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의 한국경제史 3000년 (33) 조선왕조의 개창 (상)
고려는 군사국가…조선은 관료제로 지배한 영토국가, 사유재산·농촌시장 등장…현대 한국인 원형 나타났죠
새로운 시대에서 사회는 지배와 예속의 신분질서로 분열했다. 토지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성립했으며, 소규모 가족경영이 발달했다. 신분으로 갈라진 사회는 유교의 이념으로 통합됐다. 그 속에서 인간들은 보다 나은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투쟁했다. 그 몸부림의 과정에서 현대 한국인의 원형이 빚어졌다.

인구는 1392년 555만 명에서 1810년 1838만 명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그에 상응해 경지가 확충되고 이용이 심화했다. 농촌시장도 성립했다. 조선 5세기에 걸쳐 경제는 세기에 따라 기복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성장했다. 1인당 소득수준이 개선됐는지는 의심스러운 ‘맬서스의 시대’였다.

이씨 왕가의 내력

‘팍스 몽골리카’의 시대에 만주 대부분은 웃치긴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 웃치긴은 칭기즈칸의 막냇동생이다. 웃치긴의 판도에는 다수의 고려인이 여진족과 섞여 살았다. 이성계의 가문도 그러했다. 1255년 이성계의 고조 이안사는 웃치긴으로부터 다루가치의 직위를 하사받았다. 이후 동 직위는 이성계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계승됐다. 이 가문이 고려왕조에 속하는 것은 1359년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고토를 수복할 때 그 지역의 이자춘이 호응해 큰 공을 세우면서부터다. 이자춘과 그의 아들 이성계는 고려의 관직을 부여받았다. 이후 이성계는 고려 조정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권력은 고려의 정규 중앙군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 이성계의 친병 가별초군(家別抄軍)은 몽골식 기마전투와 거친 산악지대에 잘 훈련된 여진족을 핵심 전력으로 했다.

1388년 요동을 장악해 온 몽골 세력이 신흥 명(明) 제국에 항복했다. 고려와 국경을 맞댄 명은 이전의 쌍성총관부에 철령위를 설치해 명의 직할령으로 삼겠다고 고려에 통고했다. 고려는 요동을 정벌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이성계가 그 선봉을 맡았다. 팍스 몽골리카의 변방세력으로 입신해 국제정치 변화에 적응해온 군사가문으로서는 무모한 전쟁이었다. 이성계는 군대를 돌려 고려의 조정을 장악했다. 때를 같이해 웃치긴 역시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명에 항복했다. 군대를 돌린 이성계의 국제감각이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웃치긴과 다를 바 없었다.

도평의사사를 6조로 개편

신라와 고려는 왕도에 집거한 지배공동체가 지방의 예속공동체 위에 군림하는 군사국가였다. 조선은 전국을 관료제적 행정체제로 통합하고 지배한 영토국가였다. 지방행정체제는 도→군현→면→리의 관료제적 서열로 정비됐다. 고려의 군현과 향·부곡은 1100개가 넘었다. 조선은 그것을 335개 군현으로 통합했다. 향·부곡은 모두 폐지됐다. 모든 군현에는 예외 없이 수령이 파견됐다. 고려의 군현을 지배해 온 호장을 위시한 지방세력은 현저히 약화됐다. 조선왕조는 지방세력을 향리 신분으로 규정하고 차별했다. 향리가 지방민에게 행세해 온 기득권은 범죄로 규정됐다. 나아가 군현의 백성은 수령의 불법행위를 고소할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됐다. 이를 계기로 향리는 하등 신분으로 전락했다.

군현 아래의 행정단위는 면과 리였다. 면은 군현의 영역을 몇 개의 방위로 구분한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실질적인 행정단위는 리였다. 리의 총수는 대략 6000을 헤아린 것으로 보인다. 리는 주민의 공동노동이 조직되고 공동의 제사와 축제가 영위되는 공동체였다. 고려까지 농촌사회의 공동체적 통합은 군현을 범위로 했는데, 조선에 들어와 리가 군현을 대신했다. 중앙정부도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집권체제로 정비됐다. 고려왕조에서 최고 의결기구는 70∼80명의 귀족이 참가하는 도평의사사였다. 조선의 태종은 도평의사사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이·호·예·병·형·공의 6조로 분산했다. 6조의 판서는 그의 정무를 국왕에게 직접 보고했으며, 직접 국왕의 결재를 받았다. 6조를 통할하는 의정부가 있지만 국왕을 견제하는 독자의 권한을 갖춘 기관이 아니었다. 왕권의 절대성은 성리학의 정치이념에 의해 지지됐다. 성리학의 세계에서 국왕은 지극한 이치인 하늘을 대신해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불가침의 권위였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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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신라와 고려는 왕도에 집거한 지배공동체가 지방의 예속공동체 위에 군림하는 군사국가였다. 조선은 전국을 관료제적 행정체제로 통합하고 지배한 영토국가였다. 지방행정체제는 도→군현→면→리의 관료제적 서열로 정비됐다. 고려의 군현과 향·부곡은 1100개가 넘었다. 조선은 그것을 335개 군현으로 통합했다. 향·부곡은 모두 폐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