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차별에 고전한
고졸 출신의 변호사
사무실 문 열었지만 개점휴업 상태

부동산 등기업무 진출
돈 끌어 모으기 시작

밥그릇 뺏긴 법무사들
사무실 몰려와 항의 시위 벌이는 데…
'변호인'을 통해 본 이익집단과 면허의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빗장풀린 틈새시장서 큰 돈 번 변호사, 진입장벽 높은 곳은 부가가치도 없다
영화 ‘변호인’의 인기몰이엔 이유가 여럿 있다. 배우 송강호의 열연에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스토리가 먹혔다는 분석이다. 실존 정치인의 삶을 모티브로 삼았기에 일어난 논란이 어쩌면 흥행에 가속도를 붙였을 수도 있다. 비록 정치색이 있는 작품이지만 경제학적으로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영화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문가집단 간의 줄다리기, 학력에 의한 차별, 공고한 전문직 시장 진입장벽 등을 아주 세심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시네마노믹스] 빗장풀린 틈새시장서 큰 돈 번 변호사, 진입장벽 높은 곳은 부가가치도 없다
면허의 경제학

“저한테 죽이는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만…. 돈 좀 빌려주이소.” 영화 초반인 1981년 어느 날, 부산의 신참 변호사 송우석은 한 선배 변호사를 찾아간다. 판사로 잠깐 일하다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지만 파리만 날리던 시절이었다. “뭔데?” 시답잖아 하는 선배의 반응에도 우석은 자신만만했다. “법이 바뀌어 이제 변호사도 부동산 등기 업무를 할 수 있다 아입니꺼.”

우석의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법무사에게만 허용됐던 부동산 등기 업무가 변호사에게도 막 열린 상황. 그러나 당시 변호사들은 부동산 등기 업무를 하찮은 일로 치부했다. 하지만 우석은 부동산 등기 시장을 선점하면 떼돈을 벌 수도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더욱이 우석에겐 다른 법무사들에겐 없는 한 가지 경쟁력이 있었다. 변호사 자격증이란 고급 면허였다. 전문직 면허제는 일반인들에게 엄청난 진입장벽이다.

면허 같은 진입장벽이 있으면 공급은 자연히 비탄력적이 된다. 공급의 가격탄력성이란 가격이 변할 때 공급량이 얼마나 민감하게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보통 공급의 탄력성이 1보다 크면 <그래프 1> 재화의 수요가 늘어 가격이 올라도 공급은 더 크게 증가한다. 그러나 <그래프 2>처럼 탄력성이 1보다 작다면? 가격이 상승해도 공급량은 그만큼 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선 학력이나 학벌도 면허와 비슷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우석이 부동산 등기 업무 같은 틈새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던 것도 고학력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면허를 취득하지 못해서였다. 동창 모임에서 우석은 이렇게 답답함을 토로한다. “서울대, 연대 고대! 내 상고 출신은 끼워주지도 안해.”

승승장구의 비밀

이처럼 공급이 비탄력적인 시장은 다른 시장과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그래프 3>에서처럼 기존 공급자가 기회비용 이상으로 얻는 몫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급이 제한돼 있거나 탄력성이 낮은 생산요소에서 발생하는 추가적 소득을 보통 ‘경제적 지대’라고 부른다. 한국사회에서 학력이나 학벌을 통해 얻는 기회비용 이상의 이득이 있다면 그 또한 일종의 지대다.

우석은 부동산 등기 전문 변호사로 지역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렇지만 무작정 우석을 비난할 수는 없다. 사실 혁신과 경쟁을 통해 얻는 경제적 지대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 발전의 견인차일 때가 많다. 그러나 몇 달 후 우석의 지대도 차차 위협받기 시작한다. 주변의 다른 변호사들도 하나둘씩 부동산 등기 업무에 뛰어든 것. 그는 전문 분야를 ‘세금’으로 바꾼다. “내 또 상고 출신 아이가. 돈 계산엔 빠삭하다.” ‘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립니다’란 문구가 박힌 명함을 들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덕에 우석은 세무변호사로도 이름을 날리게 된다. 대형 건설회사의 세무업무를 맡게 되면서 우석이 누릴 수 있는 지대의 규모는 더 커진다.

우석의 성공은 그의 단골 국밥집 주인인 순례(김영애 분)가 찾아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전까지 계속된다. 순례는 우석이 배곯던 시절,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내줬던 은인 같은 존재다. 순례는 간절한 표정으로 우석의 손을 꽉 잡는다. “니 변호사 맞제? 변호사님아 내 쫌 도와도. 죄없는 우리 아들이 경찰에 잡혀갔다.”

법무사들은 왜 시위를 했을까

다만 비탄력적 시장의 공급자들이 과도한 지대를 추구하다보면 사회 전체의 후생엔 악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게 공급을 제한하기 위해 정부 등에 로비하는 행위다. 이는 정상적인 이윤추구 행위(profit seeking)와는 다르다. 이윤추구 행위가 합리적인 경제활동으로 새로운 부를 창조해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면, 지대추구 행위(rent seeking)는 이미 형성된 부를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한 싸움에 노동력을 투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산이 원칙적으로 증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독점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그가 부동산 등기 업무를 시작하자 법무사들이 모여 “송우석은 물러가라”는 시위를 벌인 것도 이익단체의 지대추구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시장참여자를 밀어내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런 전문성을 갖춘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를 정부나 시장참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일도 생긴다. 이를 ‘포획이론(capture theory)’이라고 한다. 이 경우 소수의 전문집단에 이익이 집중돼 전체 경제엔 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된다.

정치적 논란으로 더 화제

우석이 달라진 건 순례의 간절한 부탁으로 아들 진우가 수감돼 있는 구치소에 들르면서부터다. 그는 그곳에서 심한 고문을 당해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진우를 본다. 이날 우석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의 상식이 무너짐을 느낀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할게요. 제가 변호인 하겠습니더.” 진우 사건을 맡게 되면서 우석은 그동안 누려왔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는다.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제시했던 건설업체는 “우리는 만난 적이 없는 걸로 해달라”며 돌아선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진우는 무죄 맞잖아요. 무죄면은 무죄 판결을 받아야지요. 그게 내 일입니다.” 상식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말대로 ‘속물적 변호사’가 미처 자신이 알지 못하던 또 다른 현실에 눈을 떠가는 감동적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관객 1000만명을 훌쩍 넘어서면서 정치적 논란 또한 적지 않다. 기자가 이 글 속에서 군사독재 고문 등 영화 속의 다른 배경들을 굳이 외면한 것은 이 같은 정치적 판단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이익단체를 둘러싼 시장 진입과 경쟁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시네마노믹스’의 연재 취지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