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고 최경석 쌤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36)
(33) 정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34) 왕의 아버지가 정치를 대신하다
(35) 최초로 근대 국가를 시도하다
(37) 제국을 선포하다
(38) 일제에 외교권을 뺏기다
개항 이후 조선은 내부의 근대적 개혁 요구와 외부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동시에 들이닥치는 위기의 순간이자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호에서 보았듯 1884년 급진개화파가 중심이 된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후 딱 10년 뒤 이번에는 조선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시대의 개혁을 온몸으로 요구한 그들, 바로 전봉준과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33) 정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34) 왕의 아버지가 정치를 대신하다
(35) 최초로 근대 국가를 시도하다
(37) 제국을 선포하다
(38) 일제에 외교권을 뺏기다
시대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일어선 농민들
비록 갑신정변 이후 정부는 나름대로 개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각 지역의 농민들은 탐관오리의 수탈과 1880년대 이후 내륙으로 진출한 청과 일본의 상인들이 판매하는 값싼 영국산 면직물 등에 의해 경제적 타격을 심하게 입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삼남 지방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에 많은 공감을 하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동학은 기존 양반 중심의 신분제를 거부하고 평등 사상과 함께 이른바 ‘후천개벽’이라 하여 조선 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가 다가올 것을 설파하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지배층은 동학을 용인할 수 없었지요. 반대로 농민들에게 동학은 새로운 희망의 빛 줄기였지요. 2대 교주 최시형의 포교 활동과 좀 더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추구한 전봉준의 활동으로 동학은 하나의 사회 세력으로 성장해 갑니다.
처음에는 동학 포교의 자유와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달라는 종교적 운동에서 시작하여 점차 탐관오리 숙청과 외세에 반대하는 사회 정치 운동으로 확장되어 갔지요. 결정적 사건은 1894년 1월 전라도 고부에서 발발합니다. 반봉건, 반외세를 내건 동학 농민 운동
당시 고부 군수 조병갑은 이미 보(洑)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만석보를 만들고 물세를 더 거두어 가는 등 학정을 일삼게 됩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전봉준과 함께 고부 관아를 점령합니다. 전봉준 등은 만석보를 파괴하고, 불법으로 거둬들인 곡식은 다시 농민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정부는 안핵사 이용태를 파견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오히려 그가 사건에 가담한 농민들을 가혹하게 대하면서 이제 동학 농민 운동이 대규모로 전개됩니다.
전봉준은 손화중, 김개남 등과 함께 백산에서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의 대의를 주장하며 1차 동학 농민 운동을 전개합니다. 단순히 동학교도만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농민들이 참여하면서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지요.
신분제를 철폐하고, 토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황토현 전투에서 크게 이긴 것을 기점으로 전세는 역전되었으며 황룡촌 전투에서 정부군을 격파한 후 결국 전주성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당황한 정부는 청에 원병을 요청하였으며, 이를 주시하던 일본도 군대를 파견하게 됩니다. 한편으론 정부는 왕의 권한을 위임받은 관료를 파견하였는데 전봉준과 농민군은 청·일 양군이 파병한 상황에서 정부 대표와 협상을 벌인 끝에 근대적 개혁을 정부가 수용하는 전주화약을 맺게 됩니다. 주요 내용은 농민들이 자치를 펼칠 수 있는 집강소를 설치하고, 정부는 교정청을 설치해 국가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일본군의 개입과 우금치 전투의 패배
그런데 여기에 뜻하지 않은 변수가 등장합니다. 바로 계속해서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일본이었지요. 일본군은 조선 정부의 철병 요구를 거부하고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였으며 서해안에 있던 청군 함대를 공격(풍도 해전)하여 청·일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들은 조선을 장악하고 내정간섭을 하려는 의도였지요.
이 소식을 들은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은 이른바 2차 동학 농민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교주 최시형 등을 포함해 동학 교단 전체가 참여하였으며 다수의 농민이 일본에 맞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서게 됩니다. 목표는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일본군의 강력한 무력으로 인해 결국 동학 농민군은 1894년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전봉준을 비롯, 지도부는 후일을 기약하며 흩어졌지만 1894년 12월 전봉준이 관군에 체포되었고, 다른 지도자들이었던 김개남, 손화중 등도 체포되고 맙니다. 물론 동학 농민 운동의 흐름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농민들은 이후 여러 모임과 단체를 결성하여 사회 개혁과 민족 운동을 이어 나갔으며 훗날 항일 의병과 독립군에 적극 참여하게 됩니다.
■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