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15) 무상복지와 재정환상
복지정책 전면 구조조정 필요
'부분 일몰제' 등 도입 검토를
2014년 12월에는 12년 만에 법적 시한을 넘기지 않고 새해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5년 예산에는 복지예산이 늘어나 전체 예산의 30%를 차지한다. 최근 크게 논란이 됐던 누리과정(3~5세 대상 보육지원 사업)과 기초연금 등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원을 분담하는 복지 관련 국고보조사업 예산도 증액 편성됐다.복지정책 전면 구조조정 필요
'부분 일몰제' 등 도입 검토를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또는 지자체와 지방교육청 간 복지재정 분담에 대한 근본적 갈등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명확한 재원 마련 방안 없이 시행된 무상복지 정책으로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들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치인들의 선거공약으로 이행된 무상복지 정책의 재원 부족 문제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 양상으로 비화했다. 예컨대 0~5세 대상 영·유아 보육지원 및 누리과정, 초·중·고 무상급식, 기초노령연금은 기초연금으로 바뀌어 관련 예산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영·유아 보육료와 양육수당은 2011년 4조1000억원에서 2014년 10조4000억원으로 늘어났고, 무상급식 예산도 2010년 약 6000억원에서 2014년 2조6000억원으로 4년 만에 4.6배 불어났다. 2013년 4조3000억원 규모였던 기초노령연금은 기초연금으로 전환돼 2017년에는 11조4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무상복지를 둘러싼 갈등은 근본적으로 가용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무상복지 정책의 재원은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이전되는 국고보조금과 교부세, 그리고 지자체의 자체 수입 등으로 충당된다. 특히 최근 수년 동안 국고보조사업 규모가 커졌다. 2009년 국고보조금 사업 수는 2003개에서 2014년 2199개로 늘었고, 같은 기간 국고보조금 예산도 40조원에서 52조5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국고보조사업이라 하더라도 국고보조금 지원 비율은 지자체마다 다르다. 지자체의 연령별 인구구성 비율이나 재정자립도에 따라 달라진다. 재정 상황이 어려워진 지자체들은 중앙정부를 상대로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한다. 각 지자체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의 높은 국고보조율을 명분으로 더 많은 이전 재원을 중앙정부에 요구할 유인이 강하다.
궁극적으로 대부분 지자체의 국고보조율은 가장 높은 국고보조율에 근접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캐나다 등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지방정부들은 중앙정부를 상대로 카르텔화해 지방정부 간 경쟁을 약화시키고 서로 균등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복지를 요구하는 국민들은 미래의 세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복지 공급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공공선택학에서는 이를 ‘재정 환상(fiscal illusion)’이라고 한다. 조세체계가 복잡해 일반 국민은 자신이 낸 세금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조세의 복잡성은 납세자들 자신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일일이 확인할 유인(誘引)을 약화시키고 세금 부담을 과소평가하게 해 과다한 복지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무상급식의 확대로 일선 학교에서 먹지 않고 남기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이 많이 늘어났다. 경기의 경우 무상급식으로 인해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가 2010년 약 4만9000t에서 2014년 7만6000t으로 크게 증가했다. 무상복지 수혜자들이 무상복지 정책의 직접적인 세부담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중앙정부로부터 지자체로의 이전재원을 통해 제공되는 국고보조 사업은 관련 지역주민들의 재정환상을 초래해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재정환상과 함께 ‘끈끈이 효과(flypaper effect)’는 무상복지로 인한 재정지출을 더욱 ‘고착화’시킬 수 있다. 선거를 통해 뽑히는 지자체장이나 지방교육감은 해당 지역주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복지수요를 유발할 유인이 존재한다.
실제 무상급식은 지방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에서 시작해 지자체장 선거 공약으로 확대됐다. 일단 무상급식이 시행되자 무상급식의 실제 필요와 재정여건 등이 면밀하게 고려되지 않은 채 지자체 또는 지방교육청 복지사업으로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는 복지비용을 부담하는 주체와 복지혜택을 받는 주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상복지는 지방재정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이전재원으로도 충당된다. 또 복지혜택을 받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으로 적정 수준보다 훨씬 많은 복지지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의 이전 재원과 지자체의 재정 공동부담으로 운용되고 있는 복지재정의 분담 갈등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우선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소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게 해 면세자들을 최소화함으로써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복지재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복지사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고보조를 통한 복지사업이 이해관계자들에게 기득권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분 일몰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기적으로 복지사업의 실효성을 점검해 축소 또는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하는 것이다.
또 재정적 측면에서 ‘선별적 복지정책’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에서는 무상복지 정책보다 인기가 낮다. 다수의 지지자를 확보하려는 선거에서 선별적 복지정책이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소득수준에 반비례해 복지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어떨까. 소득 변동에 따른 복지수혜에 대한 한계편익의 변화가 다르지 않도록 한다면 무상복지도 아니고 선별적 복지도 아니기 때문에 효율성과 형평성,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김영신 <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