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노믹스] 실력+매스컴= 슈퍼스타…실력×관객수×언론 노출빈도=몸값
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미스터 고'를 통해 본 슈퍼스타 경제학

“원하는 돈이 10억이라고? 거기에 0 하나 더 붙여!”
“100억이요?”
“거기에 0 하나 더! 그게 우리 목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홀로 전통의 룡파 서커스단을 이끄는 15세 소녀 웨이웨이. 야구광이었던 할아버지 덕에 서커스보다 야구를 더 잘하는 45세 고릴라 미스터 고는 웨이웨이의 유일한 가족이다. 할아버지의 도박 빚 10억원을 그대로 물려받은 웨이웨이. 사채업자들이 ‘돈을 갚지 않으면 미스터 고를 내놓으라’고 협박하자 웨이웨이는 큰돈을 벌어주겠다는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분)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국에 가기로 결심한다. 돈을 벌어 43명의 고아 단원들과 다시 서커스를 할 생각밖에 없는 웨이웨이에게 성충수는 “더 큰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슈퍼스타의 탄생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미스터 고가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잠실 구장 타석에 들어서자 상대팀 NC 다이노스 감독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해설자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해프닝이죠. 늦었지만 팬들을 위한 이벤트 아니겠습니까. 저 고릴라가 여기가 동물원인지 야구장인지 알기나 하겠어요?”

하지만 미스터 고는 모두의 걱정을 비웃듯 시속 158㎞짜리 강속구를 받아친다. 새까맣게 솟아오른 공은 그대로 전광판을 때린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스터 고는 여유 있게 1, 2, 3루를 거쳐 홈으로 돌아온다. 이 놀라운 타격 이후 대한민국은 미스터 고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미스터 고는 타석에 서는 족족 홈런을 터뜨리고, 이 덕에 시즌 초반 꼴찌였던 두산은 본격적으로 선두권 다툼에 합류하게 된다. 스포츠 표지 잡지엔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은 고릴라가 등장하고, 야구장 관중은 ‘미스터 고’를 연호한다. ‘야구 슈퍼스타’의 탄생인 것이다.

슈퍼스타의 경제학

중국 시골 도시의 서커스단을 전전하던 미스터 고는 어떻게 슈퍼스타가 됐을까? 하루아침에 처지가 달라진 이 고릴라의 상황은 ‘시장의 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중국엔 프로야구 시장이 없지만 한국에서 프로야구는 3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스포츠다. 본인의 재능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미스터 고는 순식간에 ‘스타’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80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K리그로 오면 연봉이 최소 4분의 1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K리그에서 뛰든,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든 박 선수의 재능엔 변함이 없지만 어디에서 활약하느냐에 따라 대접은 달라진다. 요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류현진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국제 노동 이동


이런 ‘슈퍼스타’의 탄생은 국내시장에서도 나타나긴 하지만 노동력의 국가 간 이동이 가능할 때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는 ‘노동력의 세계화’라는 측면과 깊게 관계돼 있다. 미스터 고가 한국으로 넘어오지 못했다면 사채업자 톈진 파이낸스에 넘겨져 평생 중국 각지를 떠돌며 야구 서커스를 하다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노동 이동의 원인은 대부분 ‘더 높은 실질임금’에 의해 나타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더 높은 실질임금을 획득하기 위한 경제적 요인에 의해 노동 이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많은 노동자들이 이주의 기회를 얻고 싶어하는 이유다.

[시네마노믹스] 실력+매스컴= 슈퍼스타…실력×관객수×언론 노출빈도=몸값
<그림 1>
에서 영국 경제학자 존 힉스(J Hicks)가 주장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평생에 걸친 임금격차에서 이주 비용을 뺀 순 이득이 0보다 클 경우 이주하게 된다. 비용에는 이사 비용, 심리적 비용, 생활비 증가분 등이 모두 포함된다.

천정부지로 뛰는 몸값

미스터 고의 타격에 겁먹은 상대 선수들은 ‘꼼수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한다. 공을 건네받은 지 12초 이내에 공을 던지지 않으면 볼이 선언되는 ‘12초 룰’을 악용하기도 하고 볼링처럼 공을 굴리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미스터 고는 얼굴로 던져대는 공까지 홈런으로 만들며 시즌 중반 19호 홈런 기록을 세운다.

미스터 고가 유명해질수록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NC 다이노스와 준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리던 날, 일본 명문 야구팀인 주니치 드래건스의 구단주가 직접 방한해 미스터 고를 데려가고 싶다며 이적료 20억엔(약 300억원)에 1년 계약금 10억엔(약 150억원)을 제안한다. 주니치 드래건스 창단 이래 가장 파격적인 가격이다. 이에 질세라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도 입국, “주니치가 제시한 것보다 무조건 두 배를 더 주겠으니 내일 당장 계약하자”고 설득한다.

[시네마노믹스] 실력+매스컴= 슈퍼스타…실력×관객수×언론 노출빈도=몸값
미국 시카고대 교수이자 노동 경제학자인 셔윈 로젠은 이 같은 ‘슈퍼스타 탄생’ 현상을 재능의 제한된 공급과 과잉수요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했다. 그는 “1등은 엄청난 보상을 받는 반면 차점자는 훨씬 적은 보상을 받으며 이런 현상은 특히 연예나 스포츠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으나 특별하거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게 마련이다. 희소한 슈퍼스타는 공급이 매우 제한돼 있지만 수요는 많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프1>에서 볼 수 있듯 공급이 제한적(비탄력적)으로 변화하면 수요가 증가할수록(D1→D2→D3) 시장 가격(M1→M2→M3)도 평균보다 큰 폭으로 높아지게 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수록 몸값은 높아지는 셈이다. 영화를 제작할 때 연기력이 뛰어난 조연급 배우 한 트럭을 데려와도 하정우 같은 스타의 ‘티켓파워’를 대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몸값과 실력은 별개

로젠 교수는 ‘실력’과 ‘몸값’이 늘 완벽한 상관관계를 이루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돌그룹 소녀시대는 외부 행사에 초대됐을 때 두세 곡을 부르고 5000만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녀시대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는 수많은 여가수는 어느 행사에서도 그 정도의 가격은 받지 못한다. 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화 4번 타자 김태균은 연봉 15억원을 받았다. 김태균보다 타율은 조금 떨어지지만 한화에서 김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최진행은 1억원, 김태완은 1억4000만원을 받았다.

그들의 몸값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는 ‘실력’이 아니라 ‘관중’이며, 그 소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언론이다. 미스터 고가 한국에 오자마자 홈런 한 방으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도 매스컴의 위력 때문이다. 슈퍼스타의 몸값에는 실력 외에 관중 동원능력과 매스컴 노출 빈도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말미, 미스터 고는 NC 다이노스와의 5차전 경기를 승리로 이끌고 두산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가 “5차전 경기에서 이겨라”라며 준 백지수표 덕분에 웨이웨이와 미스터 고는 10억원의 빚을 다 갚고 중국에 금의환향한다. 웨이웨이와 미스터 고는 중국에서 기다리던 42명의 고아 단원과 함께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영화 초반과 극명하게 다르다. 한국에서 ‘야구 존재감’을 한껏 떨치고 온 미스터 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웨이웨이, 사채업자의 타박에도 묵묵히 기다려 준 단원들. 그들에게 서로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슈퍼스타’다.

심성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