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통화 팽창과 인플레이션
짐바브웨와 2억%의 인플레이션짐바브웨에서는 왜 이토록 엄청난 고액 지폐를 발행한 것일까? 이유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짐바브웨는 1990년대 최악의 가뭄 사태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토지개혁을 강행했는데, 이때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화폐를 마구 찍어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강화해 온 가격 통제와 외환 통제, 수출입 통제 등 정부의 통제 정책으로 실물 및 금융 경제가 심각하게 왜곡되면서 짐바브웨는 1999년 이래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짐바브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었고, 2008년에는 물가상승률이 무려 2억% 이상으로 치솟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당시 300조 짐바브웨달러는 고작 1달러와 맞먹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에 짐바브웨 정부는 2009년 1월 100조달러짜리 지폐를 새로 발행하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같은 해 4월, 짐바브웨 정부는 자국 화폐 발행을 중단하고 미국 달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재정지출을 위해 돈을 찍는다
이처럼 통화 발행이 물가를 올리는 현상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통화 팽창 정책을 채택하면서 발생한다. 과거 구한말에 흥선대원군의 통화 팽창 정책으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일이 있다. 고종의 즉위로 섭정을 하게 된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경복궁 재건사업을 단행하는 한편,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군대를 증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업은 조선 정부에 재정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안겨 주었고, 흥선대원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백전을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당백전은 말 그대로 ‘하나가 엽전 100개’, 즉 상평통보 100개에 해당하는 돈을 의미한다. 그런데 당시 당백전의 실질가치는 상평통보의 5∼6배 정도밖에 안 돼서 원래는 당오전, 또는 당육전으로 통용됐어야 했다. 그러나 당백전의 명목가치는 실질가치보다 20배나 넘게 책정되었고, 조선 정부는 당백전을 대량으로 발행함으로써 일시적으로 거액의 차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당백전 발행은 결국 통화가치를 크게 하락시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국가재정 파탄을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당백전을 발행한 지 2년 만에 흥선대원군은 결국 당백전의 주조와 사용을 금지했다.
한편 당백전의 가치가 어느 정도로 떨어졌는지 알려 주는 예가 지금도 남아 있다. 바로 ‘땡전 한 푼도 없다’는 말의 ‘땡전’이다. 당시 당백전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의 폐해를 입게 된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린 당백전을 ‘땅돈’이라고 낮잡아 불렀고, 나중에는 ‘땡전’으로 바꿔 불렀다. 그래서 땡전은 지금까지도 ‘아주 적은 돈’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정부의 ‘약탈행위’
물가가 안정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경제활동의 불확실성과 경제비용이 높아지고 경제주체의 활동성과 성장성이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물가 불안이 계속되면 정치적으로 민심이 동요하고 상호 불신과 증오심이 커지게 되어, 사회적으로 불안심리가 증폭된다. 이에 따라 경제 전체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경제도 침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가안정은 어느 나라에서든 정부가 추구해야 할 상위의 정책 목표가 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국민이 가지고 있는 돈을 정부가 보이지 않게 약탈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역사에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정부가 돈을 풀게 되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크나큰 후유증만 남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이 같은 반복적인 실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가 안정은 생활 안정, 재산권 보호 등 실질적인 면에서 사람들의 삶을 보호한다. 그런 면에서 물가 안정은 정의로운 방식으로 경제 운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생각해봅시다
정부가 쓸 돈을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세금을 많이 걷거나 화폐를 더 많이 찍어내는 것이다. 이 중 세금은 납세자들의 반발 때문에 늘리기 힘들다. 하지만 화폐 발행은 상대적으로 쉽다. 후진국 정치권력들은 훗날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 필요에 따라 돈을 펑펑 찍어낸다. 짐바브웨 통화 팽창은 금융 역사에서 유명하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발행했던 ‘당백전’도 이에 해당한다. 비교해 보자.
최승노 <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choi363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