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나쁘고 정년은 연장
기업 채용여력 바닥

고용절벽 현상도 완화하고 청년층과 기성세대의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고용절벽

올해부터 최소 6년간 대학 졸업생의 대기업과 금융회사 취업이 어려워지는 ‘고용절벽’ 현상이 빚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내년부터 300명 이상 기업의 정년 60세 의무화로 퇴직자가 대폭 줄어드는데 임금피크제 도입 등 보완책은 미비해 기업의 채용 여력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2015 고용절벽 분석’에 따르면 정년연장법에 따라 현재 평균 53세인 대기업·금융권 직원의 은퇴 시기가 6년 이상 늦춰질 전망이다.

- 1월28일 한국경제신문

☞ 청년실업이 전 세계적으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올해 한국이 ‘고용절벽’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그것이다. 고용절벽은 기업들의 고용 여력이 급감해 일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나라살림에 필요한 돈이 부족해 정부가 할 일을 못하게 되는 ‘재정절벽’과 비슷한 조어(造語)이다. 괜찮은 청년 일자리의 부족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왜 올해는 ‘고용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 심각해진 걸까?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현실화되는 '고용절벽'
내년부터 정년 60세 연장으로 ‘고용한파’

고용절벽 현상은 △올해 대기업의 채용이 급감하는 데다 △그동안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중소기업도 이제 뽑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0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305개사) 가운데 열 곳 중 세 곳은 올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작년보다 줄이거나 아예 뽑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올 채용계획을 확정한 180개 기업이 뽑을 인원은 지난해보다 2.3% 줄었다. 아예 채용하지 않겠다는 기업이 29곳이고,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다는 곳도 응답 기업의 40%가 넘었다. 채용 감소율은 100대 기업에선 3.1%, 30대 기업은 5.5%로 대기업에서 두드러졌다. 고용을 늘리라는 정부의 독려에 눈치를 봐왔던 기업들이 이제 그럴 여유마저 없다는 의미다. 10대 그룹의 대졸 채용 규모는 2012년 3만2440명에서 2013년 3만400명, 지난해 2만9400명으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권은 인력을 줄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3000명가량을 감축했던 증권사들은 신규 채용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중소기업 구인난이란 말도 쑥 들어갔다. 지난해 중소 제조업체의 인력 부족률은 사상 처음 1%대로 떨어졌다. 2년 전만해도 3%를 넘었지만 지난해에는 1.4%에 그쳐 ‘인력 미스매칭’란 단어가 빛을 바랬다. 이제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을 겨냥하라는 권유도 어렵게 됐다.

이유는?

이처럼 ‘고용절벽’ 현상이 현실화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경기가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2014년 4분기 성장률은 0.4%로 2년여 만에 최저다. 한국은행은 올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9%에서 3.4%로 낮췄다. 소비와 투자가 부진한데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수출마저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있고 중국산 제품 등은 세계 시장에서 우리 제품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이러니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갖지 못하고 이는 다시 소비와 투자를 줄이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또 하나는 기업 경영을 규제하는 각종 법과 규제를 꼽을 수 있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국회에서 만든 법과 정부 정책, 임금을 늘리려는 대기업 노조의 단체행동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정년연장과 통상임금 확대다. 내년부터는 정년연장법(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선 직원이 300명 이상 기업부터 법정 정년이 만 60세로 늘어난다. 한 번 사람을 뽑으면 큰 문제가 없는 한 60세까지 고용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 법에 따라 현재 평균 53세인 대기업·금융권 직원의 은퇴 시기가 6년 이상 늦춰질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신규 채용이 없더라도 매년 인건비 부담이 6% 정도 늘어난다. 예컨대 직원 3000명, 연간 인건비를 1200억원 쓰는 평균 정년 57세의 제조업체라면 2017년 1290억원, 2018년 1380억원, 2019년 1470억원으로 인건비가 급증한다.

게다가 국내 기업들은 업무 성과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는 성과급보다는 근무 연수와 직급이 오르면 자동적으로 월급도 오르는 연공서열형 급여구조가 대부분이다. 20년 이상 근무자의 임금이 신입 직원의 2.8배(제조업 기준)에 달하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때문에 장기 근속자 한 명의 은퇴 시기가 늦춰지면 신입 두 명 이상의 자리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정년은 늘어나지만 대졸 아들딸은 백수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경련이 지난달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신규 채용 규모를 정할 때 고려하는 사항으로 48%가 ‘적정 인원 편성’이라고 답했다. 대내외 경제 여건(26.0%)과 인건비 총액(20.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자리가 있어야 사람을 뽑는다는 얘기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년연장이 시행되면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줄일 게 불 보듯 뻔하다.

이철행 전경련 고용노사팀장은 “특단의 대책 없이 정년만 연장한다면 대졸자들로선 앞으로 6~7년간 취업 암흑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판중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부 본부장은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은 고용을 대폭 줄이거나 장기 근속자를 내보내는 구조조정이 없으면 계속 유지된다”며 “적절한 보완책 없이는 신규 채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해결책은?

일정 나이를 넘어서면 급여를 깎는 임금피크제는 인건비 부담 축소와 고용 여력 확대를 위한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2013년 4월 국회를 통과한 정년연장법이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강제하지 않고 노사 자율에 맡겨둔 탓에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수년째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100인 이상 기업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2012년 9.6%, 2013년 8.3%, 2014년 9.9%에 그친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피크제를 법제화하거나 회사가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근로계약이 해지되는 ‘변경해지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년연장이 노사 한쪽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령화에 대비해 사회 전체적으로 비용을 분담하려는 것인 만큼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근로자가 받는 임금총액은 정년연장 이전과 같아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세대 간 형평성에 맞다”고 강조했다.

고령화와 저출산 추세에 따라 근무 연한을 늘리는 건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나 연공급(年功給)을 직무·성과급으로 바꾸는 임금체계 개편이 함께 진행돼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노조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지금도 땀을 흘리는 청년층을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동 관련 법과 제도를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게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업의 투자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규제 걸림돌을 치우는 것도 필수다. 기업 투자가 늘어야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