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13) 자본주의와 돈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의 궁핍한 삶…산업혁명 이전의 '어두운 그림자'
그 단면만 보고 비판의 날 세워
생산력 향상이 가져온 번영의 혜택…반대의 자유도 인정하는 사회 만들어
공동체주의에 대한 주장들은 전체주의로 회귀하자는 것
자본주의를 상대로 한 가장 근원적인 오해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오해다.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를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회, 자본가만을 위하는 사회로 알고 있다. 돈 때문에 어린이를 유괴하고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지식인까지 있다. 심지어 어린이 유괴 사건은 자본주의에서만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취업도 하지 말고, 기업이 만든 물건도 사지 말라’고까지 선동한다. 그리고 ‘공동체 사회’를 만들자고 한다. 참 지독한 오해다.자본주의 초기 노동자의 궁핍한 삶…산업혁명 이전의 '어두운 그림자'
그 단면만 보고 비판의 날 세워
생산력 향상이 가져온 번영의 혜택…반대의 자유도 인정하는 사회 만들어
공동체주의에 대한 주장들은 전체주의로 회귀하자는 것
기원전 1800년께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 소아 유괴는 사형에 처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 시기에도 어린이 유괴가 있었다는 얘기다. 고대 중국에서도, 조선시대에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북한에서도 어린이들이 유괴된 사건이 많았다. 그런데도 어린이 유괴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어린이를 유괴하고 살인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원초적인 부정적 욕망 때문이다. 그런 욕망은 자본주의가 도입되기 훨씬 이전, 아니 태초부터 존재했다.
많은 지식인이 자본주의를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회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이유는 카를 마르크스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이후 전개된 사회를 ‘자본주의’라 부르며, 그 사회는 부유한 자본가만을 위한 사회라고 했다. 이후 많은 지식인이 그를 추종해 자본주의는 자본가만을 위한 사회이고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회라고 되뇐다.
마르크스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산업혁명이 전개됐던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들의 궁핍한 삶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들의 궁핍한 삶은 대부분 그 이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노동자들은 전 시대에 비해 훨씬 잘살게 됐고 빈부차도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당시 노동자 삶의 한 단면만 보고 자본주의가 자본가들만을 위하는 체제라고 오해했다.
자본주의는 결코 돈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사회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고 보장하는 사회, 즉 자유주의 이념이 실현되는 사회다. 자유주의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개인이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자유롭다는 사상이다. 자유주의는 사유재산, 재화 및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주창한다. 경제적으로는 민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을 최대한 줄일 것을 제안한다.
이런 사상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된 이후 인류의 삶이 달라졌다. 인류의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살게 됐다. 번영의 혜택은 특정 그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돌아갔다. 주기적으로 발생했던 ‘맬서스의 함정’에서 벗어났고, 유아사망률이 격감했으며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었다. 자본주의를 택한 사회의 사람들은 과거의 왕과 귀족보다 훨씬 더 청결한 환경에서 살고, 능력과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게 됐다.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사람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진 이후에 문화도 꽃피우기 시작했다. 18세기 영국에서 문학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으로 종이값이 하락하고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해 도서 구입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문화적 비주류로 가난했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발달로 각종 물감 붓 크레용 종이류 등 미술 재료의 가격이 하락하고, 작품들을 상업적 유통망을 통해 판매해 부와 명성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왕이나 귀족과 같은 단 한 명의 후원자나 고객에게 의존하지 않고 대중을 상대로 창의적인 활동을 하며 생활한다. 부유한 경제는 다양한 예술과 문학 사조가 공존할 수 있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문학가들에게 사회 관습적 가치를 거부할 여지를 줬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자본주의 때문에 존재한다.
모든 영역에서 더욱 위대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자유다. 누구든지 발명하고, 발견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등은 사회체제로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 자체는 인간적이지도 비인간적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체제가 드러내는 실제 결과다. 자본주의는 문제가 전혀 없는 완벽한 체제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그 어떤 체제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에서 더 인간적인 가치가 실현된다.
이런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공동체주의로 가자고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전체주의로 가자는 것과 같다. 돌아오는 것은 피폐해지는 삶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경제활동, 사회활동, 문화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체제를 비난할 자유마저 없어질 수 있다. 자본주의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이 커지면서 자본주의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