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41) 에이먼 버틀러의 공공선택론 입문(상)
필자는 영국 경제문제연구소(IEA·The 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간행물을 정기 구독하고 있다. 그러다 2012년 어느 날 집으로 배달된 책, ‘Public Choice:A Primer’를 보고 “이것을 번역해 국내 독자들에게 제공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내 IEA에 편지를 썼고, 고맙게도 관대한 조건으로 번역권을 얻었으며, 2013년 3월 한국어로 출판했다.(41) 에이먼 버틀러의 공공선택론 입문(상)
2013년 한국어로 출간
에이먼 버틀러(Eamonn Butler)가 쓴 이 책, ‘공공선택론 입문’은 공공선택론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에게는 공공선택론에 대해 간결하게 소개하는 데, 공공선택론을 깊이 연구한 독자에게는 공공선택론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 이전에도 공공선택론 개설서가 많이 발간됐지만, 이 책만큼 짧은 지면에 효율적으로 공공선택론 전반을 잘 해설한 책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의 매력은 최근까지 이루어진 공공선택론 연구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압축해서 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개념과 이론들이 언급되고 있고, 공공선택론의 역사도 제시되고 있다. 책 뒷부분에 공공선택론 연표를 붙여 공공선택론의 전반적인 역사를 편리하게 개관하고 참고할 수 있게 해 놓은 점도 다른 책에서 좀체 볼 수 없는 독자에 대한 배려다.
필자가 번역한 다른 두 권의 책을 보완해서 읽으면 독자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는 고든 털럭이 공공선택론에 대해 쉽게 풀어 쓴 책으로 역시 IEA에서 간행된 ‘득표 동기론(The Vote Motive)’이고, 다른 하나는 제임스 뷰캐넌과 고든 털럭이 미시간대 출판부에서 낸 공공선택론의 고전 ‘국민 합의의 분석(The Calculus of Consent)’이다.
거짓 주장에 감염 안 되려면
필자는 국민이 사회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데 공공선택론 공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 현상을 잘못 알아서 잘못된 사회적 선택을 내리면 그것은 사회에 심대한 외부 비용을 끼칠 수 있다. 잘못된 주장에 감염되지 않도록 맞는 예방 주사 혹은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잘못된 생각을 씻어내는 해독제의 역할을 공공선택론 지식이 수행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에이먼 버틀러는 지도적인 정책 싱크탱크인 애덤 스미스 연구소(Adam Smith Institute) 소장이다. 그는 선구적 경제학자들인 밀턴 프리드먼, F A 하이에크 그리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에 관한 책들과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관한 입문서를 저술했다. 이런 버틀러 저서들의 특징은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책 외에도 그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 입문’을 번역 출간했고, 다른 두 책을 번역 중이다.
공공선택론은 정치 행정 현상을 분석하는 데 경제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 시장 경제 이론에서 소비자가 효용을 극대화하고, 기업가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가정하듯이, 공공선택론은 투표자, 정치가, 관료, 정당원, 이익 집단 구성원 등 공공 행위 주체가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많은 사람은 정부가 공익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단일의 공익은 없다는 것, 다양한 자기 이익들이 있을 뿐이라는 것, 공익이 있다면 개인 이익들의 집합일 뿐이라는 것을 배울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은 두 정당의 정강 정책이 꼭 같다고 불평한다. 그런 불평은 이해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정당은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 최대한 표를 많이 얻으려고 한다. 양당 제도의 경우, 정당은 중도의 정강 정책을 제시해야 중위 투표자의 지지를 얻고 따라서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 그 결과 정당들 사이에 차이가 없게 된다. 그러나 3당 체제에서는 정당들 사이에서 정강 정책이 괴리를 보이는데, 물론 이 점도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포퓰리즘 해설서
이 책은 정부가 왜 커지는지와 왜 비효율적인지에 대해 다양한 이유를 체계 있게 설명한다. 정당이 일단 선출되면 의원들은 과반수 규칙 아래에서 로그롤링에 종사한다. 로그롤링의 결과 비효율적인 법률도 통과되고, 필요 이상의 많은 법률이 통과된다. 그 결과 정부의 크기가 커진다. 정부의 성장은 또한 관료제에 의해서도 촉진된다. 관료들은 월급, 승진, 권력 등 사익을 추구하는데, 자기 부서의 예산이 커지고 업무가 많아야 그런 사익이 더 잘 달성된다. 그래서 관료들은 예산을 극대화하려 하고, 그 결과 정부가 커진다.
사람들은 한 지역에 두 개의 경찰서를 두는 것을 중복이고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동차를 여러 회사에서 생산하는 것이 중복이고 낭비인가? 우리는 이것을 중복이고 낭비라고 부르지 않고 경쟁이고 효율이라고 부른다. 같은 논리로 공공선택론은 관료제가 공공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할 것이 아니라 여러 관료 기관들이 중첩해서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소비자들은 관료 기관들의 서비스를 비교 평가해 선택할 수 있고, 관료 기관들은 서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경쟁할 것이다.
이익집단은 추구하는 공통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잘 조직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익들은 저절로 조직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 책은 설명한다. 집단이 추구하는 공통 이익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집단의 구성원들은 공통 이익 추구에 무임승차하려 한다. 집단의 규모가 작거나 특별히 강제나 선택적 유인 같은 사적재(私的財·private goods)가 제공되어야 집단이 조직되고, 그렇지 않은 이익 집단은 잘 조직되지 않는다. 소비자 집단과 납세자 집단이 잘 조직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집단의 규모가 크면 이익 집단으로 조직하기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더 심한 무임승차 문제 때문에 대규모 집단은 소규모 집단보다 조직하기 더 어렵다. 반면 소규모 집단은 사회적 압력과 같은 무임승차 억제 장치가 있어서 대규모 집단보다 조직하기 더 쉽다. 또한 이익 다툼에서 소규모 집단은 집중된 이익을 가지고 있는 반면 대규모 집단은 분산된 이익을 가지고 있고, 그 결과 소규모 집단이 대규모 집단보다 조직하기 더 쉽다. 작은 것이 강하다!
이익집단을 알자
이 책은 정보와 관련해 일반 유권자에 비해 이익 집단들의 영향력이 큰 이유도 가르쳐준다. 일반 유권자들은 자기의 단일 표가 결과에 차이를 가져오지 않아서 투표하나마나 별반 차이가 없으므로 합리적으로 기권하고, 또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므로 합리적으로 무지하다. 반면 이익 집단은 문제에 큰 이해관계가 있어서 투표 참가율도 높고 문제를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일반 유권자에 비해 이익 집단의 영향력이 커진다.
이 책을 읽으면 정부가 크고 규제 권력이 클 때 개인도 가난해지고 국가도 가난해짐을 알게 된다. 정부가 민간에 특권을 부여할 수 있는 입장에 있을 때 이익 집단들은 생산적인 활동으로 돈을 벌려 하기보다 정치 과정을 통해 특권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회사 사장이 지방 공장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에 가 있게 된다. 이런 지대 추구 활동으로 생산적인 활동에 투입됐어야 할 자원이 비생산적인 곳에 쓰여 자원이 낭비된다. 그 결과 개인과 국가가 가난해진다.
황수연 <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