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놔두면 국가미래 위협"… 긴장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키로 한 지난달 22일, 미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관련 조사 보고서에는 ‘중국제조 2025’라는 단어가 116번이나 등장했다. 미국이 대(對)중국 통상전쟁에 나선 바탕에 ‘중국제조 2025’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국가 주도의 산업고도화 정책을 펴면서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훔치고 있다는 게 미국 측 인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과의 무역전쟁 뒤에는 미래 기술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망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중국제조 2025’는 하이테크 강국이 초점
중국 정부가 2015년 3월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은 반도체 전기자동차 로봇 해양플랜트 바이오 항공우주장비 등 10대 핵심 산업에서 세계적 기업을 키워 하이테크 국가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벗어나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장악하는 걸 목표로 한다. 중국은 민간 기업이 10대 산업에 투자할 때 지방정부와 공기업에서 최대 80%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쓰일 돈만 3000억달러(약 320조7000억원)로 추정되고 있다. 또 기업이 이들 산업에서 전략 제품을 개발하면 개발 후 최초 매출도 보장해 준다.
벌써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ZTE는 지난 2일 5세대(5G) 이동통신기술을 활용한 첫 시범통화 연결(퍼스트콜)에 성공했다. 차이나모바일과 공동으로 광저우에서 국제이동통신표준화기구(3GPP) R15 표준에 부합하는 중국 첫 5G 통화를 구현한 것이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은 지난해 생산량 79만4000대, 판매량 77만7000대로 3년 연속 세계 1위다. 중국 내 충전소는 21만4000곳으로, 전년보다 51% 증가했다. 반도체에선 칭화유니그룹 자회사 창장메모리(YMTC)가 올해 말 3차원(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들어간다. 중국은 2015년부터 ‘국가 반도체산업 투자펀드’를 만들어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해왔다.
중국, 2025년까지 핵심 기술 자급 목표
‘중국제조 2025’는 단순히 첨단 산업을 키우려는 계획이 아니다. 중국은 2025년 제조 초강대국이면서 기술 자급자족 달성을 목표로 잡고 있다. 핵심 기술 및 부품·소재를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0% 자급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USTR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자본과 기술, 정보기술(IT) 능력 등을 모두 갖춘 거대한 중국이 국가 주도로 외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펴는 것은 중소 개발도상국의 불공정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인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조직적인 해외 첨단기업 인수, 강제적인 기술이전 협정, 정부 주도의 사이버 산업스파이 활동 등 지식재산권 도둑질이다. 중국은 자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들에 합작 투자를 강요한다. 합작하지 않으면 투자 허가를 내주지 않는 식이다. 애플 아마존 등 IT 기업에는 보안을 이유로 점점 더 많은 기밀 정보를 제출토록 하고 있다. USTR은 “이런 협약은 착취적일 수 있으며 중국 기업의 세계 다른 국가 시장 접근에 비춰 불공정하다”고 밝혔다.
미, 동맹국과 함께 지식재산권 등 적극 대응
하지만 독일 일본 한국 등은 ‘사드 보복’처럼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입을 다물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관리들은 외국 기업이 불만을 표현하면 보복 위협을 한다”며 “WTO에 제소해도 진행 절차가 느려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만이 꾸준히 세계반도체협회(WSC) 등을 통해 보조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작년 11월 “중국의 접근법은 정부 조달과 지원금, 데이터, 라이선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외국 기업에 커다란 도전”이라며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협상에서 최우선적으로 ‘중국제조 2025’ 정책을 다룰 것”을 주문했다.
미국이 ‘중국제조 2025’에 민감한 건 태양광산업에서 수많은 미국 기업이 몰락한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미국은 10여 년 전까지 세계 태양광산업을 선도한 국가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태양광산업 육성을 결정한 뒤 국영은행들은 태양광 기업들에 수천억달러를 저금리로 빌려줬다. 패널값이 폭락하면서 수많은 미국 기업이 파산했다. 중국은 현재 세계 태양전지 패널의 4분의 3을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2016년부터 중국 기업들의 첨단기업 인수 시도를 줄줄이 무산시키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6일 ‘중국제조 2025’와 관련해 “중국은 국내외 시장에서 다른 나라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겠다는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며 “USTR이 피해를 본 동맹국과 협력해 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김현석/베이징=강동균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