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돌아와서 "엔저효과 누리자"
[글로벌 뉴스] 일본 기업들…본국 U턴 붐
엔고 등을 견디지 못해 해외로 빠져나갔던 일본 기업들이 자국 내로 돌아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직 해외 공장을 철수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 내수용이나 해외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물량 일부를 일본 내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등 신흥국 인건비 상승으로 해외 생산의 장점이 줄어든 데다 지속적인 엔화 약세 효과를 누리려는 의도에서란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각종 ‘유턴 기업 지원책’에 더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한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파나소닉, 내수용 가전 일본 내 생산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5일 일본 1위 가전업체인 파나소닉이 해외에서 생산해 일본으로 들여오고 있는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 대부분을 올봄부터 순차적으로 일본 내 생산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파나소닉의 일본 내 가전 판매액은 5000억엔(약 4조6000억원) 안팎으로, 이 중 약 40%인 2000억엔가량을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우선 거의 전량을 중국에서 만들고 있는 세탁기 생산을 시즈오카현 후쿠로이시 공장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중국에서 전량 생산해 들여오는 가정용 전자레인지는 고베시로, 가정용 에어컨은 시가현 구사쓰시 공장에서 생산을 추진한다. 일본 내 공장의 여유 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설비투자는 수십억엔에 그치지만 고용은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 공장에선 현지용 제품을 계속 생산한다. 파나소닉이 일본 생산을 늘리면서 관련 부품업체들도 일본 내 생산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캐논·다이킨·혼다 등도 ‘유턴’

다른 제조업체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캐논은 2013년 42%였던 일본 내 생산 비율을 올해 50%까지 높일 계획이다. 캐논은 주로 렌즈 카메라나 컬러복사기 같은 고가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오오이타 등 일본 곳곳으로 유턴시킬 계획이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은 “엔화 약세 기조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세계적인 생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캐논은 이번 결정이 ‘메이드인 재팬’ 브랜드를 활용한 판매 전략을 수립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논의 일본 내 생산비율은 2000년대 초반 약 60%에 달했지만, 엔고 현상이 지속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겼었다.

다이킨공업은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부터 가정용 에어컨 25만대(연간)를 중국 공장 대신 시가현 구사쓰시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혼다자동차는 지난해 10월 기업설명회(IR)에서 일본에서 제작, 수출하는 비율을 10~2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고, 멕시코 공장에서 소형차 ‘피트’의 공급이 달릴 경우 일본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자업체 샤프의 다카하시 고조 사장은 6일 요미우리 신문 등과의 인터뷰에서 국외에서 생산해 일본으로 역수입해온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 일부를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엔화 약세 효과 누리자”

일본 제조업체들이 일본으로 복귀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신흥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현지 생산비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3년 중국 베이징의 인건비는 4년 전보다 75% 뛰는 등 가파르게 상승했다. 엔화 약세로 완제품을 수입해 팔 경우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도 있다. 파나소닉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떨어질 경우 가전 부문에서 연간 18억엔의 이익이 줄어든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달러당 120엔 이상으로 계속 떨어지면 대폭적인 이익 감소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자동차업체들은 해외 생산으로 엔저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 생산 물량을 일본 내로 돌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해외로 나간 기업을 재유치하기 위해 규제 완화,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공장입지 규제였던 수도권 공장제한법과 공장재배치촉진법은 이미 2002년과 2006년 각각 폐지했다. 신규 입주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고 지방자치단체는 고용과 시설정비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높은 법인세율, 무역자유화 지연, 노동·환경 규제 등을 기업 경영환경을 억누르는 ‘6중고’로 지정하고 개혁을 추진 중이다. 법인세는 향후 수년에 걸쳐 20%대 후반으로 내린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올해 2.51%포인트 등 2년간 3.29%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 일본 내 전문가 사이에선 근로자 해고 기준 도입, 이민수용정책 등이 여전히 미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