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오후 4시만 되면 문을 닫는다. 물론 은행업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들은 4시 이후에는 은행에 가도 업무를 볼 수 없다. 지난해 가을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구상에서 오후 4시면 문닫는 은행이 어디 있느냐”고 질타한 후 은행 영업시간 연장을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영업시간을 연장하는 탄력 점포 운영을 시작했고 이런 서비스는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도 은행 영업시간 연장을 둘러싸고는 치열한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 찬성 “은행의 소비자 중심 아닌 공급자 중심 사고가 문제”
직장인 Y모(27ㆍ여) 씨는 “가끔은 은행 볼일 보기가 힘들어 야간 은행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라며 “월급도 많이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좀 늦게까지 일해줄 순 없나 야속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L씨는 “4시에 셔터 닫고 바로 퇴근하는 게 아닌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주변 은행원들을 보면 다들 6시쯤 퇴근하더라”면서, “높은 연봉 받으면서 고객을 위해 2~3시간 정도 더 열어달라는 게 그렇게 큰 무리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회사원들은 대체로 평일에 은행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한 무역업체에서 일하는 S씨(29)는 “은행 직원들이 밤 늦게까지 일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직장인들을 위해 영업시간이 연장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적금 가입 해지 등 은행 지점을 꼭 방문해야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점심시간 은행에 갈 때마다 대기시간이 기본은 30분”이라며 “점심을 못 먹고 은행업무를 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문정숙 교수는 한 매체 기고를 통해 “오후 4시 이후에도 업무가 많다지만 어쨌든 4시에 문을 닫는 것은 은행이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사고체계를 갖고 있다는 현실을 방증한다”고 말한다. 문 교수는 “세계 1위인 중국 공상은행의 업무시간은 오후 5시이고, 일부 지점은 주말 및 휴일에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은행은 평일은 오후 6시나 7시까지, 토요일에도 오후까지 문을 연다. 유럽 대부분의 은행은 오후 4, 5시에 문을 닫지만 고객 편의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요일을 정해 놓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은행 간 경쟁이 이루어졌다면 오후 5, 6시에 문을 닫는 은행이 생겼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반대 “핀테크 외치는 정부가 대민업무 늘리라는 건 모순”
시중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모씨(24.여)는 “최근엔 집단대출 서류를 처리하느라 밤 11시까지 정신없이 일한 날이 태반”이라며 “최 부총리에게 하루라도 은행에 와서 일해보라고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은행원 R모(25ㆍ여) 씨는 “서비스업무 종료 후에도 시재관리, 환원자료관리 등 일이 산적해있다”며, “은행 업무도 편히 못 보게 하는 회사나 우리 사회 분위기가 문제인데 비난의 화살을 애먼 데 돌리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또 다른 은행원 이모(29) 씨는 “정부의 금융 소비자 권익 강화 때문에 은행원들이 통장 개설에만 10장, 대출에만 30~50장의 서류를 작성해야하는 1차원적인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금융선진화 퇴보가 은행원만의 문제라고 말할 순 없는 것 같다”며, 정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 매체 기고에서 “은행 영업시간 연장은 은행원들의 추가 노동이 필요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히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원 교수는 “은행원에 추가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할 경우 인건비 상승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핀테크를 주창하는 정부가 대면 금융서비스를 위해 은행으로 하여금 비용 지불을 강요한다면 이는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책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라는 입장도 밝혔다.
직장인 K씨도 “인터넷 모바일 뱅킹 사용자가 늘어나는데 굳이 오픈 시간을 늘리는 건 보여주기 식 행정인 것 같다”며 결국 은행원들의 근무시간만 늘릴 것이라며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 생각하기 “직접 규제보다는 간접적으로 경쟁 촉진해야 ”
은행 영업시간은 은행이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몇시까지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동안 담합하듯이 모든 은행이 4시면 일제히 문을 닫아왔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다. 이 역시 공정거래법상 담합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은행들끼리 경쟁을 제한해 결과적으로 은행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적으로 영업시간을 규제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영업시간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 훨씬 더 시장원리에도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은행들은 서로 눈치보지 않고 고객 서비스 향상 차원에서 영업시간 연장이나 주말 영업확대 등을 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업시간을 포함,은행들의 고객만족 정도를 고객을 대상으로 평가해 이를 토대로 정부가 우수은행에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금융도 경쟁시대다. 과거 관치금융 시절처럼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감놔라 대추놔라’하기보다는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금융경쟁력도, 소비자 편익도 높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찬성 “은행의 소비자 중심 아닌 공급자 중심 사고가 문제”
직장인 Y모(27ㆍ여) 씨는 “가끔은 은행 볼일 보기가 힘들어 야간 은행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라며 “월급도 많이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좀 늦게까지 일해줄 순 없나 야속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L씨는 “4시에 셔터 닫고 바로 퇴근하는 게 아닌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주변 은행원들을 보면 다들 6시쯤 퇴근하더라”면서, “높은 연봉 받으면서 고객을 위해 2~3시간 정도 더 열어달라는 게 그렇게 큰 무리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회사원들은 대체로 평일에 은행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한 무역업체에서 일하는 S씨(29)는 “은행 직원들이 밤 늦게까지 일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직장인들을 위해 영업시간이 연장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적금 가입 해지 등 은행 지점을 꼭 방문해야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점심시간 은행에 갈 때마다 대기시간이 기본은 30분”이라며 “점심을 못 먹고 은행업무를 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문정숙 교수는 한 매체 기고를 통해 “오후 4시 이후에도 업무가 많다지만 어쨌든 4시에 문을 닫는 것은 은행이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사고체계를 갖고 있다는 현실을 방증한다”고 말한다. 문 교수는 “세계 1위인 중국 공상은행의 업무시간은 오후 5시이고, 일부 지점은 주말 및 휴일에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은행은 평일은 오후 6시나 7시까지, 토요일에도 오후까지 문을 연다. 유럽 대부분의 은행은 오후 4, 5시에 문을 닫지만 고객 편의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하거나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요일을 정해 놓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은행 간 경쟁이 이루어졌다면 오후 5, 6시에 문을 닫는 은행이 생겼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반대 “핀테크 외치는 정부가 대민업무 늘리라는 건 모순”
시중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모씨(24.여)는 “최근엔 집단대출 서류를 처리하느라 밤 11시까지 정신없이 일한 날이 태반”이라며 “최 부총리에게 하루라도 은행에 와서 일해보라고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은행원 R모(25ㆍ여) 씨는 “서비스업무 종료 후에도 시재관리, 환원자료관리 등 일이 산적해있다”며, “은행 업무도 편히 못 보게 하는 회사나 우리 사회 분위기가 문제인데 비난의 화살을 애먼 데 돌리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또 다른 은행원 이모(29) 씨는 “정부의 금융 소비자 권익 강화 때문에 은행원들이 통장 개설에만 10장, 대출에만 30~50장의 서류를 작성해야하는 1차원적인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금융선진화 퇴보가 은행원만의 문제라고 말할 순 없는 것 같다”며, 정부의 변화를 촉구했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 매체 기고에서 “은행 영업시간 연장은 은행원들의 추가 노동이 필요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히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원 교수는 “은행원에 추가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할 경우 인건비 상승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핀테크를 주창하는 정부가 대면 금융서비스를 위해 은행으로 하여금 비용 지불을 강요한다면 이는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책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라는 입장도 밝혔다.
직장인 K씨도 “인터넷 모바일 뱅킹 사용자가 늘어나는데 굳이 오픈 시간을 늘리는 건 보여주기 식 행정인 것 같다”며 결국 은행원들의 근무시간만 늘릴 것이라며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 생각하기 “직접 규제보다는 간접적으로 경쟁 촉진해야 ”
은행 영업시간은 은행이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나서서 몇시까지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그동안 담합하듯이 모든 은행이 4시면 일제히 문을 닫아왔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없지 않다. 이 역시 공정거래법상 담합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은행들끼리 경쟁을 제한해 결과적으로 은행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초래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적으로 영업시간을 규제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영업시간을 담합한 행위에 대해 규제하는 것이 훨씬 더 시장원리에도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은행들은 서로 눈치보지 않고 고객 서비스 향상 차원에서 영업시간 연장이나 주말 영업확대 등을 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업시간을 포함,은행들의 고객만족 정도를 고객을 대상으로 평가해 이를 토대로 정부가 우수은행에 일정한 혜택을 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금융도 경쟁시대다. 과거 관치금융 시절처럼 정부가 직접 개입해 ‘감놔라 대추놔라’하기보다는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금융경쟁력도, 소비자 편익도 높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