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미스트-이성적 판단의 오류
[시네마노믹스] 경제적 합리성의 한계, 안개 속 최선이 안개 밖 최악으로
“탕, 탕, 탕, 탕.”

1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 왜건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안개가 소리마저 삼켜버린 듯한 지독한 정적을 깨고 네 번의 총성이 울렸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시간을 잠시 앞으로 돌려보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는 이세계(異世界)에서 온 괴물로 가득 차 있었다. 설상가상 자동차 연료까지 떨어졌다. 이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제로. 다섯 명의 사람들은 괴물의 먹이가 되기보다 인간답게 죽자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권총 실탄은 4발뿐. 남자는 먼저 자신의 아들을 포함해 다른 4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차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바깥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도시 전체를 뒤덮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것. 숨어 있던 생존자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화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영화 ‘미스트’(2007년)의 마지막 장면이다. 원작은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안개’로,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을 만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영상으로 옮겼다. 대부분의 장면이 원작과 동일하지만 결말만큼은 새롭게 만들어냈다. 원작은 주인공이 주유소 건물 안에서 안개로 뒤덮인 바깥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한 수기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열린 결말’이었다. 하지만 다라본트 감독은 이를 살짝 비틀어 지금까지 나온 어떤 영화보다 ‘찝찝한 결말’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어쨌든 주인공인 데이비드 드레이턴(토머스 제인 분)과 4명의 일행은 왜 마지막에 이처럼 극단적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까. 드레이턴을 비롯한 이들은 영화 내내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괴물들이 주는 공포감과 안개로 제한된 정보 탓에 이들의 합리적 행동은 되레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란 신탁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운명의 굴레를 짊어지는 오이디푸스가 연상된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자기실현적 기대(Self-fulfilling Expectation)’라고 설명한다. 예상이 경제 주체들의 행동 변화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예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결말을 피하기 위해 주어진 상황과 정보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만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란 노래 가사가 이 같은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자기실현적 기대의 대표적인 예는 ‘뱅크런(Bank-run)’에 따른 은행 유동성 위기다. 가령 A은행에 대한 좋지 않은, 하지만 매우 사소한 소문이 퍼졌다고 하자. 소문이 사실이더라도 은행의 존폐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예금자들이 불안감에 하나둘씩 돈을 찾아가기 시작한다면 은행의 재무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합리적 행동파 vs 광신도

[시네마노믹스] 경제적 합리성의 한계, 안개 속 최선이 안개 밖 최악으로
다시 ‘미스트’로 돌아가 보자. 영화는 폭풍이 지나간 어느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드레이턴은 주택 수리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사러 아들 빌리와 함께 시내 마트를 찾는다. 갑자기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의 안개가 마을을 뒤덮는다. 처음에 사람들은 마트 안에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노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마트 안으로 뛰어들면서 “안개 속에 무언가 있다(Something in the Mist)”고 말하자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드레이턴을 중심으로 하는 합리적 행동파와 카모디 부인(마샤 가이 하든 분)을 따르는 광신도 패거리다. 카모디 부인은 종교에 심취한 광신도로 안개와 괴물이 인간을 벌하기 위한 신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추종자가 늘어난다.

이 와중에 마트 안의 사람들은 괴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만 대부분은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킨다. 촉수 괴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료 포대를 둑처럼 쌓고 밤새 불침번을 서지만 거대 곤충과 괴조들이 오히려 불빛을 보고 날아들어 유리창은 허무하게 깨진다. 불로 공격하기 위해 준비해둔 기름 때문에 마트 안에 불이 나기도 하고 대걸레에 불을 붙여 괴조를 공격하려다 화상을 입는 사람도 생긴다.

안개 속에 갇힌 인간의 합리성

반면 카모디 부인은 거대 곤충이 몸에 달라붙었을 때 ‘이렇게 죽는 것도 신의 뜻’이라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데 곤충의 습격에서 벗어나는 기적(?)을 보여준다. 감독은 인간의 합리적 행동이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끊임없이 관객에게 일깨운다.

카모디 부인의 위세는 날로 강해진다. 반면 초반부터 카모디 부인과 대립각을 세웠던 드레이턴 일행의 입지는 줄어든다. 그 와중에 마트에 갇혀 있던 3명의 군인 중 2명이 죄책감에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살아남은 군인으로부터 이번 안개가 군의 무기실험 오류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란 사실을 듣게 된다. 괴물들도 그 문을 통해 오게 된 것이다. 카모디 부인은 사람들을 선동해 군인을 산 제물로 괴물들에게 바치기에 이른다. 자신의 아들이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한 드레이턴은 마트 가까운 곳에 주차한 자신의 차를 타고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 드레이턴 부자를 포함한 총 5명이 함께 길을 떠난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보다 못했다. 집으로 가는 모든 도로는 끊어져 있었다. 결국 기름이 떨어지고 네 발의 총알만을 가진 일행은 최후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과연 여러분의 선택은…


경제학의 기본적인 가정은 합리적 인간이다. 주어진 정보와 상황 아래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 선택을 통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일관된 행위와 체계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이다. 하지만 언제나 최선의 합리성을 추구했던 드레이턴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트럭을 타고 가는 생존자 가운데 유독 드레이턴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한 여성이 나온다. 그는 마트에 고립됐던 사람 중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간 사람이다. 집에 남겨둔 아이를 구해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괴물의 실체를 본 사람들은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정의감 가득한 드레이턴조차 이 여성을 외면했다. 결국 여성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독자 여러분이 그 여성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의 안전을 생각해 뛰쳐나갈 수도 있고, 일단은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 아래 인간의 기대형성 방식과 판단에 대한 분석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은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 인간과 괴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인간이 수익과 손해에 각각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수익이 날 경우에는 위험 기피적이 되고, 손해가 날 때는 위험 선호적이 된다는 것이다. 판단과 결정을 내릴 때 항상 이성적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없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이승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