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경 사설 깊이 읽기] 복지정책은 '현금 퍼주기'보다 '생산성 복지'로 바뀌어야
[사설] "현금복지 재검토" 뜻 모은 지자체들…과잉 복지 개선 계기돼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 산하에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가 구성돼 곧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염태영 수원시장 주도로 15곳 기초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참석한 그제 준비위원회 논의를 보면 기대할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현금 복지에 대한 제동 논의가 226개 기초지자체 내부에서 나온 게 고무적이다.

뒷감당이 무서운 과잉 복지는 어떤 게 중앙정부 것이고, 어떤 종류가 지자체 사업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복잡하다. 중앙과 지방이 경쟁적이다 보니 지자체마다 온갖 명목의 수당과 ‘무상·반값’ 지원이 난립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곳이 없다. 지난해 각급 지자체가 보건복지부와 ‘협의’한 복지 확대 사업은 1000건이 넘는다. 이 중 446건이 현금성 복지다.

선심성 현금 복지를 지양하자는 게 이 특별위원회의 활동 취지라고 한다. 현금 복지에 대한 성과 분석, 정책 개선 권고안 마련, 중앙과 지방의 복지 분담 원칙과 타협안 등을 2022년 지방선거 전까지 마련하겠다는 목표가 제대로 이뤄지기 바란다. 인구 120만 명의 수원시부터 9700명의 경북 울릉군까지 시·군·구의 여건이나 편차가 워낙 심하고 그에 따른 입장차도 작지 않겠지만, “현금 살포 방식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속될 수도 없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것에서 발전적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복지의 속성상 무분별한 현금 복지라는 판정이 나도 중단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자체든 중앙정부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더구나 최근의 현금 복지는 시·도급 광역지자체에서 주도한 게 많다. 중앙정부가 주도한 프로그램 뒤에는 ‘표 계산’을 먼저 하는 국회도 있다. 지자체에서 복지 개선을 주장하는 이면에는 ‘제도는 유지하되 재원만 중앙정부가 다 책임지라’는 가려진 요구도 적지 않다. 특위 활동에서도 이런 주장은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잉 복지의 군살빼기는커녕 개악이 안 된다는 법도 없다. 차제에 전달체계부터 중장기 재원 마련까지, 과잉 복지에 대한 전면적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기 바란다. 중앙정부도 적극 동참해 ‘생산적 복지’로 가야 한다.

[한경 사설 깊이 읽기] 복지정책은 '현금 퍼주기'보다 '생산성 복지'로 바뀌어야
사설 읽기 포인트
무차별 복지는 미래세대 부담
지속가능성·효율성 등 고려해
기존의 복지정책 재검토해야


복지 문제를 빼놓고는 현대 국가를 논하기가 어렵게 됐다. 속도나 수준이 문제일 뿐 복지 과제는 대부분의 현대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뜨거운 이슈다. 영국 등지에서 먼저 시작돼 북유럽 국가에서 한 단계 수준이 올라간 복지국가론은 여전히 국가의 기존 역할이나 기능과 관련해 제기되는 중요한 논쟁 영역이기도 하다.

복지는 경제 발전, 국가 간 경쟁, 전반적인 정치의 저급화, 유권자발(發) 포퓰리즘 등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국제적 모범규준도, 정답도 없다.

근래 주목할 만한 것은 한편으로는 선심성 복지가 마구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마구잡이식 무차별 복지에 대한 경계도 만만찮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은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크고 작은 선거가 한번 시행될 때마다 터무니없는 복지 공약은 늘어난다. 현금 살포 같은 엉뚱한 복지 프로그램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다. 그럴수록 지속가능한 복지, 효율성이 점검되는 복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생산적인 복지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장기적 관점이 배제된 복지에 나라 경제가 발목 잡혀서는 안 되며, 당장 편하자고 다음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자성이 깔려 있다.

방법론 차원에서도 ‘전달체계의 미완성’, 곧 복지 전달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누수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 반성점으로 곧잘 제기된다. 정확한 복지 대상을 선정하기가 어렵고, 그런 대상을 골라 지원해주는 과정에서 누수가 심각하다는 점은 복지제도에서 앞섰던 유럽 국가들에서 흔한 일이었다. 이런 ‘도덕적 해이’는 복지 수급자 쪽에서도 비롯되지만, 현장을 찾아가며 지급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의 횡령이나 자의적 판단으로도 나타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과잉 복지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쪽에서조차 “복잡하고 다양한 복지를 다 없애고, 아예 일정 수준의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중산층 이하는 국가가 일괄적으로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이론까지 나왔다. 기초소득제가 대표적인데, 시카고 학파 등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오히려 이런 주장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전달체계의 문제점 등 복지의 시행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가 되고, 끝이 없는 비생산적 복지 논쟁에 매몰되지 말자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복지는 좌파·진보, 우파·보수 정부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확대해 왔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간에 구별도 없다. 무엇이든 단기 급등이나 단시일 내 급속 확장은 부작용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현금 살포식 복지에 대한 경계와 자제의 목소리가 시·군·구 기초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한 논의지만 그간 정치권 내부에서 제동이 거의 없었던 터여서 주목된다. 현금 복지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성적으로 제대로 분석해 국가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도 좋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지자체에서는 그동안 “중앙정부와 국회가 복지제도를 설계했는데, 돈은 왜 지자체가 대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종종 있었다. 우리 행정이 대부분 중앙과 지방의 재정 분담(매칭)으로 집행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현금 복지는 곤란하다”는 차원인 만큼 논의의 전제나 지향 목표 모두 의미가 있다. 중앙정부는 물론, 상급 기관 격인 광역 시·도가 반성할 일이 시작된 셈이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