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고 최경석 쌤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34)
(31) 100년 만에 완결된 수취 제도, 대동법
(32) 18세기, 조선의 美 달항아리
(33) 정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35) 최초로 근대 국가를 시도하다
(36) 이 땅의 주인은 농민이다
(31) 100년 만에 완결된 수취 제도, 대동법
(32) 18세기, 조선의 美 달항아리
(33) 정조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35) 최초로 근대 국가를 시도하다
(36) 이 땅의 주인은 농민이다
![[한국사 공부] 왕의 아버지가 정치를 대신하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510/01.10706875.1.jpg)
10년간 왕권 강화를 위해 일한 흥선대원군
한 마디로 말하면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26대 왕 고종의 아버지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린 왕을 대신해 10년 동안 집권한 것이지요. 훗날 임오군란 때 잠깐, 그리고 1894년 1차 갑오개혁 때도 잠깐 집권한 적이 있지만 여러분은 주로 이 1863년부터 1873년까지 집권기에 대해 배웁니다. 당시 44세였던 그의 눈에 조선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왕권은 땅에 떨어져 있었고 백성들은 이미 1862년 임술 농민봉기를 일으킨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외부에서 들여오는 소리는 큰 나라로 섬기는 청 왕조가 서양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으며, 바로 위의 러시아도 점차 세력을 넓힌다는 것이었지요. 안팎의 위기 속에 흥선대원군의 선택은 과감한 개혁이었습니다.
우선 외척일 뿐인데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안동 김씨를 몰아냅니다. 특히 그들의 권력 기반이었던 비변사를 의정부로 통합하지요. 또한 붕당과 상관없이 고르게 인재를 등용합니다. “나는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고, 태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며, 또한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고자 한다”는 말을 중신들에게 던진 대원군. 그 속내는 종친인 전주 이씨 세력을 중용하겠다는 뜻(천리를 지척으로 삼겠다)이었으며 기존에 정계에서 밀려난 남인 등 소수파를 등용하겠다는 뜻(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겠다는 것)이었지요.
서원철폐하고 양반에게도 세금징수한 대원군

한편 당시 점차 우리나라에도 다가오는 서양 세력에 대해 흥선대원군은 정치적 활용을 꾀하다 결국 초강수를 두게 됩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신자를 둔 크리스트교의 프랑스 선교사를 이용해 청에 있던 프랑스 군을 끌여들여 남진하려는 러시아를 막으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게 되자 대원군은 병인박해라 하여 천주교 신자를 탄압하게 됩니다. 또한 대동강에 상륙해 식량을 일시 지원받기를 원한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오히려 상륙 후 약탈과 살인을 하자 이를 불태워 없애버리게 합니다.
천주교 박해와 통상 수교 거부한 대원군
![[한국사 공부] 왕의 아버지가 정치를 대신하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510/01.10554653.1.jpg)
1873년 이렇게 왕권 강화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으로 일관하던 대원군은 최익현의 상소에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최익현은 흥선대원군의 집권이 부당하고 그 개혁의 성과도 잘못되었다는 점을 조목조목 주장하며 성인이 된 고종의 친정을 요구합니다.
결국 흥선대원군은 10년의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882년 구식 군인과 하층민들이 봉기를 일으킨 임오군란에서 잡시 집권하고,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입해 내정 간섭을 강요할 때 잠시 등장한 흥선대원군. 그러나 그의 권력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 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