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의 통상공세, '한·미동맹 균열' 신호 아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라는 초강수를 들고나온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상당수 통상 전문가는 “최대 대미 흑자국인 중국을 겨냥한 것이며, 그 와중에 한국까지 덩달아 피해를 입게 됐다”고 보는 듯하다. 미국의 반덤핑 규제 21건 중 14건(67%)이 중국과 동일한 품목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 한국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인 만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미국의 무역 규제로 인한 주요국의 피해 정도를 비교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조사하거나 검토 중인 무역 규제가 현실화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2.2%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세이프가드까지 합하면 12.4%다. 이에 비해 중국은 10.9%에 그쳤고 대미 흑자가 한국의 세 배에 달하는 일본은 4.9%에 불과하다. 한국이 최대 피해국인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뉴욕타임스가 “이번 조치의 주 타깃이 한국과 중국”이라고 보도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과 화학제품에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하고 있다. 한국산 반도체는 수입금지까지 검토 중이다. 자동차 무역역조를 시정한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요구해왔다. 원화 강세가 가파르게 진행 중이지만 정부는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으름장 때문에 제대로 환율 방어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무역 규제가 왠지 한국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미 양국은 대북 제재, 사드 배치, 대중(對中) 관계 등에서 미묘한 견해 차이를 보여왔다. 주한 미국대사는 1년 가까이 오지 않고 있다. “한·미동맹 관계가 전과 같지 않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미국의 통상 공세가 혹시 이런 부분과 관련있다면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미국을 WTO에 제소한다지만 최소 3년이 걸리고 승소해도 미국이 안 따르면 그만이라고 한다. 1985년 미국 주도의 플라자 합의 후 일본은 엔화 강세 여파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어야 했다.
<한국경제신문 1월25일자>
미국의 대한(對韓) 통상압박이 예사롭지 않다. 북한 핵 저지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둔 미국이 한국에 강도 높은 통상 공세를 펴온 것이다. 시점도 예사롭지 않지만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가 한국의 세 배에 달하는 일본이 빠진 것과 대조적이다. 단지 교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지닐 필요가 있다. 경제적 관점 이상의 논리가 작용했다면 그게 더 걱정이다. 경제·통상 차원의 공세라면 일회성으로 보고 잘 넘기면 되겠지만 정치·안보적 관점까지 겹쳐 있다면 파장은 더 커질 수 있다.
국가 간 관계, 현대 외교에서 중요한 두 축은 안보와 통상이다. 국가적 지향 가치를 기반으로 이 축에 따라 동맹이 맺어지고 극단적인 경우 전쟁도 일어난다. 물리적 전면 전쟁은 아니어도 통상·교역전쟁, 한율·화폐전쟁, 특허·지식전쟁 같은 국지적 싸움도 허다하다. 개방이 확대되고 국가 간 장벽이 낮아질수록 이런 ‘부문별 전쟁’은 오히려 잦아진다.
근래 국제관계에서 한국이 주목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후 자국 우선주의, 미국이익 제일주의 기류가 현저하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유치가 특별히 중시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도 심해져왔다. 미·중의 대립은 경제·안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은 미국을 이기겠다는 장기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은 어느 진영인지, 입장 표명을 압박받고 있다. 일본이 경제·안보 양면에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심화해가는 것과 비교된다.
미국의 통상공세도 이런 구도 속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세계무역기구(WTO)에 당당히 맞서라’는 식의 대응법은 현상만 보는 것이 될 수 있고 실효성도 없다. 중국의 ‘사드 보복’과 단순 비교로 ‘강대국은 다 같다. 자국 이익밖에 안 본다’는 한탄도 도움이 되기 어렵다.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구가하던 일본이 미국의 환율 압박에 따라 초장기 침체를 맞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사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혈맹(血盟)’을 강조해온 한·미 관계에 묘한 변화가 있다는 최근의 우려와 통상 부분에서 변화 여부를 연결시켜 볼 필요가 있다.
◆사설 읽기 포인트
'북핵 저지'가 공동 관심사인 미국의 강도 높은 통상압박은 단순 교역 차원 넘어 경계해야
대미 흑자 한국의 3배 달하는 일본이 공세 비켜가는 이유 여러 각도에서 곰곰이 살펴봐야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