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이사회가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갈등 봉합에 실패했다. 이사회는 다음주 다시 회의를 열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KB금융지주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외이사와 국민은행 감사 간 견해차가 여전해 수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가 끝날 때까지 갈등이 봉합되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내놓고 있다.

사외이사, 감사와 평행선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이사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다음주 감사위원회와 이사회를 열어 다시 논의키로 했다”고 말했다. 다음 이사회는 오는 30일 열릴 예정이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갈등 봉합 방안을 논의하려 했으나, 이사회에 앞서 열린 감사위원회에서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가 제기한 전산교체 과정 의혹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국민은행 감사위원회는 정 감사, 오갑수 사외이사(전 금감원 부원장), 강희복 사외이사(전 한국조폐공사 사장), 송명섭 사외이사(중앙대 교양대 교수) 등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행장은 “감사위원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해 이사회에서 더 논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감사위원들은 이제 와서 정 감사의 감사보고를 받는 것은 자신들의 결정을 뒤집는 것이어서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위원들은 지난 19일 정 감사의 감사보고를 받지 않았다. 이들은 특히 정 감사가 19일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 금감원이 특검을 하고 있는 마당에 합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감사위원들이 합의했다고 해서 금감원이 특검을 중단하지 않는다”며 “합의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다음주 이사회가 열리더라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감원, 경영진 계좌추적

금감원의 검사 강도는 강화되고 있다. 금감원은 조만간 KB금융과 국민은행 일부 경영진에 대한 계좌추적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이나 국민은행 임직원이 전산교체 결정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금감원은 이번주 한 주로 예정됐던 특검 기간을 이달 말까지 연장했다.

한편 국민은행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 행장의 사퇴 표명을 촉구했다. 노조는 “이번 갈등의 뿌리에는 낙하산 인사가 초래한 KB금융의 허약한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며 “곪을 대로 곪은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은행의 갈등 해결이 늦어지면서 전산시스템 교체 계획도 차질이 예상된다. 21일 전산교체 사업 입찰 제안서를 마감한 결과 SK C&C만 단독 입찰했다.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아 오는 28일까지 추가 응찰을 받기로 했지만 참여할 회사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일규/장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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