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원화를 활용한 통화스와프를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 그동안 외환위기에 대비해 미국·일본과 달러화를 매개로 비상자금을 주고받는 통화스와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원화를 활용한 통화스와프는 이례적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달 들어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말레이시아와 연쇄적으로 약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 10월22일 한국경제신문
# 통화스와프란?
통화스와프(Currency Swap·CRS)는 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swap)한다는 뜻이다. 원래는 금융시장에서 위험 회피(리스크 헤지)나 유리한 조건으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래되는 파생상품의 하나지만 국가 간 통화의 맞교환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선물, 옵션 등과 함께 대표적인 파생상품으로 꼽히는 스와프 거래는 미래의 특정한 날짜나 기간을 정해 어떤 상품이나 금융자산을 상대방 상품(자산)과 일정 비율로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교환 상품(자산)에는 통화와 금리가 있다. 통화를 서로 맞바꾸면 통화스와프, 금리를 서로 맞바꾸면 금리스와프(Interest Rate Swap·IRS)다. 따라서 통화스와프는 스와프 계약 형식의 ‘통화 간 교환(currency exchange)’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거래 당사자끼리 계약기간 중 일정 통화를 다른 통화로 바꿔 사용한 뒤 만기에 원래의 통화로 다시 바꾸는 거래다. 금융시장에서 이런 거래가 필요한 이유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고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필요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 A는 독일에 현지 투자를 원한다. 또 독일 기업 B는 미 달러화가 필요하다. A사는 미국 금융시장에서 만기 10년짜리 100만달러 채권을 연 7.5%의 금리로, 해외시장(유로본드시장)에선 역시 만기 10년짜리 100만유로 채권을 6.5%에 발행 가능하다. 독일 기업 B는 유로 본드시장에서 만기 10년짜리 100만유로 채권을 연 6.0%에, 미국시장에서 100만달러를 8.0%에 발행할 수 있다.
이들 두 기업을 비교하면 A사는 미국시장에서 독일 B사보다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또 B사는 독일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유리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선 A사가 직접 유로본드 시장에서 유로화 채권을 발행하거나 B사가 미국시장에서 달러화 채권을 발행하기보다 A는 미국서 달러화 채권, B는 유로본드 시장서 유로화 채권을 각각 발행해 달러와 유로를 조달한 다음 서로 통화를 교환하면 유리하다. A는 연 0.5%포인트, B도 0.5%포인트 이자를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환한 통화는 만기 때 다시 맞바꾸면 계약이 끝난다. 이처럼 통화스와프 계약을 활용하면 이자 비용을 줄이고, 유로나 달러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통화스와프 계약의 매력이다. # 외환위기 방지가 목적
국가 간 통화스와프는 기업이나 개인 간 통화스와프와는 목적이 다르다. 기업의 통화스와프가 비용 절감이나 환율변동 리스크 헤지가 목적이라면 나라 사이의 통화스와프는 대부분 외환유동성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되돌아보자. 외환위기는 다른 나라에서 상품이나 원자재를 사오면서 지급할 돈이 없어서 생긴 것이다. 원유나 천연가스 등을 수출하는 외국 기업들은 원화를 받지 않는다. 국제 거래의 결제수단으로 활용되는 달러나 유로, 엔화 등만을 받고 원유 등을 내준다. 원화가 국제무역의 결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나 유로 등 주요 외환이 없으면 나라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 이게 바로 1997년 외환위기다.
그런데 만약 나라 간에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돼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원화를 맡기고 그에 해당하는 규모의 상대방 나라 화폐를 빌려 국제 결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 간 통화스와프 계약은 한도, 환율, 기간 등을 미리 정하고 맺어진다. 예를 들어 한·미 간에 계약을 체결할 경우 ‘1000억달러를 1달러=1100원의 조건으로 2014년 말까지’라는 식이다. 이런 계약이 맺어지면 한국은 2014년 말까진 언제라도 필요할 때 1달러=1100원의 조건으로 원화를 미국 중앙은행(Fed)에 맡기고 1000억달러 이내에서 달러화를 가져와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한국이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달러화가 모자라게 되면 한국 정부는 Fed에 원화 자금을 맡기고 최대 1000억달러를 빌려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필요할 때 원화를 맡기고 달러화 자금을 미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올 수 있어 외환위기를 당할 가능성이 한층 줄어든다.
하지만 Fed가 모든 나라와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는 건 아니다. Fed는 과거에 유럽 등 주요 선진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멕시코 등 일부 신흥국에도 이를 허용했다. 2008년 10월 한·미 간에 맺어진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정은 이미 종료됐다. 일본과는 통화스와프 규모가 한때 700억달러에 달했으나 지금은 미 달러화와 원·엔 통화스와프를 합쳐 100억달러 규모로 축소됐다.
최근 맺어진 한국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달러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원화와 현지 통화를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나라와 달러화 대신 원화나 현지 통화를 사용해 결제한다는 뜻으로 역시 외환위기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 원화 사용이 늘어나는 원화의 국제화에도 큰 발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있다.
# 원화 국제화에 나선 정부
이달 들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은 나라는 인도네시아, UAE, 말레이시아 등이다. 나라별 규모는 인도네시아 10조7000억원(115조루피아, 약 100억달러), UAE 5조8000억원(200억디르함, 54억달러), 말레이시아 5조원(150억링깃, 47억달러)에 달한다. 만기는 모두 3년이다.
이들 국가와의 통화스와프는 달러화 필요 없이 서로 자국 통화로 교환하는 LC(local currency) 통화스와프 방식이다. LC 통화스와프는 한국-인도네시아 간에는 원화-루피아화를 맞바꾸고, 한국-말레이시아 간에는 원화-링깃화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UAE와는 원화-디르함화와 맞바꾼다. 이들 나라는 모두 한국에 원유와 천연가스, 고무 등 원자재를 수출하는 나라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자국 통화 간 교환이어서 달러화 유동성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 예를 들어 UAE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적어도 200억디르함(54억달러)까진 원화로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두 나라 모두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고, 달러화로 결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외환위기 방지의 안전판을 추가하는 것이다.
은성수 기재부 국제금융관리관은 “이제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데다 동남아 국가와는 무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직접 자국 통화로 스와프 협정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과도 560억달러 규모의 원·위안 통화스와프도 맺어두고 있으며 호주와도 통화스와프 계약을 추진 중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한국이 이달에만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며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통화스와프 계약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조금씩 퇴보해나가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세계 상거래와 금융거래 결제수단인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통화스와프(Currency Swap·CRS)는 서로 다른 통화를 교환(swap)한다는 뜻이다. 원래는 금융시장에서 위험 회피(리스크 헤지)나 유리한 조건으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래되는 파생상품의 하나지만 국가 간 통화의 맞교환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선물, 옵션 등과 함께 대표적인 파생상품으로 꼽히는 스와프 거래는 미래의 특정한 날짜나 기간을 정해 어떤 상품이나 금융자산을 상대방 상품(자산)과 일정 비율로 바꾸는 것이다. 대표적인 교환 상품(자산)에는 통화와 금리가 있다. 통화를 서로 맞바꾸면 통화스와프, 금리를 서로 맞바꾸면 금리스와프(Interest Rate Swap·IRS)다. 따라서 통화스와프는 스와프 계약 형식의 ‘통화 간 교환(currency exchange)’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거래 당사자끼리 계약기간 중 일정 통화를 다른 통화로 바꿔 사용한 뒤 만기에 원래의 통화로 다시 바꾸는 거래다. 금융시장에서 이런 거래가 필요한 이유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고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필요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 A는 독일에 현지 투자를 원한다. 또 독일 기업 B는 미 달러화가 필요하다. A사는 미국 금융시장에서 만기 10년짜리 100만달러 채권을 연 7.5%의 금리로, 해외시장(유로본드시장)에선 역시 만기 10년짜리 100만유로 채권을 6.5%에 발행 가능하다. 독일 기업 B는 유로 본드시장에서 만기 10년짜리 100만유로 채권을 연 6.0%에, 미국시장에서 100만달러를 8.0%에 발행할 수 있다.
이들 두 기업을 비교하면 A사는 미국시장에서 독일 B사보다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또 B사는 독일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유리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선 A사가 직접 유로본드 시장에서 유로화 채권을 발행하거나 B사가 미국시장에서 달러화 채권을 발행하기보다 A는 미국서 달러화 채권, B는 유로본드 시장서 유로화 채권을 각각 발행해 달러와 유로를 조달한 다음 서로 통화를 교환하면 유리하다. A는 연 0.5%포인트, B도 0.5%포인트 이자를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환한 통화는 만기 때 다시 맞바꾸면 계약이 끝난다. 이처럼 통화스와프 계약을 활용하면 이자 비용을 줄이고, 유로나 달러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통화스와프 계약의 매력이다. # 외환위기 방지가 목적
국가 간 통화스와프는 기업이나 개인 간 통화스와프와는 목적이 다르다. 기업의 통화스와프가 비용 절감이나 환율변동 리스크 헤지가 목적이라면 나라 사이의 통화스와프는 대부분 외환유동성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되돌아보자. 외환위기는 다른 나라에서 상품이나 원자재를 사오면서 지급할 돈이 없어서 생긴 것이다. 원유나 천연가스 등을 수출하는 외국 기업들은 원화를 받지 않는다. 국제 거래의 결제수단으로 활용되는 달러나 유로, 엔화 등만을 받고 원유 등을 내준다. 원화가 국제무역의 결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러나 유로 등 주요 외환이 없으면 나라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 이게 바로 1997년 외환위기다.
그런데 만약 나라 간에 통화스와프 계약이 체결돼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원화를 맡기고 그에 해당하는 규모의 상대방 나라 화폐를 빌려 국제 결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 간 통화스와프 계약은 한도, 환율, 기간 등을 미리 정하고 맺어진다. 예를 들어 한·미 간에 계약을 체결할 경우 ‘1000억달러를 1달러=1100원의 조건으로 2014년 말까지’라는 식이다. 이런 계약이 맺어지면 한국은 2014년 말까진 언제라도 필요할 때 1달러=1100원의 조건으로 원화를 미국 중앙은행(Fed)에 맡기고 1000억달러 이내에서 달러화를 가져와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한국이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달러화가 모자라게 되면 한국 정부는 Fed에 원화 자금을 맡기고 최대 1000억달러를 빌려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필요할 때 원화를 맡기고 달러화 자금을 미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올 수 있어 외환위기를 당할 가능성이 한층 줄어든다.
하지만 Fed가 모든 나라와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는 건 아니다. Fed는 과거에 유럽 등 주요 선진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멕시코 등 일부 신흥국에도 이를 허용했다. 2008년 10월 한·미 간에 맺어진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정은 이미 종료됐다. 일본과는 통화스와프 규모가 한때 700억달러에 달했으나 지금은 미 달러화와 원·엔 통화스와프를 합쳐 100억달러 규모로 축소됐다.
최근 맺어진 한국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달러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원화와 현지 통화를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나라와 달러화 대신 원화나 현지 통화를 사용해 결제한다는 뜻으로 역시 외환위기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 원화 사용이 늘어나는 원화의 국제화에도 큰 발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있다.
# 원화 국제화에 나선 정부
이달 들어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은 나라는 인도네시아, UAE, 말레이시아 등이다. 나라별 규모는 인도네시아 10조7000억원(115조루피아, 약 100억달러), UAE 5조8000억원(200억디르함, 54억달러), 말레이시아 5조원(150억링깃, 47억달러)에 달한다. 만기는 모두 3년이다.
이들 국가와의 통화스와프는 달러화 필요 없이 서로 자국 통화로 교환하는 LC(local currency) 통화스와프 방식이다. LC 통화스와프는 한국-인도네시아 간에는 원화-루피아화를 맞바꾸고, 한국-말레이시아 간에는 원화-링깃화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UAE와는 원화-디르함화와 맞바꾼다. 이들 나라는 모두 한국에 원유와 천연가스, 고무 등 원자재를 수출하는 나라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자국 통화 간 교환이어서 달러화 유동성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 예를 들어 UAE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적어도 200억디르함(54억달러)까진 원화로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두 나라 모두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고, 달러화로 결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외환위기 방지의 안전판을 추가하는 것이다.
은성수 기재부 국제금융관리관은 “이제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데다 동남아 국가와는 무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직접 자국 통화로 스와프 협정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과도 560억달러 규모의 원·위안 통화스와프도 맺어두고 있으며 호주와도 통화스와프 계약을 추진 중이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한국이 이달에만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며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통화스와프 계약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조금씩 퇴보해나가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세계 상거래와 금융거래 결제수단인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