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영업자까지 산재보험 확대, 재원은 누가 책임지나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산업재해보험 가입 요건을 대폭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제한적으로 허용돼온 1인 자영업자도 업종에 관계없이 모두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특고 종사자)와 중소기업 사업주까지 적용 대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특고 종사자에서 27만4000명, 중소기업 사업주 쪽에서 136만5000명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고 추산했다. 가입자 문턱을 한꺼번에 많이 낮춰 ‘산업재해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산재보험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게 됐다. ‘개인사업자냐, 근로자냐’는 해묵은 논란이 반복돼온 특고 종사자는 물론 사업주에게까지 가입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의 각종 재해로부터 더 많은 종사자를 보호하고,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도 최대한 줄여나가자는 것 자체를 나무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나, 혜택 보는 집단이 갑자기 늘어날 때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등의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늘어나는 보험금 지출 부담은 먼저 기업과 기존 가입자에게 전가될 공산이 크다. 결국 재정 투입이 불가피해질 것이며, 산재보험료를 아예 정부가 내주자는 선심 정책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사회보험의 속성이 그렇기도 한 데다 한 번 도입되고 시행되면 빚을 내서라도 계속 굴려가는 게 ‘한국 복지제도의 전통’으로 굳어진 까닭이다.
복지 설계가 추가될 때마다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재정 지출도 늘어나게 된다.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더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과 함께 장기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감내할 수 있도록 시행에서도 시간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서두를수록 내년도 총선용 선심 정책이라는 비판도 커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0월 8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복지 확대의 핵심적 논점은
지속 가능성·재원조달·효율성
'재정 건전화', '페이 고' 원칙 고려를
한때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자주 나왔다. 근래 들어 마치 둑이 터진 것 같은 재정지출 확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을 벌이는 듯한 복지 남발을 보면 이 말이 결코 코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선거를 다분히 의식한 여당 주도의 선심성 정책들은 더욱 그렇다. 포퓰리즘 기반의 퍼주기 정책들이 그만큼 다양한 곳에서 꿈틀거리며 남발 기미를 보이고 있다. ‘누가 소를 키우고 있나’라는 말을 무서운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의 가입 문턱을 확 낮춰 가입할 수 있는 대상자를 넓히겠다는 정부·여당의 발표도 그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 대상자를 넓혀 복잡다기한 산업현장의 온갖 재난으로부터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에 보상을 해주며, 산재보험제도의 사각제도를 없애자는 취지 자체는 좋다. 문제 삼기가 어렵다. 모든 복지가 다 그렇기도 하다. 실제로 다양한 복지제도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제각각 명분과 이유가 있고, 나름의 필요성이나 절박성도 있다. 직접 혜택을 받는 수혜 그룹도 분명해 그들의 애로나 어려운 처지를 보면 복지제도를 두고 제동을 걸거나 비판적 입장을 나타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성적으로는 ‘인정과 휴머니즘’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본질로는 ‘용기와 당위’의 문제다.
복지 아젠다에서 핵심적 논점은 지속 가능성, 재원조달 문제, 전달체계의 효율성, 목표 달성과 성과에서의 합리성,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기여 여부 같은 것일 것이다. 명분이 근사하다거나, 취지가 좋다거나, 이해 관계자들이 모두 애타게 바란다는 등의 표피적 모습이나 현상을 극복해내는 게 중요하다.
특정 정파나 정권의 이익을 담보하는 복지제도가 아닌지도 잘 살펴야 한다. 정치권의 특성상 비용이 얼마나 들든,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나의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일단 시행하자는 게 복지 이슈다. 당장 달콤한 과실은 ‘내 임기 중에 따먹고(PIMT: please in my term)’ 그에 따르는 비용 지불은 ‘내 임기 중에 불가(NIMT: not in my term)’의 행태는 후진 정치의 일반 경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산업재해보험 가입 대상 확대는 기본적으로 ‘근로자란 어떤 존재인가’ ‘어디까지가 근로자이며, 어떤 경우는 사업자인가’라는 해묵은 논쟁거리와도 연결된다. 이번에 자영사업자, 중소기업 사업주도 ‘근로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이 제도의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아울러 특수형태근로 종사자들도 대거 대상에 포함시켰다. 누가 산재보험료를 부담할 것인지 등 제도 유지에 따르는 문제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논쟁의 종점은 재정(나랏돈) 퍼붓기로 결론날 것이라는 게 그간의 한국적 경험칙이다.
한때 국회도 정부도 법을 만들 때 ‘페이고(pay-go: pay as you go, 정책을 만들 때 수반되는 재원 확보 방안도 함께 마련한다는 의미)’ 원칙을 얘기했으나 요즘은 쑥 들어가 버렸다. 재정건전화법 같은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나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부는 돈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소는 누가 키우나. 폼 나는 일만 벌이겠다는 정치권은 누가 감시하나.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산업재해보험 가입 요건을 대폭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제한적으로 허용돼온 1인 자영업자도 업종에 관계없이 모두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특고 종사자)와 중소기업 사업주까지 적용 대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특고 종사자에서 27만4000명, 중소기업 사업주 쪽에서 136만5000명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고 추산했다. 가입자 문턱을 한꺼번에 많이 낮춰 ‘산업재해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산재보험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게 됐다. ‘개인사업자냐, 근로자냐’는 해묵은 논란이 반복돼온 특고 종사자는 물론 사업주에게까지 가입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산업현장의 각종 재해로부터 더 많은 종사자를 보호하고, 산재보험의 사각지대도 최대한 줄여나가자는 것 자체를 나무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도의 지속 가능성이나, 혜택 보는 집단이 갑자기 늘어날 때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등의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늘어나는 보험금 지출 부담은 먼저 기업과 기존 가입자에게 전가될 공산이 크다. 결국 재정 투입이 불가피해질 것이며, 산재보험료를 아예 정부가 내주자는 선심 정책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사회보험의 속성이 그렇기도 한 데다 한 번 도입되고 시행되면 빚을 내서라도 계속 굴려가는 게 ‘한국 복지제도의 전통’으로 굳어진 까닭이다.
복지 설계가 추가될 때마다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재정 지출도 늘어나게 된다.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더라도 충분한 여론 수렴과 함께 장기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감내할 수 있도록 시행에서도 시간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서두를수록 내년도 총선용 선심 정책이라는 비판도 커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0월 8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복지 확대의 핵심적 논점은
지속 가능성·재원조달·효율성
'재정 건전화', '페이 고' 원칙 고려를
한때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자주 나왔다. 근래 들어 마치 둑이 터진 것 같은 재정지출 확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을 벌이는 듯한 복지 남발을 보면 이 말이 결코 코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선거를 다분히 의식한 여당 주도의 선심성 정책들은 더욱 그렇다. 포퓰리즘 기반의 퍼주기 정책들이 그만큼 다양한 곳에서 꿈틀거리며 남발 기미를 보이고 있다. ‘누가 소를 키우고 있나’라는 말을 무서운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의 가입 문턱을 확 낮춰 가입할 수 있는 대상자를 넓히겠다는 정부·여당의 발표도 그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산재보험 대상자를 넓혀 복잡다기한 산업현장의 온갖 재난으로부터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예상치 못한 사고에 보상을 해주며, 산재보험제도의 사각제도를 없애자는 취지 자체는 좋다. 문제 삼기가 어렵다. 모든 복지가 다 그렇기도 하다. 실제로 다양한 복지제도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제각각 명분과 이유가 있고, 나름의 필요성이나 절박성도 있다. 직접 혜택을 받는 수혜 그룹도 분명해 그들의 애로나 어려운 처지를 보면 복지제도를 두고 제동을 걸거나 비판적 입장을 나타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성적으로는 ‘인정과 휴머니즘’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본질로는 ‘용기와 당위’의 문제다.
복지 아젠다에서 핵심적 논점은 지속 가능성, 재원조달 문제, 전달체계의 효율성, 목표 달성과 성과에서의 합리성,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기여 여부 같은 것일 것이다. 명분이 근사하다거나, 취지가 좋다거나, 이해 관계자들이 모두 애타게 바란다는 등의 표피적 모습이나 현상을 극복해내는 게 중요하다.
특정 정파나 정권의 이익을 담보하는 복지제도가 아닌지도 잘 살펴야 한다. 정치권의 특성상 비용이 얼마나 들든,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나의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일단 시행하자는 게 복지 이슈다. 당장 달콤한 과실은 ‘내 임기 중에 따먹고(PIMT: please in my term)’ 그에 따르는 비용 지불은 ‘내 임기 중에 불가(NIMT: not in my term)’의 행태는 후진 정치의 일반 경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산업재해보험 가입 대상 확대는 기본적으로 ‘근로자란 어떤 존재인가’ ‘어디까지가 근로자이며, 어떤 경우는 사업자인가’라는 해묵은 논쟁거리와도 연결된다. 이번에 자영사업자, 중소기업 사업주도 ‘근로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이 제도의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아울러 특수형태근로 종사자들도 대거 대상에 포함시켰다. 누가 산재보험료를 부담할 것인지 등 제도 유지에 따르는 문제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논쟁의 종점은 재정(나랏돈) 퍼붓기로 결론날 것이라는 게 그간의 한국적 경험칙이다.
한때 국회도 정부도 법을 만들 때 ‘페이고(pay-go: pay as you go, 정책을 만들 때 수반되는 재원 확보 방안도 함께 마련한다는 의미)’ 원칙을 얘기했으나 요즘은 쑥 들어가 버렸다. 재정건전화법 같은 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나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부는 돈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소는 누가 키우나. 폼 나는 일만 벌이겠다는 정치권은 누가 감시하나.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