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란·이라크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 미국의 정치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라크 내전 사태에 관해 이같이 평가했다. 34년 전 수니·시아파 종파 간 분쟁으로 8년간의 전쟁을 치렀던 양국이 다시 한번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슬람 종파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동국가의 관계가 변하고 있어 중동정세의 ‘새판짜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동 국가들의 합종연횡
“모든 나라가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 이란은 미국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14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1979년 추방된 무하마드 팔레비 전 국왕의 망명을 받아들인 미국을 ‘대악마(great satan)’라고 불러왔던 이란이 35년 숙적과도 손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란의 요청에 화답하듯 미 국방부도 이날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함을 이라크 인근 걸프만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내전을 계기로 기존의 동맹 관계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이란은 적대국이지만 이라크 사태에 있어 ISIS 세력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수니파의 공격을 막는 일을 미국과의 적대 관계보다 우선시하겠다는 것은 632년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사후 주도권을 놓고 대립해온 수니·시아파 간 종파 분쟁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담 후세인 통치시절 수니파 정부였던 이라크는 미국의 점령 이후 현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시아파 정부로 바뀐 상태다. 미국과 이란은 그러나 시리아 내전에는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이 같은 시아파인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미는 반면 미국은 시리아 반군을 돕고 있다.
오랜 동맹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도 복잡해졌다. 시리아 정부에 대한 반감은 동일하지만,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는 미국이 이라크에 시아파 정부를 세울 때부터 불만이 높아진 상태다. 사우디는 또 시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ISIS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ISIS는 시리아와 이라크에 수니 근본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며 사우디와 같은 왕조국가를 전복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동 전운 고조…주도권 경쟁 본격화
이라크 내전을 둘러싼 종파 분쟁의 성격은 한층 짙어지고 있다. ABC 방송도 “수백명의 이라크 시아파 청년들이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열정으로 바그다드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란도 이라크 사태에 본격적으로 가세하면서 중동 일대의 전운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이 이라크에 2000명을 파병했다”고 보도했다. 1980년 국경 문제로 8년간 전쟁을 벌인 양국이 34년 만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 이번 종교 분쟁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사우디와 이란 간 중동의 패권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푸아드 아자미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이란은 시리아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뜻하는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맹주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의 공조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노림수를 꿰뚫고 있는 미국이 이란과 적극적인 대이라크 공조에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미 국무부도 “워싱턴이 테헤란과 이라크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에너지 패권에도 영향 미칠 듯
이라크 내전이 안갯속으로 빠져들면서 원유 가격은 치솟았다. 이라크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가운데 생산량으로 두 번째를 차지하는 산유국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하루 330만배럴을 생산하는 이라크는 내년에는 440만배럴, 2020년에는 600만배럴까지 늘릴 전망이다. 하지만 이라크 내전 이후 쿠르드족이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르를 점령한 데다 ISIS가 남부 유전마저 장악할 경우 원유 수출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라크 내전이 격화된 후 4% 이상 급등했다. 석유서비스 회사인 지중해 인터내셔널의 드라간 부코빅 대표는 “이라크 정부가 붕괴할 경우 원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ISIS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서 쫓겨난 기업형 무장단체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을 장악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는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에서 쫓겨난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다. 이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를 규합해 시리아와 이라크 접경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ISIS의 전신은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미군이 철수한 2011년 말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 이들은 2012년 이라크 정부와 미군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 전역에서 각종 테러를 주도했다. ISIS는 잔인한 공격 수법으로 악명이 높다. 자살 폭탄테러를 일삼고 지난 14일 점령지역에 있는 이라크 정부군 1700명을 처형하기도 했다. 조직의 전체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유입된 병력만 1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2년부터 매년 테러 및 암살 횟수 등을 공개하는 연례 성과보고서를 발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등 조직적인 기업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ISIS는 한 해 동안 이라크에서 1000건의 암살, 4000건의 사제 폭발물 설치 등 총 1만건의 테러를 벌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ISIS가 오합지졸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수니파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지닌 체계적인 군 조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ISIS는 트위터 등을 활용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세계 각지에 전파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도 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들이 건설하려는 국가의 모습을 알려왔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의 에런 제린 연구원은 “ISIS는 대다수의 미국 회사보다 더 세련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순신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soonsin2@hankyung.com
중동 국가들의 합종연횡
“모든 나라가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 이란은 미국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14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1979년 추방된 무하마드 팔레비 전 국왕의 망명을 받아들인 미국을 ‘대악마(great satan)’라고 불러왔던 이란이 35년 숙적과도 손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란의 요청에 화답하듯 미 국방부도 이날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함을 이라크 인근 걸프만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내전을 계기로 기존의 동맹 관계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이란은 적대국이지만 이라크 사태에 있어 ISIS 세력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이 수니파의 공격을 막는 일을 미국과의 적대 관계보다 우선시하겠다는 것은 632년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사후 주도권을 놓고 대립해온 수니·시아파 간 종파 분쟁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담 후세인 통치시절 수니파 정부였던 이라크는 미국의 점령 이후 현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시아파 정부로 바뀐 상태다. 미국과 이란은 그러나 시리아 내전에는 서로 다른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이 같은 시아파인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미는 반면 미국은 시리아 반군을 돕고 있다.
오랜 동맹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도 복잡해졌다. 시리아 정부에 대한 반감은 동일하지만,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는 미국이 이라크에 시아파 정부를 세울 때부터 불만이 높아진 상태다. 사우디는 또 시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ISIS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ISIS는 시리아와 이라크에 수니 근본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며 사우디와 같은 왕조국가를 전복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동 전운 고조…주도권 경쟁 본격화
이라크 내전을 둘러싼 종파 분쟁의 성격은 한층 짙어지고 있다. ABC 방송도 “수백명의 이라크 시아파 청년들이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열정으로 바그다드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란도 이라크 사태에 본격적으로 가세하면서 중동 일대의 전운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이 이라크에 2000명을 파병했다”고 보도했다. 1980년 국경 문제로 8년간 전쟁을 벌인 양국이 34년 만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 이번 종교 분쟁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사우디와 이란 간 중동의 패권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푸아드 아자미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이란은 시리아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뜻하는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맹주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의 공조를 통해 가시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노림수를 꿰뚫고 있는 미국이 이란과 적극적인 대이라크 공조에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미 국무부도 “워싱턴이 테헤란과 이라크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에너지 패권에도 영향 미칠 듯
이라크 내전이 안갯속으로 빠져들면서 원유 가격은 치솟았다. 이라크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가운데 생산량으로 두 번째를 차지하는 산유국이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하루 330만배럴을 생산하는 이라크는 내년에는 440만배럴, 2020년에는 600만배럴까지 늘릴 전망이다. 하지만 이라크 내전 이후 쿠르드족이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르를 점령한 데다 ISIS가 남부 유전마저 장악할 경우 원유 수출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이라크 내전이 격화된 후 4% 이상 급등했다. 석유서비스 회사인 지중해 인터내셔널의 드라간 부코빅 대표는 “이라크 정부가 붕괴할 경우 원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ISIS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서 쫓겨난 기업형 무장단체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모술을 장악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는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에서 쫓겨난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다. 이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를 규합해 시리아와 이라크 접경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ISIS의 전신은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로 미군이 철수한 2011년 말 이후 급격히 성장했다. 이들은 2012년 이라크 정부와 미군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이라크 전역에서 각종 테러를 주도했다. ISIS는 잔인한 공격 수법으로 악명이 높다. 자살 폭탄테러를 일삼고 지난 14일 점령지역에 있는 이라크 정부군 1700명을 처형하기도 했다. 조직의 전체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유입된 병력만 1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2년부터 매년 테러 및 암살 횟수 등을 공개하는 연례 성과보고서를 발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등 조직적인 기업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ISIS는 한 해 동안 이라크에서 1000건의 암살, 4000건의 사제 폭발물 설치 등 총 1만건의 테러를 벌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ISIS가 오합지졸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수니파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지닌 체계적인 군 조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ISIS는 트위터 등을 활용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세계 각지에 전파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도 이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들이 건설하려는 국가의 모습을 알려왔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의 에런 제린 연구원은 “ISIS는 대다수의 미국 회사보다 더 세련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순신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