성실과 근면도 빛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WTO체제의 최대 수혜국은 중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세계 경제에 적극 편입했기에 거대 중국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평가를 받은 중국이 조잡하고 값싼 공산품으로 시작해 오늘날 화웨이의 반도체 장비와 고급 드론의 수출국이 되는 과정은 한국의 국제화 전략과 닮은 점이 많다. 물론 이제는 한국을 위협하는 정도를 넘어 추월하는 분야도 적지 않다. 호혜 개방과 차별 없는 통상이라는 WTO체제의 최대 수혜국인 중국이 한국을 향해서는 이른바 ‘사드 보복’으로 스스로 이 원칙을 위배한 것은 아이러니를 넘어서는 폭거였다.

WTO체제의 국가 간 장벽 낮추기와 자유로운 통상은 근래 두 가지 변수로 위협을 받아왔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라고도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대두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우선)주의’ 및 그에 대응한 중국의 맞받아치기였다. 경제적 불균형을 파고들며 ‘러스트 벨트’의 백인 중산층 및 중하류층 표심을 노린 트럼프는 자유무역보다 자국 산업을 먼저 챙기는 보호무역의 기치를 내걸었다. 국제적으로 급성장해온 중국에 대한 다면적 견제 의도가 다분했다. 보호주의 성향의 미국 대외정책은 상품의 수출입뿐 아니라 금융, 기업의 투자와 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나타났다. 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던 만큼 덩치가 커진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로 인해 최근 몇 년 새 나타난 양국 간의 통상전쟁, 기술전쟁, 외환·환율전쟁, 군사·안보적 대치는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주요한 변수가 덧보태졌다. 블랙 스완처럼 닥친 ‘코로나 쇼크’다. 코로나 쇼크로 인력의 이동이 갑자기 막힌 데다 각국 경제가 갑자기 나빠지자 각자도생 차원에서의 보호주의가 급부상했다.

인적으로, 물적으로 개방에 따른 비교우위 교역으로 많은 국가에 이익을 줬던 WTO체제가 흔들린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비경제적인 대립·갈등으로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수출입이 제한되면서 양국이 함께 손해를 본 것과 같은 일이다.

공화당의 트럼프뿐 아니라 민주당의 바이든도 자국보호주의, 미국우선주의로 간다는 공약을 내놨다. ‘바이 아메리칸법’이 그렇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초당적 행보는 단순히 경제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어디까지 진행될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패권적 행보를 보이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을 견제하면서 21세기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확실히 하겠다는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 보니 한국의 행보, 대응전략도 무척이나 어렵게 됐다. ‘글로벌 밸류 체인’, 산업의 국제 분업 체제에서의 변화 여부도 그래서 당장의 관심사다. 많은 한국 기업의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될 수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