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고 최경석 쌤의 '술술 읽히는 한국사' (12)

(11) 뉴욕으로 날아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13) 발해는 결코 중국사가 될 수 없다
(14) 지금 내 옆에는 누가 있나?
(15) 역발상으로 국가를 지키다
(16) 송나라 사신이 감탄한 고려청자
일본 교토 고산 사에는 독특한 불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거친 파도를 가르는 배를 용 한 마리가 지켜주며 인도하는 그림이지요. 이 그림은 중국 당나라에서 불교를 유학하고 신라로 돌아오는 승려 의상 일행과 그를 남몰래 사모하였던 당나라 여성 선묘가 용이 되어 의상을 수호했다는 이야기를 담은 겁니다. 그만큼 의상의 명성이 동아시아에 널리 퍼졌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한편, 의상이 신라로 돌아와 태백산의 한자락에 절을 세우려 했는데 그곳에 기거하던 한무리의 산적들이 의상을 위협하여 죽이려 합니다. 그러자 용이 된 선묘가 큼지막한 바위를 공중에 들었다 놓았다 하며 그들을 넋이 나갈 정도로 혼쭐을 내놓습니다. 이 산적들은 곧 의상에게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돌이 공중에 떠 있었다 해서 절 이름은 ‘부석사(浮石寺)’라 명명됩니다.

부석사 짓고 화엄종 널리 알린 의상대사

거문고를 연주하는 원효
거문고를 연주하는 원효
의상은 7세기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누르고 통일을 이뤄내던 시기를 살아간 승려입니다. 그는 불법을 배우러 당에 가 승려 지엄에게 10년간 화엄종을 배운 후 성공리에 돌아왔습니다. 화엄종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부처의 경지에서 이 세상을 포함한 온 우주를 파악한다”는 불교의 한 종파인데요. 그는 화엄 사상의 핵심적인 내용을 210자의 글자에 담아 상징적인 정사각형 도안으로 배열하여 쉽게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그것이 ‘화엄일승법계도’입니다.

이 속에는 “하나 가운데 모든 것이 들어 있으며 많은 가운데 하나가 있다.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우주가 포함되어 있고 모든 티끌 속에 온 우주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요. 흔히 ‘하나는 곧 모두이며 모든 것이 곧 하나’로 표현되는데요. 부처는 모든 중생을 헤아리며 모든 중생은 수행을 통해 자신이 본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의상은 진골 귀족 출신으로 신라 최고의 신분이었어요. 그럼에도 그 어떤 권세를 누리지 않고 단지 옷 세 벌과 바리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노비 출신이거나 빈민 출신인 제자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며 만물은 평등하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였지요. 또한 중생의 고난을 구제해준다는 관세음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보타락산’의 줄임말인 ‘낙산’에서 따와, 동해 바다가 넘실거리는 강원도 양양에 낙산사(洛山寺)를 창건합니다.
의상과 용이 된 선묘 이야기
의상과 용이 된 선묘 이야기
당시 의상은 관세음보살을 직접 만나기를 원했는데, 흰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의상에게 동해 용의 보물 여의주, 그리고 수정염주를 주었으며, 산마루에 한 쌍의 대나무가 자라는 곳에 절을 지을 것을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이 설화는 이후 고려 시대에 더욱 퍼져 고려의 대표적 불화인 ‘수월관음도’에 일부 반영되기도 합니다). 의상은 화엄 사상과 관음 신앙으로 통일 신라의 불교를 발전시키고 여러 사찰을 창건한 것이지요. 특히, 질병이나 재해 등 인간 생활의 현실적인 문제에 고통받고 있는 백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관음 신앙을 널리 퍼트리며 불교 대중화의 또 다른 길을 열었습니다.

해골 바가지 물에서 깨달음 얻은 원효대사

부석사
부석사
한편,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 길에 올랐으나 돌연 이를 포기한 또 다른 승려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원효. 한때 화랑으로 활동하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삶의 의미를 찾아 고민하던 중 출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661년 후배였던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중국으로 바로 떠날 수 있는 황해의 당항성으로 향합니다. 날이 저물어 무덤 주변에서 잠을 자다 갈증을 느껴 주변에 있는 물을 아무 생각없이 달게 마십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다시 잠이 든 후 아침에 일어나보니 잠결에 마신 그 시원했던 물이 사실은 해골에 괴어 있는 썩은 물인 것을 알게 됩니다. 곧 구역질을 하게 되지만,

원효는 그 순간 깨달음을 얻습니다. 결국 해골 물이나 갈증을 해소했던 물이나 매한가지라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라는 이른바 ‘일체유심조’를 터득하게 됩니다. 원효는 10년 넘게 준비해오던 당나라 유학길을 그 자리에서 바로 포기합니다. 이후 그는 신라로 돌아와 “입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귀로 부처의 가르침을 들으면 성불할 수 있습니다”라는 가르침을 통해 누구나 쉽게 불교에 귀의하는 대중화의 길을 열어 나갑니다.

동아시아 불교 문화에 영향 끼친 의상과 원효

원효의 판비량론
원효의 판비량론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소』와 『대승기신론소』, 『십문화쟁론』 등에서 ‘일심’ 사상을 설파합니다. 모든 것이 ‘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그의 논리는 세상 모든 것의 특징과 존재를 무시하고 딱 한 가지만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차이와 특징을 포용할 수 있는 조화의 논리로 ‘일심’을 설파하지요. 당시 외적으로는 신라가 통일 전쟁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불교 내부에서도 여러 종파로 나누어 논쟁을 하던 때였습니다. 원효는 이를 모두 포용하며 마치 바다처럼 하나로 아우르는, 갈등과 분열을 조화할 수 있는 ‘화쟁’ 사상을 주장하게 됩니다.

의상이 당의 선진적인 화엄종을 익혀 그것을 신라의 풍토에 맞게 설파하였다면, 원효는 반대로 독자적인 깨달음을 통해 당시 신라인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폭넓은 조화의 길을 터놓은 것이지요. 더 나아가 그의 사상은 당과 일본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 남아 있는 『판비량론』에서는 기존 당나라 현장 법사의 불교 사상을 비판적으로 논하기도 합니다.

[한국사 공부] 원효와 의상, 서로 다른 길을 가다
자, 길은 달랐지만 의상과 원효는 모두 당시 신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외형적인 통일은 달성했지만 전쟁으로 지친 신라인에게 정신적 위안과 안정을 나눠주게 됩니다.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