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디플레에서 벗어나는 일본

일본은 1991년 이후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우리 경제 사정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당시와 유사하다”며 한국판 아베노믹스 추진을 예고했다.

- 7월17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아베노믹스 '날개'를 펴다
일본 경제가 20년의 장기 침체(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조짐이다. 소비와 투자가 늘면서 물가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펴고 있고,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보다 일할 사람을 찾는 기업들이 더 많다. 손님이 많지 않아 파리채만 날리던 거리의 택시 기사들도 오랜만에 반가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일본 경제가 이처럼 오랜 침체에서 탈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건 아베 정부가 추진 중인 아베노믹스 덕분이다. 아베노믹스란 무엇이고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팀인 최경환 부총리는 왜 한국판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려는 걸까?

북적이는 일본 경제

일본 경제가 눈에 띄게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도쿄 하네다공항은 주말 오전 7시만 돼면 1만대의 자동차를 수용할 수 있는 국내선 주차장이 꽉 찬다. 전국 각지로 떠나는 관광객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도쿄의 밤거리도 마찬가지다. 음식점과 술집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롯폰기의 그랜드하얏트 등 도쿄의 고급 호텔 대부분은 현재 숙박률이 90%를 넘는다. 주가 상승과 엔저로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빈 사무실도 크게 줄었다.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 땅값도 덩달아 뛰어오르고 있다. 올해 일본 기업들의 여름 보너스 인상률은 거품 경제 때보다 높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전국 581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의 평균 보너스 지급액이 79만3849엔(약 799만4853원, 전년 대비 8.5% 증가)으로 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1989년, 1990년대의 7%대 인상률을 웃돌았다.

이는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실업률은 3.5%(5월 기준)로 16년 만에 가장 낮다. 구인자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유효구인배율 또한 1.09배로 1992년 이래 최고다. 일할 사람이 100명 있으면 일자리는 109개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의 파산(도산) 건수도 지난해 1만855건으로 버블 말기인 1991년 이후 가장 낮았다. 상장 기업들의 2013 회계연도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순이익은 51.2% 급증했다.

경제 부활의 원동력은 아베노믹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아베노믹스 '날개'를 펴다
아베는 총리 자리에 오르기 전인 2012년 11월 중의원 선거 유세에서 “일본은행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내겠다”고 말했다. 아베는 경제 살리기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베 총리의 경제 회생 정책이 바로 ‘아베노믹스’다.

아베노믹스는 △양적완화 △재정전략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이라는 전략이 핵심이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무제한적으로 통화를 살포한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동원했던 정책이다. 아베는 시로카와 마사키 일본은행 총재가 양적완화 정책에 미적거리자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몰아내고 구로다 하루히코를 총재 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규모는 2013년 4월부터 2년간 132조엔(약 1320조원)이다. 양적완화를 실시하면 시중에 도는 통화량이 많아지고 금리는 떨어져 소비와 투자가 늘어날 유인이 생긴다. 또 무제한적인 엔화 공급은 엔화 가치를 떨어뜨린다. 아베 총리 취임 당시 미국 달러당 75엔 수준이던 엔화 환율은 현재 100엔 안팎으로 올라갔다. 엔화 가치가 급속하게 떨어졌다는 뜻이다. 엔화 가치 저하는 도요타 소니 등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든든한 원군이 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함께 정부는 과감하게 재정 지출을 늘려 총수요를 확대했다. 집단적 자위권 도입 등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방위산업 제품의 수출 산업화도 추진 중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기업을 돕는 성장전략이다. 규제를 완화하는 차원이 아닌 기업들이 아예 규제를 무시하고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제도도 도입했다. 지난달에는 현재 35.64%에 달하는 법인세를 내년부터 20%대로 내린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를 올려 서민들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걷으면서 기업들에는 대폭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선거에는 불리한 결정이지만 경제가 살아나려면 기업부터 회생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1980년대 영광을 되찾자는 일본부흥전략

아베 총리는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한국과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우려의 시각을 갖게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경기를 살리기 위해 뚜렷한 목표와 수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해 일본 내에선 지지도가 상당하다. 아베노믹스의 가장 큰 효과는 20년간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 사회에 만연한 무기력증을 걷어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경제 정책을 다루는 정부 내 각종 위원회와 간담회를 본인이 직접 맡아 진두지휘한다. 재계도 직접 찾아다닌다. 게이단렌 등 경제단체 대표들과 만나고 수시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국민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공식 기자회견과 연설을 지난해 58회, 올해는 28차례 실시했다. 1주일에 한 번꼴이다.

국민에겐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목표를 제시해 소통을 강화했다. ‘2년 내 물가상승률 2% 달성’ ‘2020년까지 실질성장률 2% 달성’이 그것이다. 국민들은 ‘2’라는 숫자를 통해 정부 정책을 확실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베 정부는 지난달 ‘일본부흥전략(日本再興戰略)’이란 이름 아래 새 성장전략을 발표했다. 영어로는 ‘JAPAN is BACK’이다. 1980~1990년대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일본의 영화를 되찾겠다는 얘기다. △법인세 인하 △기업 지배구조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농업 부문 개혁 △FTA 촉진 △에너지 시장 경쟁 촉진과 원전 재가동 △시장 개방(이민 확대 정책) 등의 구체적 전략을 담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 vs 일본

일본 경제가 20년 동안이나 활력을 잃은 건 잦은 정권 교체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을 안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내각의 평균 수명이 1년6개월에 불과한 정치적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가 뭘 해볼 엄두를 못낸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 아베의 가장 큰 공은 바로 ‘다시 해보자’는 의욕과 투지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일본 경제는 6.7%(연율 기준) 성장했다. 반면 우리는 3.9% 성장에 그쳤다. 왜 경제 규모가 일본의 4분의 1 정도이고 1인당 소득도 훨씬 뒤떨어진 대한민국의 성장률이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일까? 그건 우리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선거에서 승리를 위한 싸움에만 몰두하고, 백년대계를 위해 할 일을 하는 지도자들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뭘 좀 해볼려고 하면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방정부까지 나서 사소한 것까지 규제하는 바람에 도무지 투자할 엄두를 못낸다. 아예 외국으로 나가버리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국정의 우선 목표이고, 또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무얼 하겠다는 건지 대부분의 국민은 모르고 있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아베노믹스 '날개'를 펴다
대한민국이 일본처럼 20년 잃어버린 세월을 맞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갈수록 힘을 얻는다. 배는 난파 직전으로 향하고 있는데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이고 일부 노조는 통상임금 확대와 임금 상승 등을 요구하며 줄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으려면 앞으로 2년이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기업의 의욕을 북돋고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고,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먼저 잡아야 한다. 그래야 미래 세대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