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야! 놀자
'이놈아'가 줄면 어떻게 될까. '임마'가 아니라 '인마'다. '놈'의 첫소리가 앞말의 받침으로 가 '인'이 되고, 끝소리 'ㅁ'은 뒷말의 머리로 연음돼 '마'가 된다. '야 이놈아'를 줄이면? 마찬가지로 '얌마'가 아니라 '얀마'다(야 이놈아 → 야 인마 → 얀마).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국기에 대한 맹세문이다. 예전엔 길을 가다 애국가가 들리면 너나없이 멈춰서서 태극기가 있는 쪽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럴 땐 이 맹세문이 함께 흘러나왔다. 그런데 맹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잘못 표기된 곳이 하나 있다. ‘자랑스런’이란 부분이다. 실제 표기는 ‘자랑스러운’이다. 하지만 이를 ‘자랑스런’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자랑스런’은 비표준형
‘자랑스럽다’는 그동안 살펴본 것처럼 ㅂ불규칙 용언이다. 활용할 때 ‘자랑스러워/스러운/스러우니/스러웠다’ 식으로 받침 ‘ㅂ’이 ‘우’로 바뀐다. ‘괴롭다, 밉다, 무겁다, 맵다, 아름답다’ 등 ㅂ불규칙 용언은 모두 예외 없이 어미가 ‘우’로 바뀐다. 그런데 유난히 이 ‘-스럽다’는 ‘-스런’으로 읽고 쓰는 경향이 있다(물론 이 역시 ‘-스러운’이 맞는 표기다).
그런 데는 사연이 있다. 예전부터 ‘-스럽다’는 입말에서 활용할 때 ‘-스러운’과 함께 ‘-스런’도 많이 써왔다. 지금 쓰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도 2007년 수정된 것이다. 그 전에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로 시작하던 것을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바꿨다. 맹세문이 1972년 도입됐으니 30년 넘게 ‘자랑스런’으로 배우고 써온 셈이었다. 심지어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우리말본>(1937년)을 쓰면서 ‘-스러운’과 ‘-스런’을 섞어 썼을 정도다. <우리말본>은 지금 우리가 배우는 문법의 체계를 세운 고전적 작품이다.
하지만 ‘-스런’은 현행 맞춤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표기다. ㅂ불규칙 활용에서 ‘-스럽다’만 예외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런’을 ‘-스러운’의 준말로 보자는 주장도 있으나 이 역시 다른 말과의 일관성 차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말은 그리 줄지 않기 때문이다.
줄이는 데도 규칙이 있다
준말은 짧다는 것 자체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입말에서나 글말에서나 많이 쓰인다. 그 가운데 표기가 헷갈리는 것 몇 가지를 살펴보자.
구(句) 차원에서 이뤄지는 준말에는 어느 정도 규칙성이 있다. 보통 사라지는 말의 첫소리가 앞말의 받침으로 가고, 사라지는 말의 끝소리는 뒷말의 첫소리로 넘어간다.
예를 들면, 어제저녁이 줄면 엊저녁이 된다. 가지가지 → 갖가지, 서투르다 → 서툴다, 서두르다 → 서둘다, 찰카닥 → 찰칵 등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규칙성을 알고 있으면 다음과 같은 반대의 경우도 헷갈릴 염려가 없다. 어떤 물건이 서로 닿아서 갈릴 때 소리 나는 것을 ‘삐걱거린다’고 한다. 이 ‘삐걱’은 ‘삐거덕’이 줄어진 말이다. 이를 자칫 ‘삐그덕’이라 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준말의 생성원칙을 알고 있으면 본말이 ‘삐거덕’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설령 삐거덕을 모르고 있을지라도 삐걱의 본말을 삐그덕으로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놈아’가 줄면 어떻게 될까. ‘임마’가 아니라 ‘인마’다. ‘놈’의 첫소리가 앞말의 받침으로 가 ‘인’이 되고, 끝소리 ‘ㅁ’은 뒷말의 머리로 연음돼 ‘마’가 된다. 이를 좀더 응용해 보자. ‘야 이놈아’를 줄이면? 마찬가지로 ‘얌마’가 아니라 ‘얀마’다(야 이놈아 → 야 인마 → 얀마). 사전에는 ‘인마’까지만 있고 ‘얀마’란 말은 없다. 모든 준말을 다 사전에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준말이 생성되는 규칙을 알고 있으면 그것을 응용해 표기를 틀리지 않게 적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