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누이의 죽음과 무력한 인간존재갑작스러운 이별은 아프다.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보낸 이들을 우리는 가슴에서 지우지 못한다. 청춘에 요절한 이 역시 안타깝다. 더 이상 나이 먹지 않는 젊은 얼굴을 늙어가는 우리가 애달파한다. 그럴진대 이 두 가지가 함께인 죽음에 대해서는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가 한 부모에서 난 동기(同氣)라면.
‘제망매가’ 속 누이의 죽음이 바로 그런 죽음이다. 함께 뛰놀며 자란 형제자매가 젊은 나이에 먼저 떠나리라고 예상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남들이 범상하게 나누는 남매의 정을 나누지 못하게 된 운명에 월명사는 무상감을 느낀다. 그리고 무상감은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이런 죽음은 죄에 대한 벌도 아니고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도 아니다. 그저 닥쳐온 것, 피할 수 없는 어떤 절대다. 생사의 길이 바로 여기 있건만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무력한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 앞에서 우리는 그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누이와의 재회는 서방정토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죽은 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 행인지 불행인지 죽은 이와의 재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확신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은 우리가 죽는다는 것 하나다. 그러므로 망자와의 재회는 내세에서 가능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타찰에서 만나기를 기원한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언제일지 모를 그때를 기다리며 도를 닦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타찰은 서방정토다. 서방정토는 서쪽으로 십만억의 국토를 지나면 있다는 아미타불의 세계다. 부처가 있고 고통은 없는 곳. 《삼국유사》에 의하면 월명사가 재를 올리며 이 노래를 불렀더니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지전(紙錢)이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주술적인 내용이다. 주술에 염원을 담은 것은 이것이 생사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이 향가를 죽음의 슬픔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승화와 성찰 역시 죽은 이를 붙들 수 없는 인간의 존재 조건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우리를 슬프게 한다.
월명사는 피리를 잘 불었다고 한다. 일찍이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의 큰 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 가는 것을 멈췄다고 한다. 그래서 그 길을 월명리(月明里)라 했고 월명사 또한 이로써 이름이 났다고 한다. 피리를 잘 불던 이 승려는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되 슬픔을 직설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나는 간다 말도 못다 이르고’라는 어구에 간명히 드러냈고 동기의 정을 나눌 길 없어진 비애는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라는 비유를 통해 표출했다. 절제 속에서 고조된 비감. 고통에 대한 차원 높은 대응이 읽는 이의 마음을 건드린다.
난해한 향찰 표기
또 한 가지. 망매의 슬픔을 그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은 귀하다. 고전시가 중 자연을 예찬하고 임금에 대한 충성을 말하거나 남녀 간 애정을 노래하는 작품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먼저 간 누이를 추모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에게 신라는 화랑과 불교와 삼국통일, 골품제와 화백제도로 기억되는 나라다. 유교적 이념의 지배를 받지 않던 그 시대 가족의 질서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남매의 정이야 동서고금에 보편적인 것이지만 작품 속 이리도 애틋한 정을 빚어낸 오누이의 관계는 딸이 출가하면 시가로 편입되던 유교 사회의 것과는 다른 면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향가는 신라의 노래며 표기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린 향찰로 했다. 향찰 표기는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을 잠시만 인내하면 신라인의 품격 있는 정신세계를 접할 수 있다. 현재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총 25수가 전한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