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단지 돈을 벌 뿐일까? 19세기 마차 이야기를 해보자. 마차가 미국 뉴욕거리를 가득 메운 어느 날 멀리서 이상한 기계 한 대가 도심에 등장한다. 훗날 자동차라고 불리는 기계다. 이 기계는 도로에 똥과 오줌을 쏟아내는, 냄새나는 마차와 완전히 다르다. 물론 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린다. 자동차를 처음 만든 이는 다가올 미래를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Cover Story] 자동차가 마차 대신 도로를 점령한 혁신은 바로 기업가가 만들어요
기업가는 경영자와 다르다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은 마차 이야기에 모두 녹아 있다. 첫째 기업가는 단순히 산출량을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 산출물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마차 수를 늘리는, 즉 산출량만 늘리는 사람은 기업가가 아니다. 자동차는 마차와 완전히 다른,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기업가정신의 발현이다. 타자기와 계산기를 능가하는 컴퓨터를 만들어낸 이가 바로 기업가다. 목조 건물의 한계에서 벗어나 철골조로 고층건물을 지을 생각을 한 사람, 고층 건물에 꼭 필요한 엘리베이터를 고안해낸 사람, 유저 인터패이스를 채택해 스마트폰 시대를 연 사람, 무인항공기 드론의 미래를 본 사람이 바로 기업가다.

기업가는 경영자와 다르다. 경영자는 간단한 함수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Q=f(K, L). 경영자는 산출물 Q를 최적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K(자본)와 L(노동)을 선택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다. 훌륭한 경영자는 Q의 생산량이 극대화되도록 하면 된다. 경영자와 기업가와 이렇게 다르다. 기업가는 효율과 최적량보다 새로운 어떤 것을 추구하는 모험가다. 우리가 흔히 리스크(risk)라고 하는 위험을 기업가는 마다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생산하기로 마음 먹었던 포드가 경영자였다면 마차를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데만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포드가 경영자였다면 자동차라는 새로운 것에 전 재산을 걸겠다고 했을까? 그리고 자동차가 훗날처럼 많이 팔릴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기업가정신이 사라지면…

기업가는 시장의 균형을 깨는 사람이다. 이것을 슘페터라는 경제학자는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다. 어떤 재화의 시장이 더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면, 즉 이익이 거의 제로점에 접근하는 경우 기업들은 손실을 본다. 이익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균형 상태에 있을 때 누군가는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를 일으킨다.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는 기존 휴대폰 시장을 완전히 뒤엎는 혁신을 일으켰다. 잡스 같은 창조적 파괴자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인류 문명사에서 제2, 제3의 잡스는 언제든 나타났다. 바로 기업가다.

기업가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기회를 포착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민첩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지식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혁신을 하려면 새로운 재화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고, 새로운 판매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원자재를 구해야 하고, 새로운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이런 새로운 결합은 기업가가 민첩하고 예민할 것을 요구한다.

최근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많이 나온다. 정치, 경제 환경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어렵게 변했다는 뜻이다. 기업가정신이 잘 발현되려면 자유와 경쟁, 개방, 법치가 넘쳐야 한다. 경제적 자유 없이는 혁신과 질적 진보가 나타나기 어렵다. 북한이 대표적인 예다. “똑같이 나눠갖자”는 사회주의 국가가 못 사는 이유도 기업가정신이 질식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경제’ ‘결과적 평등’ 주장이 팽배하다. 이런 분위기에선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이 몰락하고 문명은 퇴화한다. 경제적 자유가 넘치는 나라에선 기업가정신도 넘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