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막말 ' 트럼프 인기…미국 민주주의 위기?
“당신은 너무 무례해요. 우리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두려워하고 있어요.”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제임스타운의 밀스로드초등학교 3학년 잭슨 윌레스는 지난 10일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걱정이 가득한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윌레스는 트럼프가 뉴욕타임스(NYT)의 장애인 기자를 조롱한 것을 거론하며 “아이들이 당신의 행동을 보고 장애인을 놀려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냐”며 “학교 내 집단 괴롭힘 문제를 당신이 더욱 키우고 있다”고 썼다.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의 편지는 미국 사회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트럼프의 언행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막말’에도 인기는 여전
과격하고 극단적인 표현으로 ‘막말 제조기’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로는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그는 “멕시코인들은 미국으로 마약을 가져오고, 범죄를 저지르며 강간범이다” “무슬림들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트럼프는 교황에게도, 방송사의 여자 사회자에게도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에 대해서는 푼돈을 내고 미국에 안보를 의존한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 내에서도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대가로 연간 1조원 이상을 내기 때문에 무임승차와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을 내놓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유세 연설에서 5분에 한 번꼴로 허위 발언을 한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트럼프 대세론’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15일 치러진 ‘미니 슈퍼화요일’ 경선에서도 트럼프는 압승했다. 오하이오주를 빼고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일리노이, 미주리주, 미국령 노던마리아나제도 등 5곳에서 승리했다. 미니 슈퍼 화요일은 6개 주에서 한꺼번에 경선이 치러지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트럼프는 14개 주 경선이 동시에 치러진 지난 1일 슈퍼 화요일에도 7개 주를 석권했다. 16일 현재 트럼프는 639명의 대의원을 확보했다. 공화당의 전체 대의원은 2472명으로 1237명 이상을 얻으면 대통령선거 후보가 될 수 있다.
유권자들, 주류정치에 반감
도대체 트럼프는 왜 인기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트럼프 고공행진의 주요 이유를 공화당 유권자들이 워싱턴의 주류정치에 신물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 10명 가운데 4명꼴로 ‘워싱턴 정치에 화가 나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응답한 유권자의 60%는 트럼프를 찍었다. 서민을 생각하기보다는 정치인을 위한 정치에 화가 나 트럼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수십년 동안 중산층과 소수계층의 요구를 저버리는 편협한 태도를 취해온 공화당이 이제는 재난 사태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백인 중산층의 불만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공화당은 대체로 자유무역을 선호하는데 트럼프는 보호무역을 들고나왔다. 미국인들의 살림살이를 개선해주겠다는 이유에서다. 불법 이민자를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불안감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됐다. ‘다시 위대한 미국’을 세워보자며 ‘강한 미국’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열망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화당은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선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자신이 공화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면 트럼프에게 유리할 수 있다며 경선을 포기했다. ‘트럼프 저지’ 모임도 꾸려졌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오는 7월 말 전당대회까지 과반수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전당대회’가 열릴 수 있다. 경쟁전당대회에서는 그동안 누구를 지지했든 상관없이 대회 시점에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가 가능하다. 하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CNN방송은 “공화당조차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의 질주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전망했다.
박종서 한국경제신문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