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급팽창한 내년 예산안, 국회 심의가 더욱 중요해졌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470조5000억원 규모로 확정됐다. 올해 본예산보다 9.7% 많다. 확장 기조가 더욱 뚜렷해졌다. 보건·노동 부문까지 포함한 복지 예산(162조2000억원) 비중이 역대 최대인 34.5%로 치솟은 것과 23조5000억원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이 먼저 보인다. 일자리 예산도 올해보다 22%나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 규모가 됐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제(官製)일자리가 과연 지속 가능한지 치밀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초(超)슈퍼예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라살림이 급팽창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게 됐다.
불황일 때 재정의 역할, 나아가 재정 확장의 긍정적 측면을 모르는 바 아니다. ‘고용 대란’에 직면한 정부의 심경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가용 재원을 한껏 동원하겠다는 식의 재정 투입만으로 경제를 살려내기는 어렵다. 규제 혁파와 같은 투자 유인책 없이 ‘재정 총동원 전략’을 편다고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복지가 개선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난해에도 일자리 창출에 꼭 필요하다며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지만, 결과가 어땠는지 돌아봐야 한다.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청년내일채움 공제사업’ 같은 추경사업의 자금집행률은 각각 32%, 46%에 그쳤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이런 항목이 내년 예산안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결국 국회의 역할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수요예측이 정확한지, 투입경로나 책임기관은 명확한지, 따져볼 세부 항목이 적지 않다. 큰 틀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시대를 돌파할 성장 동력을 확충하면서 경기의 마중물 역할도 해낼지 제대로 점검하는 예산 심의가 돼야 한다. 정부의 세수(稅收)낙관론과 재정건전성 등 올가을 정기국회에서는 함께 논의돼야 할 사안이 많다.
무엇보다도 야당의 제 역할이 관건이다. 예산 심의도, 관련법안 심의도 건성건성 한다면 야당이라고 해도 위축된 경제와 고용 대란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지역구 민원이나 특정 이해집단의 관심사에 매몰돼 ‘쪽지 예산’이나 끼워 넣을 궁리나 할 한가한 국면이 아니다. 470조원에 이르는 예산의 방향성 점검도 중요하지만, 곳곳에 스며든 거품을 제거하고 비효율·낭비 항목을 차단해야 한다. 시야를 넓혀 규제 개혁, 기업 기(氣)살리기, 시장기능 활성화 등 ‘돈 안 드는 대안 정책’을 적극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야당들은 올가을 국회에서 수권능력을 심판받겠다는 각오로 예산심의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한국경제신문 8월29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정부는 경제 회복에 도움 되게
내년 예산규모 크게 늘린다지만
국가재정에는 위험 부담 커져
나라 살림(정부 예산)의 편성과 집행권은 정부(행정부)에 있다. 이를 심의하고 승인하는 것은 국회(입법부)의 고유한 권한이다. 3권 분립체제에서 의미 있는 국가권력의 분점이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의 배분’은 입법 활동만큼이나 중요한 국가의 기능이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헌법에 규정된 것이다.
정당들은 예산의 편성과 집행이 정치적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편이다. 유권자를 향한 온갖 사탕발림 같은 공약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정치는 철학과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판매하는 행위라고도 한다. 정당들이 행정권과 입법권을 함께 장악하려고 기를 쓰는 데는 예산을 간섭받지 않고 써 보겠다는 이유도 있다.
정부예산 문제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다. 확대재정(큰 정부)으로 가느냐, 긴축재정(작은 정부)을 지향하느냐의 관점이 출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2년째 재정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세금을 더 걷든, 정부가 빚(채권 발행)을 더 내든 방법론은 부차적이다. 정부 지출을 확대하려는 이유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욕 때문이기도 하고, 복지 프로그램을 확충하겠다는 의지 같은 것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일자리나 복지 프로그램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가, 다른 부작용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늘어난 정부 예산을 어느 쪽에 많이 배정하는가도 늘 논쟁거리다. 경기가 불황일 때 재정의 역할을 키운다는 취지라면 사회간접자본(SOC) 등 경기활성화의 마중물이 되는 쪽 예산을 늘려야 한다. 일자리 예산을 두고는 논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경기 활성화용 확대예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 사정이 나쁜데 정부 지출을 확대하면 국가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재정상태가 어떻게 될지 전망을 잘해가면서 예산 편성을 해야 한다. 국가 재정이 든든해야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도 보다 쉽게 돌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모든 논의를 예산 심의권을 가진 국회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기 국회의 중요한 임무다. 이런저런 명분으로 정부가 늘려 잡아놓은 예산에 허수는 없는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없는지, 모두 국회가 할 일이다. 각 예산 항목과 관련 법률과의 관계에서 문제점이 없는지도 국회가 규명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470조5000억원 규모로 확정됐다. 올해 본예산보다 9.7% 많다. 확장 기조가 더욱 뚜렷해졌다. 보건·노동 부문까지 포함한 복지 예산(162조2000억원) 비중이 역대 최대인 34.5%로 치솟은 것과 23조5000억원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이 먼저 보인다. 일자리 예산도 올해보다 22%나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 규모가 됐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관제(官製)일자리가 과연 지속 가능한지 치밀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초(超)슈퍼예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라살림이 급팽창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게 됐다.
불황일 때 재정의 역할, 나아가 재정 확장의 긍정적 측면을 모르는 바 아니다. ‘고용 대란’에 직면한 정부의 심경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가용 재원을 한껏 동원하겠다는 식의 재정 투입만으로 경제를 살려내기는 어렵다. 규제 혁파와 같은 투자 유인책 없이 ‘재정 총동원 전략’을 편다고 고용 사정이 나아지고 복지가 개선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난해에도 일자리 창출에 꼭 필요하다며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지만, 결과가 어땠는지 돌아봐야 한다.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청년내일채움 공제사업’ 같은 추경사업의 자금집행률은 각각 32%, 46%에 그쳤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이런 항목이 내년 예산안에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결국 국회의 역할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수요예측이 정확한지, 투입경로나 책임기관은 명확한지, 따져볼 세부 항목이 적지 않다. 큰 틀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시대를 돌파할 성장 동력을 확충하면서 경기의 마중물 역할도 해낼지 제대로 점검하는 예산 심의가 돼야 한다. 정부의 세수(稅收)낙관론과 재정건전성 등 올가을 정기국회에서는 함께 논의돼야 할 사안이 많다.
무엇보다도 야당의 제 역할이 관건이다. 예산 심의도, 관련법안 심의도 건성건성 한다면 야당이라고 해도 위축된 경제와 고용 대란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지역구 민원이나 특정 이해집단의 관심사에 매몰돼 ‘쪽지 예산’이나 끼워 넣을 궁리나 할 한가한 국면이 아니다. 470조원에 이르는 예산의 방향성 점검도 중요하지만, 곳곳에 스며든 거품을 제거하고 비효율·낭비 항목을 차단해야 한다. 시야를 넓혀 규제 개혁, 기업 기(氣)살리기, 시장기능 활성화 등 ‘돈 안 드는 대안 정책’을 적극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야당들은 올가을 국회에서 수권능력을 심판받겠다는 각오로 예산심의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한국경제신문 8월29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정부는 경제 회복에 도움 되게
내년 예산규모 크게 늘린다지만
국가재정에는 위험 부담 커져
나라 살림(정부 예산)의 편성과 집행권은 정부(행정부)에 있다. 이를 심의하고 승인하는 것은 국회(입법부)의 고유한 권한이다. 3권 분립체제에서 의미 있는 국가권력의 분점이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의 배분’은 입법 활동만큼이나 중요한 국가의 기능이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헌법에 규정된 것이다.
정당들은 예산의 편성과 집행이 정치적 신념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편이다. 유권자를 향한 온갖 사탕발림 같은 공약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정치는 철학과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판매하는 행위라고도 한다. 정당들이 행정권과 입법권을 함께 장악하려고 기를 쓰는 데는 예산을 간섭받지 않고 써 보겠다는 이유도 있다.
정부예산 문제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이 있다. 확대재정(큰 정부)으로 가느냐, 긴축재정(작은 정부)을 지향하느냐의 관점이 출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2년째 재정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세금을 더 걷든, 정부가 빚(채권 발행)을 더 내든 방법론은 부차적이다. 정부 지출을 확대하려는 이유는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욕 때문이기도 하고, 복지 프로그램을 확충하겠다는 의지 같은 것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일자리나 복지 프로그램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가, 다른 부작용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늘어난 정부 예산을 어느 쪽에 많이 배정하는가도 늘 논쟁거리다. 경기가 불황일 때 재정의 역할을 키운다는 취지라면 사회간접자본(SOC) 등 경기활성화의 마중물이 되는 쪽 예산을 늘려야 한다. 일자리 예산을 두고는 논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경기 활성화용 확대예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 사정이 나쁜데 정부 지출을 확대하면 국가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재정상태가 어떻게 될지 전망을 잘해가면서 예산 편성을 해야 한다. 국가 재정이 든든해야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도 보다 쉽게 돌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모든 논의를 예산 심의권을 가진 국회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기 국회의 중요한 임무다. 이런저런 명분으로 정부가 늘려 잡아놓은 예산에 허수는 없는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은 없는지, 모두 국회가 할 일이다. 각 예산 항목과 관련 법률과의 관계에서 문제점이 없는지도 국회가 규명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