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더위 찌는 날은 무더위일까요, 강더위일까요
무더위 ‘물’‘더위’가 어울린 말이다.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오랫동안 비도 없이 불볕더위만 계속되면 ‘강더위’다. 이때의 ‘강-’은 한자말 강(强)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다.

초복이 지나면서 한낮 기온이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리고 불볕더위로 인한 피해도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복더위 찌는 날에 맑은 계곡 찾아가/ 옷 벗어 나무에 걸고 풍입송 노래하며/ 옥 같은 물에 이 한 몸 먼지 씻어냄이 어떠리.” ‘해동가요’를 펴낸 조선 영조 때 가객 김수장의 시조다. 여기에는 선조들이 즐기던 지혜로운 피서법이 담겨 있다. 이른바 ‘탁족(濯足)’이다. 맑은 계곡을 찾아 옥 같은 물에 발을 담그며 무더위를 잊는 탁족은 우리 민족에게 고래부터 내려온 ‘자연친화적’ 여름나기였다.
복더위 찌는 날은 무더위일까요, 강더위일까요
무더위는 ‘물+더위’가 어울린 말

‘탁족만리류(濯足萬里流)’란 중국 서진(西晉)의 시인 좌사가 쓴 시에 나오는 말이다. 만 리를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단순히 피서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품에서 세속에 찌든 마음의 때까지 씻는다는 뜻이 담겼다. 김수장의 시조는 이 ‘탁족만리류’를 멋들어지게 읊어낸 작품이다. 시문에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부채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고상한 선비들은 ‘탁족만리류’란 시구가 적힌 합죽선으로 시원한 계곡 바람을 일으켜 무더위를 쫓으면서 풍진세상을 함께 경계했다. 피서를 즐기면서 교훈도 담은 셈이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무더위나 불볕더위를 비롯해 삼복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이 두루 한여름 더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자어인 폭염, 폭서도 많이 쓴다. 강더위도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우리말이다. 이 중 무더위는 너무 흔히 쓰여서, 강더위는 반대로 잘 쓰이지 않아 그 말의 ‘정체’를 놓치기 쉽다.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어울린 말이다. 물기를 머금은 더위, 즉 습도와 온도가 높아 끈끈하게 더운 것을 말한다. 김수장 시조에 보이는 ‘복더위 찌는 날’에서 당시 날씨가 무더위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오랫동안 비도 없이 불볕더위만 계속되면 ‘강더위’다. 이때의 ‘강-’은 한자말 강(强)이 아니라 순우리말이다. 겨울철 눈도 없이 매섭게 춥기만 할 때 쓰는 ‘강추위’의 ‘강’과 같은 말이다. 강더위에는 비가 없고 강추위에는 눈이 없다는 게 공통적인 특징이다.

비도 없이 더운 것은 ‘강더위’

일상에서 쓰는 말 중에 ‘물’과 어울려 이뤄진 게 꽤 많다. ‘무사마귀, 무살, 무소, 무서리, 무쇠, 무수리, 무자맥질, 무좀, 무지개.’ 이들이 모두 ‘물’ 합성어이다. 이 중 ‘무지개’가 재미있다. 무지개는 옛말에서 ‘물+지게’인데, 이때 ‘지게’는 등에 짐을 질 때 쓰는 그 지게가 아니다. 이는 ‘문(門)’을 뜻하는 말이었다(홍윤표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 무지개는 곧 ‘비가 만들어낸,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뜻이니 실체만큼이나 멋들어진 말이다.

강더위를 좀 더 세게 표현한 게 ‘불볕더위’다. 이는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를 말한다. 옛사람들은 같은 더위라도 ‘자연친화적’으로 표현했는데, 후대로 오면서는 좀 더 실감나고 감각적인 표현을 찾은 것 같다. 불볕더위를 비롯해 찜통더위니 가마솥더위니 하는 게 그런 것이다. 수사학적으로는 과장법이고 은유다. 은유 중에서도 환유에 해당한다. 이런 말들은 뜻은 무시무시하지만 절묘한 비유다.

폭염이나 폭서는 얼마나 더운지 감이 잘 오지 않지만 불볕이나 찜통, 가마솥더위라고 하면 그 느낌이 살아 있다. 덧붙이면, 모두 단어로 사전에 오른 말이니 띄어 쓸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