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들의 석유거래현황을 주간 단위로 보고하도록 한 정부 방침을 두고 벌어졌던 주유소와 정부 간 힘겨루기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올해 7월부터 주유소 거래내역 보고를 기존 월 단위에서 주 단위로 바꾸라는 정부 방침에 반발, 지난달 중순 동맹휴업 움직임을 보이던 주유소들이 이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한발 물러나 당초 7월부터 실시하려던 것에서 6개월의 추가 계도기간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의 갈등을 일시 봉합했을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여전히 가짜 석유 근절을 위해 주간보고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주유소 업계는 이런 식의 보고가 부당하다는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주유소 거래현황을 매주 정부가 보고받는 것은 타당할까.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가짜석유 근절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
정부는 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종전 한 달 단위로 받던 석유거래현황을 주간 단위로 받겠다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짜 석유 근절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유소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는 가짜 석유 근절을 통해 불법 석유제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이 믿고 찾는 건전한 석유유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며 “그동안 제도시행을 위한 관계 법령 개정 과정에서 면밀한 규제심사 등을 거쳐 주유소 사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책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보고 주기를 단축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강경성 산업부 석유산업과장은 “탱크로리로 가짜 석유 한 대가 유입되면 그것을 파는 데 대략 1주일 정도 소요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1주일 단위로 물량 정보를 보고 받아야 이상 징후를 발견해 현장에 가서 샘플을 확보하고 단속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단속을 벌인다고 해도 가짜 석유, 특히 가짜 경유는 정말 많이 유통되고 있다”며 “주변에 비해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기름값이 싼 주유소는 가짜를 판다고 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주간 단위 거래 보고 요구가 다소 지나칠 수도 있지만 가짜 석유 단속을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구석도 있다는 얘기다.
한 운전자는 “아무래도 가격이 싼 주유소를 찾기 마련인데 가짜 석유가 만연하다면 문제”라며 “ 정부가 철저한 단속을 벌여서 가짜 석유를 근절시킬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 반대 "단속 실효성 없고 지나친 정부 개입"
김문식 주유소협회 회장은 “정부의 과도한 가격경쟁 촉진 정책으로 주유소 매출이익이 1% 이하로 급감했다”며 “정부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같은 업계의 요구는 외면한 채, 대형마트, 농협 등 대기업의 주유소 시장 진출을 독려하는 등 가격 경쟁만 부추기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동위 협회 과장은 “주유소들은 정부에 매달 매입-매출을 보고하고 있는데 다른 업종 중에는 그렇게 하는 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주간 보고로 받는 이유는 거래현황을 정부가 보고 가짜 석유를 잡겠다는 것이지만 물량 이동 흐름을 보고 가짜 석유를 잡는다는 게 어불성설이고 이치에 맞지도 않고 그렇게 하더라도 실효성이 전혀 없는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윤원철 한양대 교수는 “주간 보고는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민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반(反)시장적 제도”라며 “주유소 업계도 알뜰주유소 같은 정책에는 유가 안정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내놓고 반발하지 못했지만 이번 건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건 강원대 교수는 “석유공사를 통해 알뜰주유소를 운영하는 정부가 경쟁 업체인 다른 주유소들의 장부를 낱낱이 보겠다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주유소 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관리원에서 가짜 석유 적발을 위해 시료를 채취하면 분석 결과가 해당 주유소에 도착하기까지 3~4주가 걸린다”며 “가짜석유 탱크로리를 다 파는데 1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주간 단위 보고를 받아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 생각하기
가짜 석유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래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는 철저한 단속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적발된 주유소에는 무거운 과징금 등 엄중한 제재도 가해야 할 것이다. 아마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가짜 석유가 나쁘며 근절돼야 한다는 것과 정부가 업계 장부를 언제나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가짜 석유 단속은 석유관리원에서 해야 하는 것이고 탈세 역시 의심되면 국세청도 조사를 벌여야 한다. 때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업계 장부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매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민간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규제가 될 수 있다.
강·절도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이 가가호호마다 매주 한 번씩 집안을 수색하겠다고 하면 이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주유소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도 아니고 무슨 범죄집단도 아니다. 가짜 석유판매라는 위법 사실이 발생할 소지가 큰 업종이라고 해서 그 업종 종사자 모두에 대해 영업장부를 주기적으로 정부에 제출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마치 범죄발생비율이 높은 지역 거주자 전부에 대해 주기적인 조사를 받으라는 것과 실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차라리 가짜 석유 단속 인력과 장비를 더욱 보강하고 적발 시 처벌을 훨씬 강화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논설위원 kst@hankyung.com
주유소 거래현황을 매주 정부가 보고받는 것은 타당할까.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가짜석유 근절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
정부는 업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종전 한 달 단위로 받던 석유거래현황을 주간 단위로 받겠다는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짜 석유 근절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유소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는 가짜 석유 근절을 통해 불법 석유제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이 믿고 찾는 건전한 석유유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며 “그동안 제도시행을 위한 관계 법령 개정 과정에서 면밀한 규제심사 등을 거쳐 주유소 사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책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보고 주기를 단축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강경성 산업부 석유산업과장은 “탱크로리로 가짜 석유 한 대가 유입되면 그것을 파는 데 대략 1주일 정도 소요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1주일 단위로 물량 정보를 보고 받아야 이상 징후를 발견해 현장에 가서 샘플을 확보하고 단속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단속을 벌인다고 해도 가짜 석유, 특히 가짜 경유는 정말 많이 유통되고 있다”며 “주변에 비해 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기름값이 싼 주유소는 가짜를 판다고 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주간 단위 거래 보고 요구가 다소 지나칠 수도 있지만 가짜 석유 단속을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구석도 있다는 얘기다.
한 운전자는 “아무래도 가격이 싼 주유소를 찾기 마련인데 가짜 석유가 만연하다면 문제”라며 “ 정부가 철저한 단속을 벌여서 가짜 석유를 근절시킬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 반대 "단속 실효성 없고 지나친 정부 개입"
김문식 주유소협회 회장은 “정부의 과도한 가격경쟁 촉진 정책으로 주유소 매출이익이 1% 이하로 급감했다”며 “정부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같은 업계의 요구는 외면한 채, 대형마트, 농협 등 대기업의 주유소 시장 진출을 독려하는 등 가격 경쟁만 부추기는 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동위 협회 과장은 “주유소들은 정부에 매달 매입-매출을 보고하고 있는데 다른 업종 중에는 그렇게 하는 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주간 보고로 받는 이유는 거래현황을 정부가 보고 가짜 석유를 잡겠다는 것이지만 물량 이동 흐름을 보고 가짜 석유를 잡는다는 게 어불성설이고 이치에 맞지도 않고 그렇게 하더라도 실효성이 전혀 없는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윤원철 한양대 교수는 “주간 보고는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민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반(反)시장적 제도”라며 “주유소 업계도 알뜰주유소 같은 정책에는 유가 안정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내놓고 반발하지 못했지만 이번 건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건 강원대 교수는 “석유공사를 통해 알뜰주유소를 운영하는 정부가 경쟁 업체인 다른 주유소들의 장부를 낱낱이 보겠다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주유소 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관리원에서 가짜 석유 적발을 위해 시료를 채취하면 분석 결과가 해당 주유소에 도착하기까지 3~4주가 걸린다”며 “가짜석유 탱크로리를 다 파는데 1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주간 단위 보고를 받아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 생각하기
가짜 석유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래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는 철저한 단속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적발된 주유소에는 무거운 과징금 등 엄중한 제재도 가해야 할 것이다. 아마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가짜 석유가 나쁘며 근절돼야 한다는 것과 정부가 업계 장부를 언제나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가짜 석유 단속은 석유관리원에서 해야 하는 것이고 탈세 역시 의심되면 국세청도 조사를 벌여야 한다. 때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업계 장부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매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민간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규제가 될 수 있다.
강·절도를 예방하기 위해 경찰이 가가호호마다 매주 한 번씩 집안을 수색하겠다고 하면 이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주유소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도 아니고 무슨 범죄집단도 아니다. 가짜 석유판매라는 위법 사실이 발생할 소지가 큰 업종이라고 해서 그 업종 종사자 모두에 대해 영업장부를 주기적으로 정부에 제출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마치 범죄발생비율이 높은 지역 거주자 전부에 대해 주기적인 조사를 받으라는 것과 실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차라리 가짜 석유 단속 인력과 장비를 더욱 보강하고 적발 시 처벌을 훨씬 강화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