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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사 (5)·끝 - 통화가 움직이는 세상
2008년 인터넷에 ‘나카모토 사토시’란 이름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관리하는 인터넷상의 화폐, ‘비트코인’에 관한 논문이 게재됐다.  ⓒ Md Ashraful Islam
2008년 인터넷에 ‘나카모토 사토시’란 이름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관리하는 인터넷상의 화폐, ‘비트코인’에 관한 논문이 게재됐다. ⓒ Md Ashraful Islam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인플레이션이 이어지자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물가도 같이 상승하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형태의 불황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전 세계로 퍼졌다. 기업 간의 경쟁이 사상 초유의 규모로 심화되면서 선진 공업국은 신속하게 인건비가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옮겼고, 1967년부터 1987년까지의 20년간 글로벌 경제의 버팀목인 다국적 기업의 해외 투자 잔액은 아홉 배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들의 자금과 기술력을 이용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의 신흥공업경제지역(NIES)이 급성장을 이루었다.

아시아 금융 위기는 왜 일어났을까?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 ‘달러 강세’ 쪽으로 방향키를 전환하고, 높은 국채 이자로 전 세계에서 자금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달러 환율이 폭등해 1995년에 달러당 79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3년 후에는 147엔으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호경기에 취해 있던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경제는 재난과도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아시아 금융 위기’다.

1980년대 이후 경제의 세계화라는 물결을 타고 급격하게 성장을 이룩한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경제가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후에도 달러와의 고정환율제를 유지해왔다.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려면 값싼 달러와 연동되는 편이 바람직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갑작스럽게 달러 강세로 전환한 탓에 수년 만에 달러가 80%나 비싸졌다. 그러자 한국의 원화, 태국의 바트화 등도 덩달아 급등했고, 수출이 점차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1997년 헤지펀드(세계적 규모의 투자 집단)가 실제보다 훨씬 높게 평가돼 있던 한국의 원화, 태국의 바트화 등을 팔아치운다. 통화를 팔아 가격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다음 다시 사들여 그 차액으로 돈을 버는 ‘공매도’라는 수법을 통해서였다.

이에 한국과 태국의 금융당국은 달러를 팔아 각각 자국의 화폐를 방어했지만, 자금력 면에서 투기 집단이 훨씬 우위에 있었다. 원화와 바트화는 크게 폭락했고, 주가 또한 곤두박질쳤다. 결국 경제가 파탄 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IMF에 약 360억달러의 자금을 원조받기에 이른다.

비트코인이 통화가 될 수 없는 세계사적 이유

비트코인이 금융 세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미국 제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하는 등, 전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때였다. 이후 몇 년 동안 비트코인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2013년 조세회피처인 키프로스에서 일어난 금융 위기, 이른바 ‘키프로스 위기’ 때 다시금 급부상하게 된다.

유럽연합은 키프로스를 금융 지원하는 조건으로 은행예금에 세금을 약 10% 부과할 것을 요구했는데, 키프로스에 자산을 옮겨둔 러시아 부유층 사이에 ‘암호를 통해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자금을 옮길 수 있는 비트코인이 자산 보전에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가치 폭등이 일어난 것이다.

현재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을 비롯해 1000종류 이상에 달하며, ‘자금 세탁·투기의 도구다’ ‘아니다, 혁신적인 금융 자산 수단’이라는 논란 속에서 가격이 10~30%나 변동하는 등 작은 버블이 진행 중이다.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암호 이론에 따라 통화 발행량이 정해져 있으므로 가치에 ‘거품’이 끼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어째서 특정한 개인에게 ‘통화’를 만드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 그 가치는 무엇이 보증해주는 것인가”라는 중요한 설명이 빠져 있다.

통화의 정의는 ‘국가가 가치를 보증하고 강제로 유통한 화폐’다. 통화는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이 공통 인식인 것이다. 전 세계의 불환지폐가 190여 개국의 중앙은행에 의해 그 가치를 보증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인터넷을 오가는 무국적 비트코인이 돈의 공공성을 계승한다는 말은 상당히 무리한 주장이다.

미래의 통화는 어떤 모습일까?

돈은 언제나 ‘돈 그 자체’와 ‘돈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을 뒷받침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지금까지의 통화 개념을 혁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블록체인은 ‘분산형 공개 장부 기술’이라 불려, 관리자를 통하지 않고도 거래 담당자 간에 그 정통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전파를 통화로 이용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로 평가받아 현재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등의 중앙은행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비트코인,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을 사용한 금융 혁신과 같은 경제 기사가 연일 신문 및 경제 주간지를 장식하고 있다. 은에서 지폐로, 다시 전자화폐로 변모해온 돈의 역사는 앞으로도 변화가 계속될 것이다. 세계 정세를 보는 안목을 기르고, 돈을 둘러싼 시스템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고 싶다면 우리는 통화의 흐름부터 항상 눈여겨봐야 한다.

글 싣는 순서

①화폐의 탄생과 제국의 역사
②대항해 시대와 돈의 흐름
③동전 시대에서 지폐 시대로
④달러, 세계 돈 기준이 되다
⑤통화가 움직이는 세상


김은찬 한경BP 에디터 k_eun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