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미국서 또 들통난 중국 스파이칩, 한국엔 없는가

미국과 중국이 ‘중국산 스파이칩 의혹 사건’으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통상갈등에 정치·안보에서의 긴장관계까지 겹쳐 가뜩이나 나쁜 양국 사이를 더 벌려놓을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발단은 1주일 전 “애플과 아마존 웹서비스 데이터센터 서버에서 중국 정부의 감시용으로 추정되는 마이크로칩이 발견됐다”는 미국 언론 보도였다. ‘마이크로칩이 중국의 서버 제조업체에 의해 불법 부착됐으며, 미국 기업들의 거래기밀 수집에 사용됐다’는 내용이었다. 엊그제는 미국의 특정 통신사에서도 같은 스파이칩이 발견됐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정보·보안 전쟁은 우리나라에도 '강건너 불' 아니죠
중국 쪽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부인의 주체가 정부기관이 아니라 관영 언론인 점이 주목된다. 스파이칩의 발견과 폭로 과정에 미국 정보당국이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통상 이런 유의 국가 간 공방은 명쾌한 진실 규명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중국의 민낯이 확인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벼랑 끝으로 향하는 미·중 관계를 두고 새로운 ‘문명의 충돌’로 보는 시각까지 있다. 이번 사건을 현대 국제사회의 흔한 산업스파이전(戰)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사실 규명을 기다리기에 앞서 한국에는 이런 일이 없는지 민관(民官) 공히 제대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도 여러 분야에 걸쳐 경쟁관계가 형성돼 있다. 수교 26년간 함께 축적해온 협력관계가 무시 못 할 성과로 남아 있지만, 통상·산업과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분야가 적지 않다. 당장 내년 3월 국내에서 상용화를 목표로 준비 중인 5세대 통신장비 시장을 중국 화웨이가 석권할 수 있다는 전망과 관련해서도 시사점이 있다. 중국 기업에 경제적 성과를 내줄 가능성만 볼 게 아니라 안보 차원의 위협요인까지 감안해야 한다.

정보전쟁 시대다. 보안과 정보전에서는 우방도, 동맹도 예외가 없는 것이 국가 생존의 냉정한 논리다. 우리 정보당국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북한과 평화공존도 필요하지만 국가정보원의 수장이 남북문제에 매진하면서 산업현장의 보안이 소홀해진 건 아닌지, 꼭 필요한 정보는 획득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정보도, 보안도 국력이고 나라의 존망까지 좌우한다.
<한국경제신문 10월12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美·中 보안 갈등, 스파이칩으로 또 불거져
첨단기술 빼내려는 첩보전 갈수록 격화
中과 경쟁하는 한국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정보·보안 전쟁은 우리나라에도 '강건너 불' 아니죠
말 그대로 좁쌀보다 더 작은 반도체 칩이 안 그래도 최악인 미국과 중국 사이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중국의 컴퓨터 관련 제조업체에서 만든 서브 부품에서 초소형의 마이크로칩이 숨겨져 있었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한 것이다. 벼랑 끝을 향해 한껏 격화돼온 양국 관계에 떠오른 보안 이슈다.

미국에서 나온 폭로 보도를 보면 이 스파이칩은 애플 아마존 같은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과 영업거래 기밀을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채 1주일이 안 돼 비슷한 속보가 이어졌다. 뒤이어진 기사에는 미국 내 유력 통신사가 피해 기업이라고 적시됐다. 미국 내 소비자들의 동요를 감안한 듯, 이번에는 해당 통신사가 구체적으로 적시되지는 않았다. 대신 취재원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점이 돋보였다. 이런 민감한 사안의 기사에 취재원과 취재과정이 버젓이 언급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스파이칩 기사를 잇달아 보도한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부와 인민해방군을 배후로 지목했다. 기술과 영업 기밀을 노린 경쟁 기업 간 단순한 해킹이 아니라는 의미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이런 유의 갈등이나 대립은 사실관계의 입증이 쉽지 않아 서로 간에 공방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부의 핵심 정보기관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정황이 보인다. 스파이칩이 발견되고 폭로되는 과정을 눈여겨보면 정치 안보 측면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전쟁을 주도해온 미국이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을 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중국 화웨이의 경우 한국의 차세대 통신장비 시장을 노리는 등 이 분야에서 세계 각지로 영역을 급격히 넓혀가는 중이다.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중국 기업,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미지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무시 못 할 정도다. 당장 관련 기업들의 주가 하락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스파이칩 사건 직후 미국 FBI는 중국 정보당국의 간부급 첩보원을 항공기업의 기밀 정보를 빼내려 한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나서 “중국이 미국 중간선거에 개입했다”고 맹비난한 뒤의 일이다.

미·중의 정보 및 보안 전쟁이 일회성으로 끝날 일로 보이지 않는다. 양국 간에만 벌어지는 갈등도 아니다. 어느 국가 사이에서도 빚어질 수 있는 가려진 전쟁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서도 이런 문제를 대입해보면 어떨까. 한국의 정보기관은 첨단 산업정보의 획득과 수비를 놓고 벌어지는 이런 치열한 싸움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기업과 산업 정보라고 해서 기업들만의 일이 결코 아니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