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장목표 달성 어렵다"며 내놓는 해법이 재정 살포인가
내년도 정부 예산 규모가 윤곽을 드러냈다. 다음주 국무회의 의결을 앞두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513조원대 수준으로 편성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초(超)슈퍼 예산’이라는 올해보다 9% 이상 많다. 올해 9.5% 증가에 이어 2년 연속 과도한 팽창 재정이다.
불황기에는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투자를 유도하고 소비심리를 자극하면서 성장 유망 분야도 키우는 경기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의 선순환 구조에 들어가게끔 하면서 성장 잠재력도 키우도록 효율적으로 쓰는 게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팽창하고 있는 재정이 그렇게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7월 중 60세 이상 취업자가 37만7000명 늘어난 덕분에 전체 고용통계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대부분 일자리가 세금을 퍼부어 급조한 ‘단기·공공 알바’였다.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가며 돈을 풀고 있는데도 고용시장은 점점 더 곪아가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경쟁하듯 쏟아내는 복지 프로그램의 누수 문제도 심각하다. “효과도 확인하지 않은 채 선거를 겨냥해 헛돈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납세자는 화수분이 아니다” “내년에도 이어지는 적자국채는 누가, 어떻게 갚을 건가” “인구는 급감하는데 자녀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세대착취’를 멈춰야 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정부 신뢰를 높이되 궁극적으로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도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경제 전반에 걸친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이 그런 길이다. 과감한 규제 개혁은 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소득불평등도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규제와 기술의 획기적인 혁신 없이는 202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7%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등한 최저임금,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경직된 고용제도, 과보호되는 노동조합 활동 등 고용·노동시장의 숙제만 제대로 개혁해도 경기 활성화에 크게 도움될 것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4~2.5%에 대해서도 “결코 달성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0.2%포인트를 낮췄는데 한 달 만에 그나마도 어렵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재정 확장에 기대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 구조개혁이라는 근본 처방을 외면한 채 돈풀기라는 대증요법을 택하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겠다는 소재·부품·장비산업 지원예산만 해도 규제 혁파와 함께 기업의 숨통을 터주면 2조원 넘는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가 채무가 너무 빨리 늘어난다. 그 어느 때보다 재정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경고도 새겨듣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8월 24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경제 어려우면 재정지출 필요하지만
세수 줄어 적자 국채 발행하는 상황
규제혁파·개혁 등 근본대책 세워야
보통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가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연중 가장 바쁜 시기다. 다음해 나라 살림, 즉 정부의 지출과 재원 조달 계획을 확정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뒤 정기국회로 보내는 시기다. 2020년도 예산 편성에서 최대 관심사는 내리 2년째 10%대에 육박하는 재정 증가의 적절성이다. 경제성장률이 2%가 되느니 마느니 하는 판에 9% 중반대의 증가는 누가 봐도 무리한 것이다. 더구나 세수(稅收)는 줄어들어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판인데 정부가 큰 빚을 내 이곳저곳 쓰겠다고 한다.
2020년에는 정치권 여야가 미래 권력을 염두에 두고 건곤일척의 명운을 거는 국회의원 총선거도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지출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예산 편성에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돈풀기가 많이 스며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자리 관련 예산, 최저임금에 따른 사업자 지원, 현금 배포성 청년지원 등으로 막대한 정부 지출이 있었는데 실제 효과는 점검됐느냐”는 문제 제기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설명이 필요할뿐더러 연말까지 이어질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회가 정부안을 제대로 따져봐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초(超)슈퍼예산’이라는 팽창 예산을 두고 두 가지 본질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린다고 하지만, 그 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느냐 하는 것이 하나다. 필요성이 인정된다 해도 늘어나는 정도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점도 논란거리다. 인구는 급감하는데 저성장은 고착화된다. 지금 빚을 확대해 마구 쓰면 나중에 누가 어떻게 갚느냐 하는 질문에 정부는 성실히 답해야 한다.
조기에 세수가 확 늘어날 가능성도 없고, 한 번 늘어난 복지 예산은 줄이기도 어렵다. 나랏빚이 늘어나면 국가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처럼 수출로 사는 개방경제 지향 국가는 신인도 문제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미래세대에 빚만 넘긴다는 비판은 기성세대 모두가 겸허하게 들어야 할 대목이다.
결국 돈 안 들이고 경제를 살리는 방안을 강구하는 쪽으로 중지를 모아야 한다. 기업이 적극 투자하게 하고, 투자처를 찾지 못해 금융권이나 오가는 ‘부동자금’이 생산적 투자에 나서게 하자는 것이다. 규제 혁파와 더불어 경기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구조개혁이 그런 길이다. 당장은 반대의 벽도 높겠지만 정부가 용기를 내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내년도 정부 예산 규모가 윤곽을 드러냈다. 다음주 국무회의 의결을 앞두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513조원대 수준으로 편성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초(超)슈퍼 예산’이라는 올해보다 9% 이상 많다. 올해 9.5% 증가에 이어 2년 연속 과도한 팽창 재정이다.
불황기에는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투자를 유도하고 소비심리를 자극하면서 성장 유망 분야도 키우는 경기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경제가 성장의 선순환 구조에 들어가게끔 하면서 성장 잠재력도 키우도록 효율적으로 쓰는 게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팽창하고 있는 재정이 그렇게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7월 중 60세 이상 취업자가 37만7000명 늘어난 덕분에 전체 고용통계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대부분 일자리가 세금을 퍼부어 급조한 ‘단기·공공 알바’였다.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가며 돈을 풀고 있는데도 고용시장은 점점 더 곪아가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경쟁하듯 쏟아내는 복지 프로그램의 누수 문제도 심각하다. “효과도 확인하지 않은 채 선거를 겨냥해 헛돈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납세자는 화수분이 아니다” “내년에도 이어지는 적자국채는 누가, 어떻게 갚을 건가” “인구는 급감하는데 자녀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세대착취’를 멈춰야 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정부 신뢰를 높이되 궁극적으로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도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경제 전반에 걸친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이 그런 길이다. 과감한 규제 개혁은 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소득불평등도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규제와 기술의 획기적인 혁신 없이는 2020년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7%대에 머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등한 최저임금,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경직된 고용제도, 과보호되는 노동조합 활동 등 고용·노동시장의 숙제만 제대로 개혁해도 경기 활성화에 크게 도움될 것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4~2.5%에 대해서도 “결코 달성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0.2%포인트를 낮췄는데 한 달 만에 그나마도 어렵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재정 확장에 기대겠다는 태도는 곤란하다. 구조개혁이라는 근본 처방을 외면한 채 돈풀기라는 대증요법을 택하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겠다는 소재·부품·장비산업 지원예산만 해도 규제 혁파와 함께 기업의 숨통을 터주면 2조원 넘는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가 채무가 너무 빨리 늘어난다. 그 어느 때보다 재정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경고도 새겨듣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8월 24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경제 어려우면 재정지출 필요하지만
세수 줄어 적자 국채 발행하는 상황
규제혁파·개혁 등 근본대책 세워야
보통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가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연중 가장 바쁜 시기다. 다음해 나라 살림, 즉 정부의 지출과 재원 조달 계획을 확정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뒤 정기국회로 보내는 시기다. 2020년도 예산 편성에서 최대 관심사는 내리 2년째 10%대에 육박하는 재정 증가의 적절성이다. 경제성장률이 2%가 되느니 마느니 하는 판에 9% 중반대의 증가는 누가 봐도 무리한 것이다. 더구나 세수(稅收)는 줄어들어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판인데 정부가 큰 빚을 내 이곳저곳 쓰겠다고 한다.
2020년에는 정치권 여야가 미래 권력을 염두에 두고 건곤일척의 명운을 거는 국회의원 총선거도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지출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예산 편성에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돈풀기가 많이 스며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자리 관련 예산, 최저임금에 따른 사업자 지원, 현금 배포성 청년지원 등으로 막대한 정부 지출이 있었는데 실제 효과는 점검됐느냐”는 문제 제기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설명이 필요할뿐더러 연말까지 이어질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회가 정부안을 제대로 따져봐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초(超)슈퍼예산’이라는 팽창 예산을 두고 두 가지 본질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린다고 하지만, 그 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느냐 하는 것이 하나다. 필요성이 인정된다 해도 늘어나는 정도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점도 논란거리다. 인구는 급감하는데 저성장은 고착화된다. 지금 빚을 확대해 마구 쓰면 나중에 누가 어떻게 갚느냐 하는 질문에 정부는 성실히 답해야 한다.
조기에 세수가 확 늘어날 가능성도 없고, 한 번 늘어난 복지 예산은 줄이기도 어렵다. 나랏빚이 늘어나면 국가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처럼 수출로 사는 개방경제 지향 국가는 신인도 문제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미래세대에 빚만 넘긴다는 비판은 기성세대 모두가 겸허하게 들어야 할 대목이다.
결국 돈 안 들이고 경제를 살리는 방안을 강구하는 쪽으로 중지를 모아야 한다. 기업이 적극 투자하게 하고, 투자처를 찾지 못해 금융권이나 오가는 ‘부동자금’이 생산적 투자에 나서게 하자는 것이다. 규제 혁파와 더불어 경기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구조개혁이 그런 길이다. 당장은 반대의 벽도 높겠지만 정부가 용기를 내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