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늘려야 할까?
연합뉴스

정부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국민 편의와 의약품 안전성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오는 12월부터 편의점 판매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을 현행 11개에서 최대 20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약국과 24시간 판매점이 모두 없는 지역에서는 일반 소매점에서도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

안전상비의약품 제도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시간이나 공휴일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현재 편의점에서는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1개 품목만 판매한다. 법적으로는 최대 20개 품목까지 가능하지만 제도 시행 후 한 차례도 품목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다.

소비자단체와 편의점 업계는 심야·휴일 의약품 접근성을 높여 국민 편익이 확대될 것이라며 제도 개편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약사단체는 복약지도가 필요한 의약품의 품목과 판매처를 늘리면 오남용과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찬성]심야·휴일 의약품 구매 수월…국민 건강권 보장 위해 확대 필요안전상비의약품 편의점 판매 제도는 약국이 문을 닫은 심야 시간, 휴일에 국민이 가벼운 증상에 필요한 의약품을 긴급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도입한 제도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활 안전과 건강권, 소비자 선택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국민 생활 변화로 의약품 접근이 필요한 소비자층은 다양해졌다. 1인 가구, 맞벌이 가구, 돌봄 부담 가구, 야간 노동자, 이동이 어려운 고령자 등은 약국 운영시간 외에도 최소한의 의약품 접근이 절실하다. 가벼운 증상으로 야간에 응급실을 찾는 경우 대기시간이 길고 비용 부담도 상당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은 심야나 휴일에 발생하는 갑작스러운 통증, 감기 증상, 소화 불량 등에 대처할 수 있는 생활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 편의점 주요 3사의 판매 자료를 살펴보면 상비약 구매는 약국 영업이 끝나는 시간대에 집중됐다. 3사 모두 약국이 문을 닫은 야간과 새벽 시간대 매출 비중이 과반을 넘겼고, 평일에 비해 휴일 매출비중이 높았다.

현재 편의점 판매가 허용된 안전상비약은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3종이다. 하지만 2종은 생산이 중단돼 실제 구매할 수 있는 품목은 11종뿐이다.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는데 품목 수가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국민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최근 실시한 소비자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5.8%가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선진국들은 소비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은 약 30만 종, 일본은 약 1000종의 의약품을 소매점에서 판매한다.

지사제, 제산제, 알레르기 증상 완화제 등 소비자 수요가 높고 안전성 검토가 가능한 품목에 대해서는 안전상비약 품목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약국 문이 열릴 때까지 국민들이 불편과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약사회는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지만,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은 오랫동안 약국에서 판매되며 대중성과 안전성이 검증된 일반의약품이다. 가벼운 증상에 대해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해 사용할 수 있고 오남용 위험이 낮으며 포장단위와 표시기준, 판매 수량 제한 등으로 관리 가능한 품목에 한정된다. 안전성은 품목 확대를 막는 이유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준과 관리체계를 통해 보완해야 할 과제다.

안전상비약 확대는 약국의 휴무 시간대에 발생하는 보건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최소한의 자구책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반대]약물 오남용 등 부작용 커질 것 … 편의성 앞세워 국민 건강 침해해선 안돼의약품은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목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관리되는 제품이다. 단순 영양 보충용 식품이나 공산품과는 다르다. 아무리 대중적인 일반의약품이라 할지라도 이상 반응, 부작용, 상호작용에 따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을 확대하는 것은 의약품 관리의 안전성과 국민 건강권 보호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전문가 검토와 사회적 합의 없이 품목 확대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급격한 고령화로 만성질환자와 다제약물 복용자가 증가하면서 일반의약품도 약사의 전문적인 상담과 안전관리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약물 상호작용이나 중복 복용 위험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일반의약품을 임의로 복용할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해열진통제는 과다 복용할 경우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감기약에 포함된 성분은 졸음이나 혈압 상승 등을 일으켜 운전이나 작업 중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품목이 확대될수록 약물 사고의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스웨덴 등 해외에서는 일반의약품 판매를 완화한 뒤 오남용 문제가 나타나 규제를 다시 강화하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비전문가가 약을 판매하는 구조에서는 환자의 지병, 현재 복용 중인 다른 약물과의 충돌 여부, 금기 사항 등을 전혀 확인해 줄 수 없다. 1회 1개 판매 제한 조치 역시 다른 편의점을 돌며 구매하는 것을 막지 못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최근 3년간 전국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 점검 결과 상당수 업소에서 판매기준 위반 사례가 확인됐다. 정부가 우선 할 일은 품목 확대가 아니라 판매·관리 실태에 대한 체계적 모니터링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다.

약국은 단순히 약을 파는 곳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병원 방문을 권유하는 1차 보건의료의 게이트키퍼 역할을 한다. 최근 365일 야간 운영약국이 증가하고 있고 휴일지킴이약국, 공공심야약국 운영을 통해 취약시간 약국 접근성 사각지대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과 지원 부족으로 공공심야약국은 전국 242개에 불과하다. 심야·휴일에도 전문적인 복약지도를 받을 수 있는 공공심야약국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늘리고, 야간 병·의원 연계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경제적 효율이나 편의성과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지금 시급한 것은 편의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가 아니라 일반의약품 안전 사용을 위한 규제를 강화하는 일이다.
[생각하기]국민 편익, 안전성 함께 높일 대안 찾아야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를 둘러싼 논쟁은 소비자의 이용 편의성과 의약품 복용의 안전성이 대립하는 문제다. 대다수 국민이 품목 확대에 공감하지만, 안전성을 우려하는 약사단체의 목소리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정부가 10년 넘게 품목을 확대하지 못한 배경에는 약사단체의 반발 외에도 국민 건강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신중한 고민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공론화 과정에서는 품목을 몇 개 늘릴지보다 접근성과 안전성이 조화를 이루는 대안 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복약 지도 공백이다. 인공지능(AI)과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보완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와 연동해 부작용을 검증하거나, 공공심야약국 약사와 전화 또는 화상으로 상담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가 보건 사각지대를 메우는 책임을 민간 편의점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공공심야약국 확대 등 공공보건 안전망 구축에 예산과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방안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소비자의 자율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 스스로 약물의 효능과 부작용, 올바른 복용법을 인지하고 오남용을 방지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부작용 우려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홍보·교육과 함께 의약품 포장 및 설명서를 더욱 직관적이고 알기 쉽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

양준영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