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미래’를 읽고 미래가 더 궁금해지다

[생글기자 코너] '불완전한 미래'를 읽고 미래가 더 궁금해지다 등
현대 사회를 흔히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하지만 과연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상상만 하던 이상사회를 실현시켜줄까? 아니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반이상향을 낳게 될까? 10~20년 후에는 모기만 한 크기에 모기와 같은 공기역학적 특성을 가진 값싼 비디오 카메라가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카메라를 수십 개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염탐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변화로 최근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우려한다. 이 책은 미래에는 프라이버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을 좋은 현상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프라이버시의 대안으로 투명한 사회를 제시했다. 경찰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지만, 누군가 또 경찰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이 발전함에 따라 미래에 인간은 자연의 이치마저 파괴하며 신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인간의 삶에는 탄생과 죽음이 있다. 인간들은 과학의 힘으로 이 절대적인 자연의 이치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미래로 조금 더 나아가면 아이들의 유전적 유산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엄마의 근시 유전자가 없는 난자와 아빠의 약한 심장을 물려받지 않은 정자를 골라 아이를 낳는 것이다.

생명의 탄생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죽음도 있다. 노화 문제가 해결될 때의 이득은 엄청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야구 선수인 테드 윌리엄스와 디즈니 창시자인 월트 디즈니를 비롯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신이 액체 질소 속에서 늙지 않은 채 얼어있다. 미래에 의학적 진보가 충분히 이뤄져 냉동상태가 풀리고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며 말이다.

만약 이들이 내기에서 이긴다면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중간단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단계에 세상의 법과 제도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으로 할 수 있는 사고, 학습, 자기계발 등을 컴퓨터가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적인 행동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나 컴퓨터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로봇연구소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2050년이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실 사람과 대화하고 같이 생활하는 인공지능 생명체가 등장한다면 인류와의 관계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감성을 가진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온갖 궂은 일을 해줄 때는 기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칫 실수로 인간을 지배하려는 로봇이 등장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한쪽이 멸종되거나 서로 달라지려고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이때도 둘 사이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쪽이든 그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당장 내일 어떤 놀라운 기술이 탄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서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곧 우리가 상상도 못한 세상이 다가온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사회에 적합한 법률이나 규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 사회의 모습은 모 아니면 도이다. 인간은 신 혹은 노예처럼 살게 될 수도 있다. 어떤 미래는 매력적이고, 어떤 미래는 무시무시할 것이다. 결코 따분한 미래는 없다. 데이비드 프리드먼의 ‘불완전한 미래’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더 키워주었다.

차성원 생글기자(양천고 1년) chasw0059@naver.com

미래 식량 산업…육류 생산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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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서스의 인구론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식량부족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19세기 발표될 당시 지식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인구증가 수준이 정체되고, 공업의 발달에 따라 식량 생산량이 급증하자 그 실현 가능성은 작아보였다. 이에 따라 식량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현재 육류 소비 추세를 보면 식량에 대해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서구적 식단이 널리 퍼지면서 곡물이나 채소보다는 육류 소비가 눈에 띄게 늘었다. 육류 소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식량생산의 역효과와 환경오염이다.

고기 1㎏을 얻으려면 곡물 9.3㎏이 필요하다. 기아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현재 인류의 농업 생산력의 70%가 육류를 생산하는 데 쓰이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육류 생산을 위해 희생되는지 알 수 있다. 소·돼지를 기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분뇨 처리 문제 또한 골칫거리다. 기름으로 쓰인다고 하지만 그 개체 수가 점점 더 늘고 있어 토양오염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소가 내뿜는 가스는 온실가스 비중의 13.5%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는 인공 고기와 고기를 대체할 식량을 찾는 것이 있다. 2012년 전 세계 30개 연구소에서 시험관 고기(in vitro meat)연구가 시작됐고, 다음해 8월 런던에서 첫 인공 고기로 만든 버거 시식회가 있었다. 시식을 한 식품연구가는 부드럽지는 않지만 고기 맛이 난다며 긍정적인 평을 내렸다. 인공 고기는 줄기세포와 조직 배양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최대 50%의 에너지가 절약되고 온실가스 배출을 85%까지 줄일 수 있다. 앞으로 기술이 더욱 발전해 일반 가정에도 널리 보급된다면 수많은 동물의 희생도 막을 수 있다.

육류를 대체할 식량으로는 곤충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100g을 기준으로 소고기로는 27.4g, 곤충의 애벌레는 28.2g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똑같은 양의 풀로 약 9배 많은 양의 식량을 얻을 수 있다. 크기도 작고 습성상 뭉쳐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소·돼지 등과 달리 적은 공간에서 키울 수 있고 수확이 더 쉽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는 곤충을 식량자원으로 써야 한다는 보고서도 제출한 적 있다.

이와 같이 이미 많은 분야에서 육류 소비 증가의 문제점을 깨닫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육류뿐만 아니라 식물자원을 이용한 식량 생산기술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설국열차의 단백질 블록이 그저 웃어 넘길 만한 일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먼 미래에는 환경과 인류, 그리고 동식물에도 보다 긍정적일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되길 바란다.

곽해인 생글기자(광주 수피아여고 3년) 119khing@naver.com

강남스타일,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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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은 요즘 일본의 한 거리를 방불케 할 만큼 ‘일본식’이 많다. 20대의 74%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별 느낌이 없다고 대답하였으나 나는 이러한 ‘일본 스타일’에 반대한다. 우선 이와 같은 일본풍의 유행으로 인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멋과 미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특히 강남역은 유동인구가 많아 파급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좋은 조건을 활용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유행만 따라가다 보니 퓨전이나 융합 수준을 넘어선 국적 불명의 거리가 되어버렸다.

또한 이와 같은 유행은 오히려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는 요소다. 다양한 국적,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모여서 문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문화이다. 이태원에 오로지 한 나라의 음식점, 상점, 브랜드가 유행을 하여 그것들로 가득 찼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예를 들어 ‘이태원 맛집’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만 검색하여도 유럽, 미국, 이슬람, 남미 등 여러 종류의 음식점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의 공존이 오늘날의 이태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어 간판들은 사람들에게 혼란과 불편을 준다. 일본 음식점이 아닌 곳에서도 일본어로 된 간판을 내걸어 사람들을 혼동시키고, 파는 메뉴조차 알아볼 수 없게 한 경우도 있다.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사례는 바로 내과를 일본어인 ‘나이카’로 표시한 병원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들로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이 표지판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퓨전은 좋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경쟁력을 잃는다. 유행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하지 말고 차별성을 둬 경쟁력을 높이는 똑똑한 가게주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전통을 살린 집, 카페를 운영하거나 한국 음식을 외국인의 입맛에도 맞도록 약간씩 변형하여 판매하는 음식점이 생겨난다면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좋은 볼거리, 즐길거리가 될 것이다.

유혜승 생글기자(봉영여중 3년) h0428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