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가·원료·공정 공개에 근로감독까지… 기업 숨 쉴 틈 없다
기업들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노동권, 환경, 산업안전 등이 강조되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서다. 근로자 복지와 안전한 산업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자율적 기업경영과 적정선에서의 조화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공권력에 의한 기업 영역 침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엊그제 통신사의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통신서비스는 공공재 내지 필수재인 만큼 원가를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주파수가 공공재인 것은 맞지만 이를 이용한 이동통신 서비스가 공공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반(反)시장주의적 발상”(조동근 명지대 교수)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걱정되는 것은 통신비 원가 공개가 정부의 가격 통제로 이어질 게 뻔하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격 정보 공개와 아파트 분양가 공개 항목 확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기업이 만들거나 수입하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인터넷 등에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원료는 영업비밀이라는 게 기업들 입장이지만, 정부는 노동자 건강과 산업재해 입증에 필요하다며 밀어붙일 태세다. 삼성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 공정 보고서 공개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요즘 기업들은 바짝 엎드려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지배구조 개선, 적폐 청산, 갑질 척결 등의 분위기에 짓눌려 정부 눈치만 보는 신세다. 정부의 특별근로감독 횟수가 1년 새 네 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기업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기업과 기업인이 죄인 취급받는 현실에 숨조차 제대로 못 쉰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경방과 전방이 국내 공장 폐쇄, 해외 이전을 결정한 게 그렇다. 2010~2016년 국내 주요 대기업 7곳의 국내 직원 수는 8.5% 늘어난 반면 해외는 70.5%나 늘었다. 문재인 정부 이전 통계지만 이런 추이는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만든 기업들을 업어드리겠다”고 했다. 업어 줄 기업을 정부가 밖으로 내쫓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4월14일자> 사설의 논의점은 대법원 판결이다. 주파수가 공공재라는 논리로 통신사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게 대법원 법리였다. ‘주파수가 과연 공공재인가’라는 것에서부터 ‘일부 사회단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논란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쟁거리를 남긴 판결이다. 근본적으로 대법원이 기업 경영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점을 남겼다.
일부 사회단체의 원가 공개 요구를 법원이 수용하자 국회에서는 즉각 관련 법도 발의됐다. 집권 여당의 모 의원이 통신요금을 결정할 때 정부 외에 민간의 사회단체나 소비자단체가 참여하도록 한 법안이다. 통신요금을 시장에서 움직이는 서비스상품이 아니라 제3자인 정부와 사회단체가 통제할 수 있는 공공요금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시적으로 통신요금은 동결되거나 최소한으로 오를 수도 있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통신산업에서 새로운 기술의 출현도, 통신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도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5G’ 서비스만 해도 활용 가능성을 내다본 통신사들의 큰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의 대명사처럼 진행되고 있는 자율주행차도 우리 눈앞에 다가섰다. 5G의 통신 서비스가 없으면 자율주행차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요금이 묶이고, 그에 앞서 원가를 공개해야 하고, 영업비밀인 공정 과정까지 다 내놔야 한다면 어느 기업이 사활이 걸린 대형 투자에 나서겠나.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대한 정부의 개입·간섭은 매우 위험하다. 그 극단적 경우가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다. 바로 사회주의 혹은 공산 국가들이다. 우리 사회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논란이나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격 정보 공개 압박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점과 부작용은 심각한 것이다. 당장은 아파트값이 통제되는 것 같은 착시가 나타나고, 서민들이 즐겨 먹는 식품 가격이 안정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갈 수 없고, 또 다른 쪽에서 부작용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과거 무수한 시장 개입 역사에서 확인된 바다.
삼성의 반도체 관련 기술공정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고용노동부에 대한 우려도 그렇다. 같은 정부 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논란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이렇게 기업을 압박하고, 반(反)시장 정책을 쉽게 추진하고, 법원과 국회까지 이 기류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내 기업들은 투자와 이익 창출이 자유로운 국가로 필사적으로 이전해 나가는 게 당연하다. 더한 것은 외국에서도 한국으로 더 이상 투자를 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구글코리아 애플코리아 한국GM 같은 기업이 이 땅에서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투자가 위축되면 필연적으로 일자리도 줄어든다. 투자가 없어지면 소비가 줄어들고 신규 일자리는 물론 기존 일자리도 없어진다. ‘도시형, 공장형, 연구실형, 사무실형’ 일자리가 없어지면 농경사회로 돌아갈 텐가. 우리에게는 제대로 농사지을 땅도 없지 않나.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기업들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노동권, 환경, 산업안전 등이 강조되면서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서다. 근로자 복지와 안전한 산업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자율적 기업경영과 적정선에서의 조화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공권력에 의한 기업 영역 침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엊그제 통신사의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통신서비스는 공공재 내지 필수재인 만큼 원가를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주파수가 공공재인 것은 맞지만 이를 이용한 이동통신 서비스가 공공재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반(反)시장주의적 발상”(조동근 명지대 교수)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걱정되는 것은 통신비 원가 공개가 정부의 가격 통제로 이어질 게 뻔하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격 정보 공개와 아파트 분양가 공개 항목 확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기업이 만들거나 수입하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인터넷 등에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원료는 영업비밀이라는 게 기업들 입장이지만, 정부는 노동자 건강과 산업재해 입증에 필요하다며 밀어붙일 태세다. 삼성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 공정 보고서 공개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요즘 기업들은 바짝 엎드려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지배구조 개선, 적폐 청산, 갑질 척결 등의 분위기에 짓눌려 정부 눈치만 보는 신세다. 정부의 특별근로감독 횟수가 1년 새 네 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기업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기업과 기업인이 죄인 취급받는 현실에 숨조차 제대로 못 쉰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경방과 전방이 국내 공장 폐쇄, 해외 이전을 결정한 게 그렇다. 2010~2016년 국내 주요 대기업 7곳의 국내 직원 수는 8.5% 늘어난 반면 해외는 70.5%나 늘었다. 문재인 정부 이전 통계지만 이런 추이는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만든 기업들을 업어드리겠다”고 했다. 업어 줄 기업을 정부가 밖으로 내쫓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4월14일자> 사설의 논의점은 대법원 판결이다. 주파수가 공공재라는 논리로 통신사의 원가를 공개하라는 게 대법원 법리였다. ‘주파수가 과연 공공재인가’라는 것에서부터 ‘일부 사회단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논란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쟁거리를 남긴 판결이다. 근본적으로 대법원이 기업 경영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점을 남겼다.
일부 사회단체의 원가 공개 요구를 법원이 수용하자 국회에서는 즉각 관련 법도 발의됐다. 집권 여당의 모 의원이 통신요금을 결정할 때 정부 외에 민간의 사회단체나 소비자단체가 참여하도록 한 법안이다. 통신요금을 시장에서 움직이는 서비스상품이 아니라 제3자인 정부와 사회단체가 통제할 수 있는 공공요금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시적으로 통신요금은 동결되거나 최소한으로 오를 수도 있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통신산업에서 새로운 기술의 출현도, 통신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도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5G’ 서비스만 해도 활용 가능성을 내다본 통신사들의 큰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의 대명사처럼 진행되고 있는 자율주행차도 우리 눈앞에 다가섰다. 5G의 통신 서비스가 없으면 자율주행차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요금이 묶이고, 그에 앞서 원가를 공개해야 하고, 영업비밀인 공정 과정까지 다 내놔야 한다면 어느 기업이 사활이 걸린 대형 투자에 나서겠나.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대한 정부의 개입·간섭은 매우 위험하다. 그 극단적 경우가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다. 바로 사회주의 혹은 공산 국가들이다. 우리 사회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논란이나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격 정보 공개 압박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점과 부작용은 심각한 것이다. 당장은 아파트값이 통제되는 것 같은 착시가 나타나고, 서민들이 즐겨 먹는 식품 가격이 안정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갈 수 없고, 또 다른 쪽에서 부작용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과거 무수한 시장 개입 역사에서 확인된 바다.
삼성의 반도체 관련 기술공정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고용노동부에 대한 우려도 그렇다. 같은 정부 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논란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이렇게 기업을 압박하고, 반(反)시장 정책을 쉽게 추진하고, 법원과 국회까지 이 기류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내 기업들은 투자와 이익 창출이 자유로운 국가로 필사적으로 이전해 나가는 게 당연하다. 더한 것은 외국에서도 한국으로 더 이상 투자를 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구글코리아 애플코리아 한국GM 같은 기업이 이 땅에서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투자가 위축되면 필연적으로 일자리도 줄어든다. 투자가 없어지면 소비가 줄어들고 신규 일자리는 물론 기존 일자리도 없어진다. ‘도시형, 공장형, 연구실형, 사무실형’ 일자리가 없어지면 농경사회로 돌아갈 텐가. 우리에게는 제대로 농사지을 땅도 없지 않나.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