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경제지표마다 온통 '최악'…악순환의 덫에 빠진 경제
[사설] 숫자 보기조차 두려운 실물 위축, 규제혁파 외에 대안 없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이달 들어 지난 10일까지 122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6% 감소했다. 3월만 해도 -0.2%로 현상 유지는 했으나 ‘코로나 쇼크’의 영향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수요 감소를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악화할지 걱정이다.

어제 발표된 3월 실업급여 지급액은 8982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던 2월 기록(7819억원)을 또 경신했다. 반면 3월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폭은 16년 만에 최저여서 이런 추세라면 고용보험의 기본틀이 흔들릴 판이다. 고용보험 밖의 자영업자와 불완전 고용 상태로 전락한 휴직자 등을 감안하면 ‘실업 대란’이 어디까지 갈지 가늠조차 어렵다.

수출과 고용뿐 아니라 생산 투자 소비도 온통 악화일로다. 늘어나는 부채에 기업심리지수 같은 지표도 ‘최악’이다. 지난주에는 김포공항의 국제선 이용객이 ‘0명’이라는 믿기 어려운 집계도 나왔다. 1년 전 같은 기간에는 8만9189명이었다. 항공·관광산업이 정지되면서 롯데면세점의 특정 명품점 매출은 지난 1월 74억원에서 지난달 1억4000만원으로 줄기도 했다.

추락하는 경제지표와 통계수치를 대자면 끝이 없다. 숫자 보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공포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다. 다급한 방역 사정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무한정 지속할 수도 없다. “코로나로 죽으나 가만히 있다가 굶어 죽으나…”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다시 움직여야 하고,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내야 한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침체돼왔던 취약한 경제가 대전염병으로 더욱 어려워지면서 정부에 대한 기대 심리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금융·자금 지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돈을 적게 들이고 경제를 살리는 길은 규제개혁뿐이다. 투자와 소비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간 경제단체들이 건의해온 규제혁파 방안을 파격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경제가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한시적 완화여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4월14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공적자금은 세금 축내고 미래세대 부담
한국은행 지원도 돈 가치 하락 부작용
규제혁파가 돈 안들이는 경제살리기


[한경 사설 깊이 읽기] 경제지표마다 온통 '최악'…악순환의 덫에 빠진 경제
‘경제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나 판단이 나온 지는 오래 됐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지는 ‘코로나 쇼크’가 닥치기 전부터 경기 침체는 명확했다. 물가 상승보다 월등하게 높은 최저임금, 무리하게 도입된 주 52시간 근로제 같은 정책을 포함한 ‘소득주도성장’과 과도한 반(反)시장 기업규제 등이 주된 요인이라는 지적 속에 한국 경제의 해묵은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반론도 일부 있었다.

미국 일본 등지의 경제가 다 좋은 가운데 한국이 장기 저성장 국면에 처했던 원인이 무엇인가를 놓고 끝없는 논란이 이어지던 와중에 중국 우한발(發) 대전염병이 닥쳤다. 불과 몇 달 만에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 쇼크는 경제에 치명타였다. 가뜩이나 경기 하강기에 들어섰던 한국에 충격은 더 컸다. 저성장 불경기의 원인이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에 입장이 곤란했던 정부에는 좋은 변명, 구실거리가 됐다.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도, 소득주소성장의 효율성과 정당성에 대한 논란도 모두 감춰졌다.

가뜩이나 취약했던 경제가 휘청대기 시작하자 파급은 전 방위로 퍼지고 있다. 그래서 경제 관련 통계·지표·지수 등 ‘숫자’로 된 것은 모두 좋지 않게 나오고 있다. 경제는 끝없이 연결되고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계청의 고용 지표나 한국은행의 성장과 자금 관련 통계에서부터 경제단체들이 내는 온갖 조사·연구 자료까지 예외가 없다. 편의점과 식당부터 멋진 백화점의 최고급 명품 매장까지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모두 아우성이다.

국적 항공기의 90%가 날지 못한 채 지상에서 대기하자 무급휴직을 하고 도산 위기로 내몰린 것은 항공사만이 아니었다. 기내식 보급업체부터 다른 관광산업 종사자까지 한 묶음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한때 공기업 중에서도 대우도 좋고 안정적인 직장으로 꼽혔던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도 위기감이 드높아졌다. 연간 수천만 명에 달하는 이용객을 보며 공항 내 면세판매점 응찰에 경쟁적으로 나섰던 대기업들이 인천공항 매장 철수를 발표했다. 국내 면세점 업계의 ‘빅2’인 롯데와 신라가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을 포기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악순환에 빠지면 경제는 이렇게 추락한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정부 지원을 호소하는 곳은 항공산업만이 아니다. 어려워한다고 정부나 한국은행의 자금 지원을 마구 해줄 수도 없다. 공적 자금이라는 정부 돈은 결국 전 국민의 기존 세금이거나 미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은의 발권력 동원도 돈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니 결국은 세금 부담처럼 되면서 더 나쁜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수없이 반복된 규제혁파 주장이 그래서 다시 나온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이 방법 외에 돈 안 들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를 살리는 길이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다. 규제라는 게 여러 이유로 생겼다는 점이 걸린다면 시기를 못 박아 한시적으로라도 완화해보자는 것이다. 가령 원격진료도 가능하게 하고, 공유경제 기반의 다양한 사업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대기업이라고 가로막았던 신사업 진출 제한도 풀면 투자가 살아나고 그렇게 돈이 돌면 일자리가 최소한 유지라도 되면서 소비도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