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시아, 시리아 화학무기 놓고 갈등 격화

미국·영국·프랑스
시리아 화학무기 저장시설 등에 미사일 105발 쏟아부어

시리아는 지정학적 요충지… 시아파·수니파 종교 갈등에
이란·이스라엘 주변국 대립… 美·러시아도 개입해 상황 복잡
[이슈 & 이슈] 국제 대리전으로 번지는 시리아 7년 내전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와 함께 시리아 현지시간으로 14일 새벽 4시 다마스쿠스 북동쪽 바르자의 과학연구센터와 중서부 홈스에 있는 화학무기 저장시설 등 세 곳에 미사일 105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7일 시리아 정부가 자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화학무기 공격으로 반군 장악지역인 두마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70명 이상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진 지 1주일 만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그를 후원하는 러시아를 겨냥한 서방의 강력한 무력 시위라는 게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의 분석이다.

미국·영국·프랑스의 ‘3각 공조’

시리아 공습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이번까지 두 번 이뤄졌다. 미국은 지난해 4월 단독으로 샤리아트에 있는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에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을 쏟아부었다. 1년 후인 이번 공습엔 영국과 프랑스가 동참했다. 미국의 파리기후협정 탈퇴 선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을 놓고 이견을 보였던 미국 영국 프랑스는 일제히 군사공격 사실을 밝히며 시리아와 러시아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을 가리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 괴물의 범죄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시리아 공습은 세계 어디서든 화학무기 사용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경고”라고 말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은 프랑스가 설정한 한계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공습 규모는 작년의 두 배이며, 공습 목표물도 두 곳 더 많아졌다”고 전했다. 미국 국방부는 공습 다음날인 14일(미국 현지시간) 이번 시리아 공습이 목표물로 삼은 화학무기 관련 시설 세 곳을 모두 명중시켰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임무 완료(Mission accomplished!)’라고 밝혔다.
[이슈 & 이슈] 국제 대리전으로 번지는 시리아 7년 내전
對러시아 ‘군사적 경고’ 관측도

케네스 매켄지 미 합참 중장은 “미국과 동맹들이 발사한 어떤 미사일도 시리아 방어망에 의해 경로에 지장을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시리아와 러시아가 “대부분 미사일을 요격했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다. 러시아군은 시리아 방공망이 미사일 70% 이상을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정부는 이번 공습이 러시아와 이란의 보복공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시리아 공습은 2015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본격 개입해 온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경고란 해석이 많다.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은 최근 악화일로다.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에 따른 트럼프 정부의 러시아 추가 제재가 내려졌다. 지난 3월 러시아 출신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으로 영국 등 서방국가들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고 러시아가 맞대응하는 등 갈등이 심화됐다.

국제전으로 격화되는 끝없는 시리아 분쟁

시리아 내전의 시작은 2011년 3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불어닥친 민주화 운동을 말하는 ‘아랍의 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을 무력 진압하자 무장투쟁이 벌어졌고 내전으로 비화했다. 이슬람교 시아파와 수니파 간 종교 갈등, 미국과 러시아의 헤게모니 다툼, 이란·이스라엘 등 주변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내전은 끝을 알 수 없는 국제전으로 번졌다.

혼란의 와중에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동부를 점령하면서 내전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국은 2014년 9월 유럽 국가들과 연합해 IS 근거지를 공습했다. 시리아 북동부엔 미군 약 2000명이 주둔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5년 9월 아사드 정권 요청에 따라 공군을 파병하고 반군 지역을 공격했다. 이후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성격이 더해졌다.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까지 깊숙이 개입한 것은 시리아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시리아는 중동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길목에 있다. 러시아는 1971년부터 시리아 서부 항구도시 타르투스에 해군기지를 두고 지중해 진출 교두보로 활용해 왔다. 푸틴 대통령이 ‘슬라브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러시아는 더욱 적극적으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중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스라엘이 고립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다가 아사드 정권이 다시 화학무기를 사용하자 강공 모드로 돌아섰다.

추가영/유승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