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고관세 압박, 안에선 반정부 시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 의존도가 높은 멕시코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멕시코는 현지 생산된 자동차 상당 물량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휘발유 등 생활필수품도 미국에서 주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한 정국을 진두지휘해야 할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의 지지율은 뚝 떨어져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흔들리는 자동차산업트럼프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제품을 생산하고 회사를 훔쳐서 일자리를 파괴하는 다른 나라로부터 국경을 지켜야 한다”고 외쳤다. 멕시코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기업들이 멕시코에 공장을 지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부터 기업들을 향해 멕시코 공장 건설 계획 철회를 압박해왔다.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포드자동차는 이미 멕시코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하고, 미국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로 했다. 다른 자동차 기업도 같은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 멕시코의 페소화 가치는 급락했다.
멕시코에서는 2015년 기준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20여개 완성차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생산한 자동차 340만대 가운데 270만대를 수출했다. 멕시코자동차협회(AMIA)에 따르면 이 중 77%가 미국으로 향했다. 멕시코는 1994년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덕에 자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무관세로 북미지역(미국, 캐나다)에 수출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값싼 노동력이 멕시코 투자의 유일한 이유”라며 “게다가 멕시코는 미국(20개국)보다 많은 44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어 무관세 장벽을 이용하려는 글로벌 기업이 몰려들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자동차 조사 전문업체인 자동차연구센터(CAR)에 따르면 최근 6년간 글로벌 자동차기업이 새 공장 건설 계획을 내놓은 지역 11곳 중 9곳이 멕시코였다. 그러나 트럼프가 연일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미국에 투자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압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로 민심 잃어
멕시코의 물가 상승률도 경제 불안 요인이다. 지난해 12월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3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 중앙은행의 목표치(3%)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휘발유 가격 상승과 페소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오름세라는 복병도 등장했다. 휘발유 보조금 지급 중단은 니에토 행정부가 2013년부터 시작한 에너지 개혁의 하나다. 정부는 에너지 생산과 유통을 민간에 개방하고, 휘발유 보조금 지급을 중단해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개혁을 단행했다. 지난해 4월부터 민간에 석유 생산과 휘발유 수입 등을 허용했고, 단계적으로 에너지 시장의 정부 통제를 하나씩 풀어왔다.
그러나 보조금 중단으로 휘발유 가격은 20% 급등했다. 디젤 가격도 16.5% 올랐다. 새해 첫날부터 급상승한 휘발유 가격에 뿔난 시위대는 도로와 철로까지 점거했다. 등 돌린 민심을 반영하듯 약탈도 발생했다. 휘발유 가격 상승은 다른 생활필수품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달걀, 우유, 닭고기 등 주요 식재료 가격도 상승세다.
부패 스캔들에 대통령 지지율 바닥
정책당국의 고민도 깊어졌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달 정책금리를 연 5.75%로 인상했다. 2009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에만 정책금리를 다섯 차례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물가를 잡고 페소화 약세를 상쇄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이달에도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 인상은 긴축을 의미한다. 경제성장률이 1% 안팎으로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바닥을 기는 니에토 대통령의 지지율로 정국 운영도 어려워지고 있다. 2012년 취임 당시 50% 이상을 기록한 니에토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25%까지 떨어졌다.
홍윤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