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 독립신문, 띄어쓰기를 말하다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난거슨 샹하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또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떼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난 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함이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사설에 나오는 대목 한 부분이다. 1896년 4월 7일 첫 호를 냈으니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 글이다. 독립신문은 언론사적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국어사적으로도 두 가지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 신문 최초로 순 한글을 썼으며, 무엇보다 띄어쓰기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띄어쓰기를 하는 것은 ‘누구나 보기 쉽고 말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글쓰기 원리를 생각할 때 지금 다시 봐도 선구자적 혜안이라 할 만하다.
독립신문 창간사설은 2개 면에 걸쳐 실었는데, 그중 절반을 할애해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 방침 등 우리말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한국 언론의 태동기인 당시에 독립신문이 이 같은 혁신적인 기사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재필 등 창간 인사들이 우리말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개화기 우리말 문법의 초석을 놓은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언문조필’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띄어쓰기는 우리 어문규범 가운데서도 비중이 매우 높은 분야다. ‘한글 맞춤법’은 모두 57개 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10개 항(41~50항)이 띄어쓰기에 관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하다. 북한(문화어)에서는 띄어쓰기를 맞춤법에서 떼어내 별도 규범으로 제정해 시행할 만큼 중요하게 취급한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는 종종 대수롭지 않게 취급받기 일쑤다. 이는 띄어쓰기가 글의 내용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띄어쓰기 자체가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탓도 클 것이다.
전회에서 살폈듯이 합성어의 여러 유형 가운데 ‘관형어+명사’ 형태 말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명사를 꾸며주는 관형어는 띄어 쓴다는 우리 말법에 따라 무심코 합성어를 띄어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떫은맛, 매운맛, 얕은맛’ 따위는 일상에서 자주 쓰면서도 틀리기 십상이다. 애초에는 띄어 쓰던 것이었겠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한 단어로 굳어진 말이라 붙여 써야 한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따위를 붙여 쓰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찬물, 더운물, 먼바다, 둥근달’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단어가 된 말이다. 이에 비해 ‘뜨거운 물’이니 ‘가까운 바다’니 ‘밝은 달’이니 하는 것은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쓴다. 합성어가 된 말의 공통점은 대부분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어라는 것이다. 그만큼 입에 익은 말이라 건강한 모국어 사용자라면 따로 외우지 않아도 직관에 의해 합성어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제 다음 문장 속 괄호 안 말의 띄어쓰기를 구별해 보자. ‘한 (젊은 이/젊은이)가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선거일에 비가 오면 (젊은 층/젊은층)의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젊은이’는 단어이므로 붙여 쓴다. ‘젊은 층, 젊은 피’ 같은 말은 아직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써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 학생회도 되고, 전교생도 되는 'student body'
여러분 school night(학교 가기 전날 밤)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학교’와 관련된 표현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학교에서는 많은 과목을 배우는데, mathematics(수학), physics(물리학), economics(경제학), 그리고 politics(정치학)와 같은 학문명들은 -s로 끝나도 단수 취급을 한답니다. 학교 문법 시험에도 자주 나오니 꼭 기억해 주세요.
그런데 영어에는 ‘근의 공식’과 같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외우는 것은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statistics가 ‘통계학’이란 뜻일 때는 단수 취급을 하지만, ‘통계 자료들’이란 뜻으로 해석된다면 당연히 복수로 취급해줘야 합니다. 나름 문법에 자신 있어 하는 학생들도 텝스 시험에서 이런 문제들이 나오면 틀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외에도 학교에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fire drill입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미드나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표현인데, 설마 fire drill을 ‘불꽃 드릴’로 해석하는 분은 없겠지요? drill에 ‘훈련’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화재 (대피) 훈련’을 뜻하는 말이랍니다. 따라서 화염 방사기를 들고 참석하시면 절대 아니 되옵니다~!!!
그리고 student body라는 표현이 있는데 ‘학생회’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body에 ‘단체’라는 뜻도 있거든요. 물론 body에 ‘사람들’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student body를 ‘전교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단어를 문장과 상황 속에서 익혀야만 엉터리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model student라는 단어가 ‘모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아니라 ‘모범생’을 뜻하는 표현이라는 사실도 꼭 기억해주세요. model이 원래 ‘모범, 본보기’라는 뜻이잖아요. 생각해보면, 같은 옷을 입어도 ‘모델’들이 옷을 입으면 훨씬 더 옷이 멋져 보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외에도 teacher’s pet이란 단어 역시 ‘모범생’을 가리킬 수 있는 단어랍니다. 다만, 직역하면 ‘선생님의 애완동물’처럼 ‘선생님의 가장 총애를 받는 학생’이라는 의미에 가깝지요. 이 표현은 조금 비꼬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끝으로 동창회는 영어로 reunion이라고 합니다. 다시(re) 함께 한다는(union) 뜻에서 만들어진 단어겠지요. 왠지 [여행스케치]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동창회 가던 날’이 듣고 싶은 밤입니다~^^*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난거슨 샹하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또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떼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난 말을 자세이 알어 보게 함이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사설에 나오는 대목 한 부분이다. 1896년 4월 7일 첫 호를 냈으니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 글이다. 독립신문은 언론사적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국어사적으로도 두 가지 점에서 큰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 신문 최초로 순 한글을 썼으며, 무엇보다 띄어쓰기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띄어쓰기를 하는 것은 ‘누구나 보기 쉽고 말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글쓰기 원리를 생각할 때 지금 다시 봐도 선구자적 혜안이라 할 만하다.
독립신문 창간사설은 2개 면에 걸쳐 실었는데, 그중 절반을 할애해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 방침 등 우리말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한국 언론의 태동기인 당시에 독립신문이 이 같은 혁신적인 기사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재필 등 창간 인사들이 우리말의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개화기 우리말 문법의 초석을 놓은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언문조필’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띄어쓰기는 우리 어문규범 가운데서도 비중이 매우 높은 분야다. ‘한글 맞춤법’은 모두 57개 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10개 항(41~50항)이 띄어쓰기에 관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하다. 북한(문화어)에서는 띄어쓰기를 맞춤법에서 떼어내 별도 규범으로 제정해 시행할 만큼 중요하게 취급한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는 종종 대수롭지 않게 취급받기 일쑤다. 이는 띄어쓰기가 글의 내용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띄어쓰기 자체가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탓도 클 것이다.
전회에서 살폈듯이 합성어의 여러 유형 가운데 ‘관형어+명사’ 형태 말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명사를 꾸며주는 관형어는 띄어 쓴다는 우리 말법에 따라 무심코 합성어를 띄어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떫은맛, 매운맛, 얕은맛’ 따위는 일상에서 자주 쓰면서도 틀리기 십상이다. 애초에는 띄어 쓰던 것이었겠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한 단어로 굳어진 말이라 붙여 써야 한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따위를 붙여 쓰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찬물, 더운물, 먼바다, 둥근달’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단어가 된 말이다. 이에 비해 ‘뜨거운 물’이니 ‘가까운 바다’니 ‘밝은 달’이니 하는 것은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쓴다. 합성어가 된 말의 공통점은 대부분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생활어라는 것이다. 그만큼 입에 익은 말이라 건강한 모국어 사용자라면 따로 외우지 않아도 직관에 의해 합성어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제 다음 문장 속 괄호 안 말의 띄어쓰기를 구별해 보자. ‘한 (젊은 이/젊은이)가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선거일에 비가 오면 (젊은 층/젊은층)의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젊은이’는 단어이므로 붙여 쓴다. ‘젊은 층, 젊은 피’ 같은 말은 아직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써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 학생회도 되고, 전교생도 되는 'student body'
여러분 school night(학교 가기 전날 밤)는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학교’와 관련된 표현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학교에서는 많은 과목을 배우는데, mathematics(수학), physics(물리학), economics(경제학), 그리고 politics(정치학)와 같은 학문명들은 -s로 끝나도 단수 취급을 한답니다. 학교 문법 시험에도 자주 나오니 꼭 기억해 주세요.
그런데 영어에는 ‘근의 공식’과 같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없기 때문에 무조건 외우는 것은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statistics가 ‘통계학’이란 뜻일 때는 단수 취급을 하지만, ‘통계 자료들’이란 뜻으로 해석된다면 당연히 복수로 취급해줘야 합니다. 나름 문법에 자신 있어 하는 학생들도 텝스 시험에서 이런 문제들이 나오면 틀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외에도 학교에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fire drill입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미드나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표현인데, 설마 fire drill을 ‘불꽃 드릴’로 해석하는 분은 없겠지요? drill에 ‘훈련’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화재 (대피) 훈련’을 뜻하는 말이랍니다. 따라서 화염 방사기를 들고 참석하시면 절대 아니 되옵니다~!!!
그리고 student body라는 표현이 있는데 ‘학생회’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body에 ‘단체’라는 뜻도 있거든요. 물론 body에 ‘사람들’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student body를 ‘전교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단어를 문장과 상황 속에서 익혀야만 엉터리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model student라는 단어가 ‘모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아니라 ‘모범생’을 뜻하는 표현이라는 사실도 꼭 기억해주세요. model이 원래 ‘모범, 본보기’라는 뜻이잖아요. 생각해보면, 같은 옷을 입어도 ‘모델’들이 옷을 입으면 훨씬 더 옷이 멋져 보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외에도 teacher’s pet이란 단어 역시 ‘모범생’을 가리킬 수 있는 단어랍니다. 다만, 직역하면 ‘선생님의 애완동물’처럼 ‘선생님의 가장 총애를 받는 학생’이라는 의미에 가깝지요. 이 표현은 조금 비꼬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끝으로 동창회는 영어로 reunion이라고 합니다. 다시(re) 함께 한다는(union) 뜻에서 만들어진 단어겠지요. 왠지 [여행스케치]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동창회 가던 날’이 듣고 싶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