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소비 행태의 실마리
기억에 남는 '소비 경험'에 있다
[고교생을 위한 경영학] (42) '결정적사건기법'을 통한 인사·마케팅 관리
"소비자'의미있는 사건'수집, 태도형성에 미치는 요인 살펴봐
제품·서비스·콘텐츠 뒤섞인 융합형 제품 소비분석에 유용"


[고교생을 위한 경영학] (42) '결정적사건기법'을 통한 인사·마케팅 관리
‘결정적 사건’이라는 용어는 범죄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 범행을 증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증거 상황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는 기업의 경영활동, 구체적으로 인사관리와 마케팅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일까.

‘결정적사건기법(CIT·critical incident technique)’은 1954년 심리학자인 존 플래너건이 직무분석방법론으로 창안했다. 여기서 결정적 사건이란 특정 이슈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사건을 의미한다.

인사관리에서는 특정 직업 상황에서 효과적이거나 비효과적인 행동과 관련한 결정적 사건을 수집·분석해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발생 원인, 맥락, 대상인이 취한 행동, 행동의 결과 등의 정보를 수집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사고 상황의 맥락, 담당자의 대처 방안,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그 결과 등을 면밀히 조사한다. 이런 분석 결과를 활용해 각 직무에 대한 정확한 정의, 프로세스의 개선, 채용 및 인사관리의 규정 확립 등에 적용한다.

이 접근법은 경영의 다른 분야들, 특히 소비자를 다루는 마케팅 분야에서 활용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소비자는 만족, 불만족, 충성심, 구전의도 같은 다양한 태도를 형성한다. 이런 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영향을 주는 방식을 정확히 분석해야 효율적인 소비자 공략이 가능해진다.

결정적사건기법에서는 소비 기간에 기억에 남는 ‘결정적인 사건’을 서술하도록 한다. 이 사건들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데 기억에 남을 정도의 경험인 만큼 소비자 태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정적사건기법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비자가 직접 영향을 받은 사건을 기술하므로 연구자가 예측하지 못하는 요인을 놓칠 우려가 없다. 둘째, 이 요인들의 범주를 미리 정해 놓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유연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각 요인을 긍정적 부정적 양면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기에 개선의 방향성이 확실하다. 넷째, 특정 요인이 영향력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을 때 구체적인 맥락을 초기 설문을 찾아 파악할 수 있다. 소비자 설문 과정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그만큼 소비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결정적사건기법은 소비맥락이 복잡할 경우 유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융합시대가 만개하면서 더 이상 제품, 서비스, 콘텐츠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만물이 인터넷에 접속되고 플랫폼에 속하면서 지능이 부여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들이 얹혀지고 있다. 스마트폰산업만 보더라도 스마트폰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사용 편의성, 앱(응용프로그램)·콘텐츠 보유량, 네트워크·통화품질, 화면 크기, 사후서비스 만족도, 제품 안정성 등 다양하며 이들에 대한 소비자 인지에 따라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은 주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소비자의 품질경험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조사 입장에서 네트워크 사업자, 앱·콘텐츠 개발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부품공급업자 등 다양한 영역의 사업자와 긴밀하게 협업할 수밖에 없다. 기존 제품 위주의 공급사슬 범위를 관련 서비스와 콘텐츠 영역까지 넓혀 관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처럼 융합상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제품, 서비스, 콘텐츠 등과 같이 특성이 매우 다른 영역에 분포해 있을 경우에는 영역별 요인을 도출하고 이들이 복합적으로 소비자 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가 쉽지 않다. 통화품질, 네트워크 속도 등의 품질 요인과 고품질의 앱과 서비스 제공 여부 등은 사용자 개인별 인식의 편차가 크고 측정 단위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결정적사건기법은 인사조직과 마케팅 영역에 유연하고 깊이 있는 접근방식을 제공한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으나 그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정석 < 서울대 경영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