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화두 '인구의 딜레마'
기술·과학의 발전…100억명 되도 지구는 건재
인구폭발, 인구절벽(급감)은 공통적으로 종말론 냄새를 풍긴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도, 급감해도 인류가 위기를 맞는다는 걱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적응-변이-진화 DNA’를 가진 인간의 본질을 무시한 허무맹랑 그 자체다. 현재의 인구는 토머스 맬서스(1766~1834)가 ‘인구론’(1789)에서 경고했던 적정 인구 수에 비하면 지구를 수차례 멸망시키고도 남을 규모다. 현재 인류는 어떤 상태인가.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가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30세에 불과했던 200여년 전 유럽의 평균수명은 두 배 이상 길어졌고, 식량난은 없다.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의 기근은 식량 문제가 아니라 ‘홉스의 덫(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이 작용하는 정치 문제 때문이란 것은 상식이다. 인구폭발을 우려했던 맬서스의 후예들이 되레 인구절벽을 걱정하고 있다니, 예측이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다.기술·과학의 발전…100억명 되도 지구는 건재
아! 맬서스여…
‘인구폭발=인류종말’로 요약되는 맬서스의 ‘인구론’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인구가 늘어나자 맬서스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다.
산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형편없는 생산성과 낮은 식량생산성으로 절대빈곤의 덫에 갇혀 있었다. 전염병 등 위생환경도 나빠 신생아의 대부분은 첫 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절대빈곤 즉 ‘맬서스 함정’에 빠져 있었던 인류는 인구폭발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인류가 산업혁명으로 대분기(great divergence)를 맞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기를 경험한 맬서스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한다.’
과거엔 지구의 적정인구는 몇 명쯤으로 봤을까. 19세기 이전에는 10억명이었다. 그 이상은 지구가 수용 불가라고 했다. 지구 인구가 이렇게 되면 에드워드 로스가 1927년 그의 책 제목으로 썼던 “서 있을 자리밖에 없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인구 조절을 위해 열등 인종을 거세해야 한다는 극단의 주장이 나왔으며 실제로 몇몇 국가에서는 실행되기도 했다. 이런 종말론을 거든 맬서스의 후예는 20세기 학계에서도 많이 나왔다. 폴 얼릭의 ‘인구폭탄’(1968)과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1972)는 인구론의 현대적 버전들이다. 이후에도 인구폭발과 멸망을 다룬 봉준호 영화 ‘설국열차’(2013)와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2013)가 나왔다.
토끼처럼 낳으면 멸망?
인구는 10억명, 15억명(1900년), 30억명(1960년), 60억명(1999년), 72억명(2014년)으로 늘었다. 앞으로 추이는 어떻게 될까. 해마다 남북한 총인구(8000만명)가 불어난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엔은 2025년 81억명, 2050년 96억명, 2100년 109억명이 된다고 예측한다. 정말 이렇게 될까. 모를 일이다.
‘토끼처럼 새끼를 낳으면 토끼처럼 살다가 죽는다’ ‘사람이 지구 전체를 몇 겹으로 덮고 발버둥칠 것’이라는 종말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구증가를 긍정적으로 본 사상가를 만나보자. ‘기술은 경쟁자가 많을수록 촉진된다. 400명보다 400만명에서 한 사람의 천재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윌리엄 페티), ‘행복과 덕목이 넘치고, 현명한 제도가 있는 곳일수록 사람들이 많다’(데이비드 흄)는 말은 인구 증가와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인간이 근본 자원임을 꿰뚫어 봤다. 인간은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해 식량생산성을 높였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를 괴롭혔던 질병이 정복됐다. 소득 수준은 세계 평균적으로 상승했다. 한국의 가장 가난한 사람도 과거 고종황제가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산다. ‘한 나라를 최저의 미개상태에서 최고의 풍요상태로 만드는 데는 평화, 가벼운 세금, 정의의 적절한 관리 정도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저절로 생겨난다’는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한국의 절대빈곤은 추억이 됐다. 인류는 자유와 소유권을 확보해 분업과 경쟁을 촉진했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만들어내 인류를 빈곤에서 구했다.
잘 사는 인류는 이제 거꾸로 출산을 제한하고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피임도 한다. 인구폭발의 반대인 인구절벽을 우려하는 상태다. 해리 덴트의 ‘2018, 인구절벽이 온다’는 책을 맬서스가 읽는다면 무엇이라 할까. 천재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계속해서 증가하는 인구가 아주 치명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분명한 것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가.”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