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유연한 임금에 값싼 에너지·정부 파격지원…중국기업들 미국행 '러시'
저임금과 저가의 대명사였던 중국 기업들이 본토를 떠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값싼 에너지와 낮은 물류비, 파격적인 세제 혜택 등 정부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치솟는 임금과 정부 규제 등으로 ‘세계의 공장’이라는 명성을 잃고 있다.

값싼 중국은 옛말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엄그룹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중국 기업의 대미 직접투자 규모는 64억달러(약 7조4500억원)에 달한다. 이 중에는 중국 안방보험이 뉴욕 맨해튼의 아스토리아호텔 인수에 쓴 19억5000만달러가 포함돼 있지만, 미국 전역에 걸쳐 모두 35건의 생산 공장을 건설한 ‘그린필드’ 투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체로 변신한 볼보 자동차의 노스캐롤라이나 공장 건설과 같은 전략적 투자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존의 정보통신, 기계 등 고부가 업종뿐만 아니라 섬유와 같은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산업까지 미국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지난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방적 공장을 연 중국 키어그룹의 주산킹 회장은 뉴욕타임스(NYT)에 “값싼 공장 부지와 저렴한 에너지, 면화산업에 대한 지방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각종 세금우대 정책 때문에 공장을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내년에 제2 공장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NYT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임금과 값비싼 연료비·물류비, 섬유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 강화로 중국에서는 섬유산업이 더 이상 수지가 맞지 않는 업종이 됐다고 전했다. 이 중 대다수 섬유업체가 방글라데시와 인도, 베트남 등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지만, 상당수는 미국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 인건비는 중국보다 비싸지만 고도화된 자동화 설비로 이를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지난해 기준 주요 수출국의 제조업 생산비용지수를 분석한 결과 미국과 중국의 비용은 100대 96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생산성을 고려한 제조업 임금은 중국이 2004년 시간당 3.45달러에서 지난해 12.47달러로 3.6배 올랐지만 미국은 이 기간 약 30% 오른 22.32달러였다. NYT는 미국 임금이 중국보다 두 배 가량 높지만 낮은 연료비와 싼 원자재 가격, 지방정부의 세금 우대 등을 고려하면 제조비용 격차가 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메이드 인 USA’ 정책 효과

일부에서는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의도한 중국 봉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이 가입하지 않고 있는 TPP가 발효되면 중국 내 제조업체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시장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TPP 회원국에서 생산된 원사로 의류를 만든 경우에만 무관세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기업이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인도 최대 섬유기업인 시리발라흐 피티그룹은 지난해 조지아주 실베이니어에 7000만달러를 들여 공장을 세웠다. 최근 40년 새 이 지역에 들어선 최초이자 최대 제조업 공장이다. 브라질의 산타나섬유도 텍사스주 에딘버그에 염색·직물 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리쇼어링(reshoring·국외 진출 공장의 본국 회귀)’ 정책도 미국 제조업 부흥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월마트가 지난 6월 자회사의 월 40만개 생산 규모 전동칫솔 공장을 중국에서 미국 미시간주로 이전키로 한 결정이 대표적이다. 저가제품의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악명높은 월마트는 향후 10년간 2500억달러를 투자해 자사가 판매하는 각종 제품의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메이드 인 USA’ 전략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쇼어링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의 세제 혜택과 함께 중국 등 해외 생산공장 종업원의 임금 상승과 물류비용 증가가 원인이라며 미국 내 셰일혁명으로 생산비용이 대폭 낮아진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이심기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