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경제 나빠진 이유, 잘못된 정책 탓" 국민 목소리 듣고 있나국민의 80%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수정 또는 중단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한경의 설문조사 결과(4월 2일자 A1, 4, 6면)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나 비판은 다양하게 이어졌지만, 일반인들의 인식도 이만큼 부정적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전국 7대 도시의 1188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51%)이 ‘시장에 부담 주는 정책’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답했다.
한경 설문조사는 한마디로 우리 경제를 억누르는 ‘정책 리스크’를 비(非)전문가들도 폭넓게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고지에 힘겹게 올라섰으나 ‘형편이 나아졌다’는 응답이 15%에 그친 대목도 주목된다. 곳곳에서 기득권의 공고화, 격차 심화, 미래성장동력 약화 등 여러 가지로 비정상적 상황으로 내몰리는 우리 경제의 민낯이 이 응답에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올 들어 우리 경제는 급격히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투자·소비·고용 모두 지지부진한 가운데 버팀목인 수출에까지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초(超)슈퍼예산’도 모자라 매년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 돈을 풀지만 성장률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그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2.6% 성장도 힘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도 강조했듯이 구조 개혁, 규제 혁파, 고용시장의 유연안정성 확보(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높이기)는 더 미룰 수 없는 ‘3대 과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급등한 최저임금 문제나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대책 없이 시행에 들어간 주52시간 근무제처럼 ‘더 기울어지는 운동장’이 고용·노동 이슈만의 현상이 아니다. 기업 경영을 옥죄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가 다 그렇다. 공공의 비대화와 무분별한 복지 확대로 인한 재정건전성 약화까지 이 와중에 걱정거리로 덧보태어지는 상황이다.
한경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흐름의 경제정책에 대한 냉철한 평가이자 궤도 수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경고라고 봐야 한다. 매일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기업은 물론 개인들도 이제 배울 만큼 배웠고 현명하다. 시장의 작동원리, 일자리 창출의 회로, 국제경제와 자산시장의 민감한 흐름, 경제와 정치·사회의 연관성 등에 대해 두루 잘 안다. 정부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주도했던 개발연대가 아닌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기업을 너무 어린애 취급한다. 경제주체들을 ‘어른’으로 대접해달라”고 한 하소연을 정부와 국회 모두 새겨들어야 한다. 박 회장은 “투자는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기회와 예측의 산물”이라는 언급도 했다. 투자가 위축되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든 현실에 대한 에두른 비판이다. 경제를 이념과 구별하라는 경고에 다름 아닐 것이다.
개방형 강소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 좇아야 살아남는다. 수출과 투자 유치, 일자리까지 여기에 달렸다. 정부는 그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번 설문조사는 상황 진단과 함께 최저임금 동결(58%) 등 단기과제도 확인했지만, 정책입안자들은 그 뒤쪽의 근본 문제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4월 3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논란 여전한 '소득주도성장'
지원 대상인 저소득층 더 어려워져
여론도 반대 많아…재검토되어야
많은 정책들이 그렇듯이, 경제정책도 선택의 문제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파장이나 부작용도 경제 분야에서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소득주도성장이 특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저소득 근로계층에 대한 소득보전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이란 기치 아래 시행돼왔다. 소득주도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 등 친노동계 기구가 제기한 ‘임금주도성장’의 한국판 변형으로, 주류 경제학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은 개념이다. “말이 마차를 끄는 게 아니라,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이라는 비판까지 나온 배경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의 명분과 지향점은 저임금·저소득 계층을 더 지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전문가들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10명에 8명꼴로 이 정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정책의 의도와 달리 저임금 일자리가 확 줄어들고, 계층 간 소득격차는 오히려 심화된 저간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저소득층을 지원하겠다는 선(善)한 의도와 달리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줄어든 역설적 현상에 다수가 주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격차 해소는 정부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노력해야 할 우리 시대 한국 경제의 큰 과제다. 모든 형태의 기득권 깨기, 미래 먹거리 마련하기, 규제 혁파, 산업 구조조정 같은 과제와 함께 정부와 민간, 노사 모두가 합리적으로 의견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격차 해소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가 나빠진 데는 많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국내 요인도 있고 해외 측면도 있다. 기업이나 노조의 잘못된 관행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고령화 같은 사회의 구조적 원인도 있다. ‘일반인’들의 다수는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것도 응답자의 절반을 넘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경제정책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적시에 궤도 수정을 해야 하는 이유다. 현장의 절규나 여론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이를 존중해야 하는 게 경제정책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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