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업'아닌 '농사'에 안주케 하는 보조금, 전면 재검토해야
농림축산식품부가 쌀값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쌀 변동직불금제도의 개선안을 마련했다. 쌀 변동직불금제도가 쌀 과잉 생산을 부추겨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제도 개선안은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하는 대신 고정직불금제 단가(현재 농지 ㏊당 평균 100만원)를 인상하는 방안과 변동직불금제도를 유지하되 농가에 생산조정(쌀을 다른 작물로 전환)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고정·변동직불금제를 모두 폐지하고 농가소득을 기준으로 새로운 보조금을 주는 방안도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 정도 수준의 제도 개선안으로는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농가들을 ‘농업’ 아닌 ‘농사’에 안주시키는 보조금 위주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농가의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지 않고 또 다른 보조금으로 기존 보조금을 돌려막는다면 정부 의존도를 심화시킬 뿐이다.
지난해 세제 지원 등 간접 지원액을 제외한 정부의 직접적인 쌀 지원 예산(직불금·수급안정자금)만 5조6800억원에 달했다. 농식품부 예산의 39.2%였다. 그럼에도 농업 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 매년 30만t의 쌀이 남아도는데도 대다수 농가가 보조금 타기 쉽고 짓기 쉬운 쌀농사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나눠주기 복지’로 전락한 보조금을 줄여 농가의 체질을 개선하고, 민간 자본이 첨단 농업과 신기술 농업에 집중 투자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농업은 신성장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글, 알리바바 등 글로벌 기업들은 첨단 식물공장인 ‘스마트 팜’ 운영과 관련한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막혀 있다. 동부팜한농(팜한농)은 유리온실을 이용한 수출용 토마토 생산을 포기했고, LG CNS는 새만금 스마트 팜 단지 조성 사업을 포기했다.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으로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농민단체의 반발 때문이었다. 보조금에 의존하고 쪼그라들고 있는 기득권이나 지키겠다는 농업에 미래가 있을 리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5월9일자> 한국에서 농업은 산업이 아니라 신화에 가까운 영역이다.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 기능적으로 대등하게 동참하고 기여하는 독립적 산업이 아니라 과보호되고 때로는 신성불가침 지대처럼 여겨지는 대상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과학이 스며들 여지가 별로 없고, 기술과 자본이 투입될 통로도 여의치 않다. 여기에는 해묵은 이른바 ‘쌀주권론’이 있다. ‘쌀은 생명’이라는 식의 지극히 감성적인 구호가 계속 먹히는 한 한국의 농업은 무슨 기념물처럼 보호 일변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종류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다양한 보조금이 그렇게 투입됐다. 농업에 매몰된 정책자금은 정확한 통계도 없을 지경이지만, 천문학적인 규모인 것은 분명하다. 한번 정해지면 농업부문으로의 지원은 어디서도 문제 제기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예산의 배정권을 휘두르는 국회가 그렇게 논쟁과 다툼을 피해왔고, 언론도 비슷하다.
그토록 보호하고 육성한 결과로 한국의 농업은 어떤가. 다른 산업이나 사회 각 부문에 비해 한국의 농업은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여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올리는 ‘산업화’는 요원하고, 오랜 전통의 소규모 ‘농사’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중국을 비롯해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시장을 개방해 경쟁에 노출할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농업은, 특히 쌀농사는 예외가 됐다. 글로벌 개방 시대에 경쟁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획기적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떤 곳에서나 연목구어다.
물론 농업을 선진화하자는 정책적 시도나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업이야말로 본원적으로 1차 산업이지만, 농축수산물의 가공(2차 산업)을 거치고 유통단계(3차 산업)에서 또 한 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으니 ‘6차 산업’이라며 한국 농업을 중흥시키자는 노력도 있었다. 한국의 과일 배가 유럽 왕실도 격찬한 수출품이 되기도 했고, 중국인들에겐 한국의 농어산물이 ‘프리미엄’급 고가 상품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게 가공품을 중심으로 수출도 많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제한적이고 갈 길이 멀다.
스마트 농업에 뛰어들어 선진 농업을 개척하겠다던 대기업들의 꿈도 농업계의 반대로 무산되곤 했다. 농민들을 내세우는 농업 외곽의 여러 계층 책임도 있다. 온갖 농민단체라는 곳뿐 아니라 농협이나 축협 수협 등에 대한 비판도 그래서 나왔다. 우선은 힘들어도 보조금 제도부터 확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 예산에 기대기보다 대기업 등 민간자본이 농업 쪽으로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굳이 국내시장만 겨냥하는 농업일 필요가 없다. 젊은 세대를 농촌으로 유인하려면 과학화를 비롯해 규모의 영농이 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농림축산식품부가 쌀값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쌀 변동직불금제도의 개선안을 마련했다. 쌀 변동직불금제도가 쌀 과잉 생산을 부추겨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제도 개선안은 변동직불금제를 폐지하는 대신 고정직불금제 단가(현재 농지 ㏊당 평균 100만원)를 인상하는 방안과 변동직불금제도를 유지하되 농가에 생산조정(쌀을 다른 작물로 전환)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고정·변동직불금제를 모두 폐지하고 농가소득을 기준으로 새로운 보조금을 주는 방안도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 정도 수준의 제도 개선안으로는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농가들을 ‘농업’ 아닌 ‘농사’에 안주시키는 보조금 위주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농가의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지 않고 또 다른 보조금으로 기존 보조금을 돌려막는다면 정부 의존도를 심화시킬 뿐이다.
지난해 세제 지원 등 간접 지원액을 제외한 정부의 직접적인 쌀 지원 예산(직불금·수급안정자금)만 5조6800억원에 달했다. 농식품부 예산의 39.2%였다. 그럼에도 농업 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 매년 30만t의 쌀이 남아도는데도 대다수 농가가 보조금 타기 쉽고 짓기 쉬운 쌀농사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나눠주기 복지’로 전락한 보조금을 줄여 농가의 체질을 개선하고, 민간 자본이 첨단 농업과 신기술 농업에 집중 투자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농업은 신성장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구글, 알리바바 등 글로벌 기업들은 첨단 식물공장인 ‘스마트 팜’ 운영과 관련한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막혀 있다. 동부팜한농(팜한농)은 유리온실을 이용한 수출용 토마토 생산을 포기했고, LG CNS는 새만금 스마트 팜 단지 조성 사업을 포기했다.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으로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농민단체의 반발 때문이었다. 보조금에 의존하고 쪼그라들고 있는 기득권이나 지키겠다는 농업에 미래가 있을 리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5월9일자> 한국에서 농업은 산업이 아니라 신화에 가까운 영역이다.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 기능적으로 대등하게 동참하고 기여하는 독립적 산업이 아니라 과보호되고 때로는 신성불가침 지대처럼 여겨지는 대상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과학이 스며들 여지가 별로 없고, 기술과 자본이 투입될 통로도 여의치 않다. 여기에는 해묵은 이른바 ‘쌀주권론’이 있다. ‘쌀은 생명’이라는 식의 지극히 감성적인 구호가 계속 먹히는 한 한국의 농업은 무슨 기념물처럼 보호 일변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종류도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다양한 보조금이 그렇게 투입됐다. 농업에 매몰된 정책자금은 정확한 통계도 없을 지경이지만, 천문학적인 규모인 것은 분명하다. 한번 정해지면 농업부문으로의 지원은 어디서도 문제 제기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예산의 배정권을 휘두르는 국회가 그렇게 논쟁과 다툼을 피해왔고, 언론도 비슷하다.
그토록 보호하고 육성한 결과로 한국의 농업은 어떤가. 다른 산업이나 사회 각 부문에 비해 한국의 농업은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여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올리는 ‘산업화’는 요원하고, 오랜 전통의 소규모 ‘농사’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중국을 비롯해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시장을 개방해 경쟁에 노출할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농업은, 특히 쌀농사는 예외가 됐다. 글로벌 개방 시대에 경쟁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획기적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떤 곳에서나 연목구어다.
물론 농업을 선진화하자는 정책적 시도나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업이야말로 본원적으로 1차 산업이지만, 농축수산물의 가공(2차 산업)을 거치고 유통단계(3차 산업)에서 또 한 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으니 ‘6차 산업’이라며 한국 농업을 중흥시키자는 노력도 있었다. 한국의 과일 배가 유럽 왕실도 격찬한 수출품이 되기도 했고, 중국인들에겐 한국의 농어산물이 ‘프리미엄’급 고가 상품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게 가공품을 중심으로 수출도 많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제한적이고 갈 길이 멀다.
스마트 농업에 뛰어들어 선진 농업을 개척하겠다던 대기업들의 꿈도 농업계의 반대로 무산되곤 했다. 농민들을 내세우는 농업 외곽의 여러 계층 책임도 있다. 온갖 농민단체라는 곳뿐 아니라 농협이나 축협 수협 등에 대한 비판도 그래서 나왔다. 우선은 힘들어도 보조금 제도부터 확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 예산에 기대기보다 대기업 등 민간자본이 농업 쪽으로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굳이 국내시장만 겨냥하는 농업일 필요가 없다. 젊은 세대를 농촌으로 유인하려면 과학화를 비롯해 규모의 영농이 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